키워드로 풀어보는 예술, 예술가, 그리고 삶
2010년 경 영국문화원이 진행했던 사업 중에 “노숙자들과 함께 만드는 뮤지컬” 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이런 류의 예술을 통한 갱생 프로그램들이 제작되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술이 사람과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국가나 공공기관들이 앞장서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예술을 통해 회복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에 복귀시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사업들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긍정적인 일임에 분명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에는 더욱더 확장되어 복지의 영역은 물론, 귀농귀촌 사업 등 국가 주도의 모든 사업의 영역에서 예술적 방법을 차용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문화원이 진행한 이 사업에는 우리가 아는 이런 류의 사업들과 근본적으로 결이 달랐습니다.
예술을 아는 공무원, 예술을 하는 공무원
첫 번째, 이 일을 담당했던 국장은 민간인 신분으로
노숙자들과 뮤지컬을 만드는 일을 오래전부터 진행해 왔습니다.
영국문화원은 이 사람과 이사업을 영국문화원의 사업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이 일을 해오던 연출가를 국장급으로 직접 채용하여 "민간에서 하던 일 그대로 영국문화원을 통해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 이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예술을 통한 치유에 그치지 않고, 노숙자들을 실제 뮤지컬 배우로 만드는 일까지 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노숙자의 삶이 프로 뮤지컬 배우로 바뀌어지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치유와 회복을 통한 사회 복귀에 이르는 과정 까지가 아닌 그 이상의 것 까지를 사업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예술의 본질에 가까운 방법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그 모든 공공사업들은 경제적 잣대로 저울질하는 비예술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단지 예술가의 일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지만 결국은 또다시 경쟁과 생산의 굴레, 상처와 아픔이 만들어지는 그 낡은 방식으로 문화와 예술을 다시 한번 억압할 뿐입니다.
예술 프로그램의 목적은 공공의 이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구체적인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이런 일은 예술가들에게 온전히 맡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술가들에게 과업을 주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요?
공공예술의 주체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