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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 Jul 21. 2020

유후의 향기 04

由布の香り

설거지가 끝나고 료는 게스트들과 함께 나이트 투어를 나갔다. 그가 만든 나이트 투어는 일종의 무료 투어로 저녁 식사 후 게스트들과 가까운 산을 오르거나 토리고에 지역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게스트가 적을 때에는 차를 타고 유후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난 항상 가이드를 자청하며 따라나섰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유후인의 야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오늘 밤은 시내 체육관에서 주민들과 축구 시합을 한다고 해서 난 호스텔에 머무르기로 한다. 거실에서 시원한 차를 마시며 거의 외우다시피 한 유후인 여행책자를 뒤적이다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몸을 움직인다.


"쓰미마셍-(すみません 실례합니다)"


하얀 얼굴의 그녀는 몹시 지쳐 보였고 일본어 발음을 들어봐서는 일본 사람이 아닌 게 확실했다. 아마도 그녀가 '킴'인가 보다.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혹시 '킴'이세요?"

"어, 한국분이시네. 네, 제가 전화로 예약한 김이에요."

"예약 장부를 보니까 두 분이던데 혼자 오셨나 봐요?"

"한 명은 내일 올 거예요. 스케줄이 안 맞아서요."

"일단 들어오시죠. 제가 방 하고 시설 안내해 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난 그녀의 크지 않은 여행 가방을 그녀가 머무를 202호로 들어다 주고 유스호스텔의 시설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여전히 지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식당에서 시원한 차 한잔을 하고 나니 슬며시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 시원하다.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여기까지 오는데 힘드셨죠?"

"네, 후쿠오카에서 버스를 놓쳐서 다음 버스로 유후인에 도착했는데 막막한 거예요. 호스텔 셔틀버스 이용할 생각만 하고 다른 교통편은 알아보지도 않고 왔거든요. 8시밖에 안됐는데 상점들은 다 문 닫고 사람도 차도 거의 없고. 빈 도시 같아서 약간 무섭기까지 하더라고요. 마침 지나가던 택시가 있어서 얼른 타고 왔죠."

"그러셨구나. 근데 유후인 시내의 상점은 편의점이나 이자카야 몇 곳을 제외하면 보통 5시면 다 문 닫아요."

"네? 온천으로 유명한 관광지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일찍 닫아요?"

"유후인이란 곳이 아시다시피 온천지인데 고급 료칸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도 유명해요. 보통 유후인에 여행 온 사람들은 고급 료칸에 머물면서 온천과 가이세키 요리를 즐기러 오거든요. 그러니 밤에 외출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하루에 1인당 2-3만엔에서 많게는 7만엔까지 내는데 밖에 나가서 놀고 싶겠어요?"

"우와, 그렇게나 비싸요?"

"지금 계신 컨츄리로드 유스호스텔이 유후인 유일의 호스텔이고 가격도 가장 쌀 거예요."

"근데 여기도 좋은데요."

"그럼요. 싸다고 안 좋은 건 아니죠. 위치나 온천수는 최고 수준이죠. 서비스도 그렇고."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나 봐요. 아무도 안 보이네."

"아, 모두 저녁 먹고 운동하러 갔어요."

"배고프다."

"아직 밥 안 먹었어요?"

"네, 버스도 놓치고 정신없어서 배고픈 줄도 몰랐어요. 혹시 식사되나요?"

"식사는 예약해야지만 가능한데. 미안해요. "

"…할 수 없죠 뭐. 오늘은 그냥 빨리 자야지. 내일 아침식사는 지금 예약하면 되나요?"

"네, 아침식사 예약해 드릴게요."


 식사 예약 명단에 그녀의 이름 '킴'을 적어 놓고 돌아오니 그녀는 아직도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근처 명소에 대한 정보가 있는 책자를 건네고 내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녀의 혼잣말이 들린다.   


"아... 진짜 배고프네…"

"네?"

"아무것도 아녜요."

"배고프다고 들은 것 같은데."

"네. 배고프다고 혼잣말한 거예요."

"그럼 저한테 베이컨 하고 치즈가 있는데 그거라도 드실래요?"

"정말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유후인에서 왠 베이컨 하고 치즈?"

"근처에 와이너리가 있는데 그곳에 갔다가 사 왔어요. 가끔씩 게스트들하고 술 한 잔 할 때 안주로도 먹어요."

"아~. 그럼 저 옷 좀 갈아입고 내려올게요."

"네, 그러세요. 먹을 거 준비 해 놓을게요."

"고맙습니다."


 난 식당 냉장고에 넣어둔 베이컨과 치즈를 꺼내 접시에 펼쳐 놓고 주방에 조금 남아 있던 빵도 가져온다. 컵에 시원한 차를 채우고 나니 그녀가 내려왔다.


"와, 맛있겠다."

"맛있게 드세요."

"근데 여기 맥주 같은 거는 안 팔아요?"

"파는데요. 어떤 맥주로 드릴까요?"

"아무거나 주세요. 차가운 차도 좋지만 왠지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어서요."

"하긴 차를 곁들인 베이컨과 치즈는 뭔가 이상하네요."

"괜찮으시면 제가 맥주 한 잔 살게요. 같이 마셔요."

"좋죠. 고마워요."


 냉장고의 가장 안쪽에 있는 에비수(100% 맥아로 만든 삿포로사의 프리미엄 맥주) 두 캔을 꺼내 테이블로 가져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벌써 음식을 먹고 있는 그녀에게 맥주를 건네고 건배를 한다. 맥주 한 모금을 들으킨 그녀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피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시원하다. 저 원래 맥주 잘 안 마시는데 이 맥주는 정말 맛있네요."

"여행지에서 마시는 맥주는 다르죠. 더욱이 오늘이 유후인에서 첫날 밤이잖아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있고 설레기도 하고."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근데 한국분이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유스호스텔에 취직하신 거예요?

"아뇨. 저도 여행 중인데 방법이 조금 달라요."

"네?"

"이 곳에 머물면서 일주일에 6일 하루에 5시간씩 일을 도우면 숙식이 제공되거든요."

"그런 것도 있구나. 재밌겠네요."

"네. 처음 해보는 건데 아직 까지는 재밌어요."

"그럼 주로 어떤 일을 해요? 청소? 빨래?"

"식사 준비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하하하. 요리도 하세요? 왠지 주방에 있으면 어울릴 거 같아요."

"내일 제가 준비한 아침 식사하시게 될 거예요."

"정말요? 기대된다. 여긴 얼마나 있었어요?"

"이제 한 달 조금 넘은 거 같아요."

"오래 계셨네요. 얼마나 더 있을 건데요?

"원래는 규정상 한 곳에 한 달 이상 머무를 수 없는데 이 곳이 너무 좋아서 제가 부탁했죠. 한 달 더 있게 해 달다고."

"그럼 그다음에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아뇨. 앞으로 두 달 정도 이런 식으로 여행하려고요."

"학생이에요?"

"제가 그렇게 어려 보이나요?"

"아뇨. 어려 보이진 않는데 학생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여행해요? 돈 많은 백수라면 몰라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

"어떤 일?"

"그라픽 디자이너예요."

"아, 그렇구나. 재밌는 거 하시네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쪽은 뭐하시는데요?"

"전 S그룹 연구실에서 일해요."

"근데 이름이…"

"전 미나예요. 김미나. 그쪽은요.?

"모두들 그냥 빈이라고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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