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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Sep 18. 2024

나의 금발 머리 소년 (1)


황금빛 햇살 아래 물결치던….

그리고 천사 같은 미소.     


초등학교 입학 첫날이었다     


  “여기가 아니잖아”     


  선생님 설명을 듣지 못한 재이는 남자 줄에 섰다가 꾸지람을 들었다. 잔뜩 주눅이 들어버렸다. 곧 남녀가 짝을 이뤄 자리가 정해졌다. 옆자리를 살짝 곁눈질하니 짝꿍의 하얀 손이 보였다. 고개를 들었다. 창가에 눈부시게 빛나는 그 애가 있었다. 웃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다 아이가 돌아보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적응 기간이라 수업은 금세 끝났다. 재이는 왠지 모르게 신이 나 있었다.      


  “금발 머리는 무슨”     


  교문에서 기다리던 엄마는 재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첫날 별일은 없었는지, 선생님은 어떤지, 친구는 사귀었는지 등 귀찮은 질문만 잔뜩 했다. 재이는 이내 혼자만의 상상을 했다.


  '어떤 아이일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학교에 가면 칠판을 쳐다보는 시간보다 아이를 곁눈질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하지 마!”     


  눈길이 느껴졌는지 아이가 퉁명스레 말했다. 재이는 멋쩍어 웃었다.    


  “하지 말라고!”     


이번에는 짜증스러운 듯 한 번 더 말했다. 그만 무안해져 버렸다.     

  

  “자 조용!”     


  선생님의 말씀에 재잘대던 아이들이 하나둘 조용해졌다. 재이는 내내 풀이 죽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터덜터덜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 앞서 걷는 그 아이를 보았다. 반가운 마음보다 얄미운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못됐어’     


  혼잣말하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때 벚꽃 잎 하나가 바람에 실려 왔다. 무심코 내민 손 안으로 꽃 잎 하나가 들어왔다.     


  “잡았다!”     


  재이가 소리치자 앞서 걷던 아이가 뒤돌아보았다.      


  “쫓아오지 마!”     


  “어?”     

 

  아이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억울함보다 화가 났다. 아이는 자꾸 돌아보며 빠른 걸음으로 언덕으로 올라갔다. 재이도 오기가 생겨 이를 앙다물고는 뒤를 따라 바짝 걸었다. 뒤를 돌아보며 걷던 아이는 이번에는 뛰기 시작했다. 재이도 따라 뛰었다. 언덕 위에 다다르자 아이는 재빨리 왼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재이도 얼른 뒤를 쫓아 들어갔다. 하지만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앞쪽에 계단이 보였다. 좀 더 올라갔다.      


  “헉, 헉”     


  꽤 높은 계단이었다. 꼭대기에 서서 뒤돌아보자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큰 길에는 분홍 벗꽃을 담고 있는 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예쁘게 늘어서 있었다.     


  '후다닥'     


내려다보니 바로 아래쪽 집 마당에 그 아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재이와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다시 숨었다.      


  ‘얄미운 녀석’     


이참에 아이를 골려주지 싶었다.     


  “다 보인다!”     


크게 외쳤다.

      

  “으아~”     


  아이의 소리만 들렸다. 울상이 된 얼굴이 떠올랐다. 쌤통이다 싶었다.     


  “보인다! 보인다!”      


보이지도 않는 아이가 보인다고 계속 소리쳤다. 한참을 그러다 뭘 더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었다. 아이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싱겁게 끝나버렸다.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오며 생각했다.      


  ‘어쩌면 왕자님은 궁전에서만 사는 게 아닐지 몰라.’     


  집에 돌아왔을 땐 재이의 신발밑에 꽃잎이 잔뜩 붙어있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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