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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랍 Nov 11. 2022

계절과 날씨

그런 날이 있다. 차갑던 공기 속을 뚫고 내게 닿는 햇살이 따사롭지 않고 따가워지는 순간이나 무덥던 일상 속 어느 순간 찬 바람 한 줄기가 스쳐 가는 그런 날. 이런 날을 나는 계절의 문턱을 넘어서는 날이라고 부르곤 한다. 보이지 않지만, 모든 걸 바꾸기 시작하는 기점을 지나오는 날이 찾아오면 ‘또 하나의 계절이 갔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계절의 문턱을 넘어서면 그 계절을 견뎌내기 위한 준비에 나서곤 한다. 봄이면 조금은 옷을 얇게 입을 준비를, 여름의 문턱에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지 않기 위한 대비와 같은 것들 말이다. 계절의 준비를 하다 보면 지나온 계절은 어땠는지 떠올리곤 한다. 행복했던 기억도 많겠지만, 언제부턴가 여름은 수많은 상흔을 마음에 남기고 지나가곤 해 가을로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에 자그마한 환호를 하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징크스일지도 모르지만, 여름은 내겐 상처의 계절이다. 유독 여름엔 소중했던 사람들이 떠나는 일이 벌어지곤 했고, 스스로의 쓸모에 대해 되묻는 시간도 더 많아지곤 했었다. 지구가 태양에 가까워진 만큼 나는 반대로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는 게 아닐지 걱정하는 계절이 여름이었다. 그렇기에 한 줄기 찬바람이 뜨거운 대기를 가로지를 때면 ‘또 한 번 이별의 계절을 넘아왔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생일이 있는 가을이라고 답하곤 했다. 어렸을 적 생일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주는 날이었으니, 언제나 생일이 있는 계절인 가을이 기다려지곤 했다. 하지만 생일에 대해 조금씩 무감각해지기 시작하면서 가을은 겨울로 그리고 올해에서 내년으로 건너가는 건널목 같은 계절로 변했다. 흘러가는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깜빡이며 어서 건너야 한다고 독촉하는 듯한 계절 말이다.

겨울은 쌓아 올리고 무너뜨리는 일의 연속인 계절이었다. 새해를 맞이할 때는 이런저런 것들을 쌓아 올리지만, 지난해에는 결국 이뤄낸 것이 적은 초라한 나를 마주하며 비관론에 빠져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도 하는 시간 들이다. 그런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마음 한 구석에 품어보기도 하는 계절이 한 해의 시작과 끝을 맞는 겨울이었다.

마지막으로 봄은 스치듯 지나가는 그 무엇과 같은 계절이었다. 벚꽃처럼 언제나 기다려지지만,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봄이 다가왔다고 느꼈을 때엔 언제나 봄은 멀어져 여름의 문턱에 놓여있곤 했다. 그렇기에 봄은 언제나 스쳐가며 잃어버린 그 무언가 같은 존재였다.

이렇게 매 계절은 제각기 다른 감정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리고 계절의 문턱마다 내가 놓쳐버린 것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려 애쓰곤 했다. 그리고 내가 놓쳐버린 것을 마주하고 다시는 찾아올 수 없음을 아는 순간은 언제나 환절기 감기처럼 괴로웠다.

지나간 계절처럼 사라지게 하지 않기 위해 짧은 글을 쓰기도, 그 계절의 과일로 청을 담그기도,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는 뜬금없이 계절의 흐름이 어떤지, 날씨가 어떤지 떠들곤 했다. 24절기를 챙기는 동네 어르신처럼 뜬금없이 ‘추분일세 잘지내시는가?’와 같은 물음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흘러갈 계절처럼 사라질 것은 끝없이 생겼고, 환절기마다 꼬박 걸리는 감기처럼 붙잡지 못한 것에 아파하는 일도 반복이었다. 아마도 영원히 이어질 흐름 속에서 나는 그냥 끝없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혹시 나라는 사람이랑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는지 말이다. 이는 단순히 잃어버린 지갑에서부터 어느 순간 연락이 닿지 않는 한 때 가장 아꼈던 이에게 모두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름을 헤아려 본다. 만약 ‘내가 잃어버린 것들의 모임’이 있다면, 나는 절대 참석할 수 없지만, 내가 잃어버린 것들과 사람들이 모두 잘 지내는 그 어딘가가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가을과 겨울의 문턱에서 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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