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태진 Aug 17. 2023

“아츄! 증후군” - 극강의 공포에서 배운 교훈들

“아츄~ 널 보면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 내 사랑이 더 이상은 삼키기 힘들어~~”


몇 년 전에 한 유명 걸그룹이 불렀던 히트곡 중에 “Ah-Choo(아츄)”라는 노래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저절로 나오는 사랑의 감정을 재치기처럼 참을 수가 없다는 가사의 노래였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실제로 ‘아츄 증후군 (ACHOO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Autosomal dominant Compelling Helio-Ophthalmic Outburst (ACHOO)”의 줄임말인이 이 ‘아츄 증후군’은 햇빛과 같이 눈부신 빛에 노출이 되면 반사적으로 재채기가 나오는 증상을 말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증세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당연히 누구나 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보니 내 주변에는 이런 증세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눈이 부시면 재채기하는 나를 보고 재미있다고 했고, 나도 이를 나름의 재미있는 초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간혹 재채기가 날듯 말듯하면서 코끝이 간질간질할 때가 있지 않은가? 시원하게 재채기를 하고 싶은데 막상 재채기가 나오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그럴 때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다.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고 눈이 부시게만 하면 자동으로 재채기가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100% 효과보장이다.


이 증후군은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건강에 다른 해를 끼치거나 하지는 않는다. 왜 이런 증세가 생기는지 그 원인이 100%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빛에 반응하는 시신경과 재채기에 관련되는 삼차신경이 어떤 이유 때문이건 서로 간섭하여 시신경으로 들어온 자극이 삼차신경에 영향을 줘서 생긴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이 아츄 신드롬 때문에 극강의 공포를 경험해야 했다. 망막에 문제가 있어 눈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 당일 받는 검사 중에 크게 재채기를 했던 것.


“아츄 신드롬!”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초능력, 아츄신드롬이 생각났다.


내가 받는 수술은 망막, 즉 안구의 가장 안쪽에 하는 수술이었기 때문에 어두운 동굴 안을 비추듯 눈 안에 밝은 빛을 비춰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게다가 복강경 수술처럼 안구에 3개의 수술기구를 삽입한 상태로 수술을 한다고 했다. 수술 중에는 눈동자의 움직임조차 최소화하도록 조심해야 한다는데, 만일 눈알에 3개의 기구를 삽입해 둔 상태에서 재채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나는 수술은 커녕 눈알이 박살 날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의사 선생님께 나의 아츄 증후군에 대해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은 ‘괜찮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수술실 간호사를 불러서 실제 수술대 위에서 미리 한번 시뮬레이션을 해 보라고 지시했다.


나는 수술 가운을 입고서 수술대 위에 누웠고, 간호사는 내 눈 위에 뭔가를 얹은 다음 밝은 수술 조명을 가져다가 눈 위로 비추며 물었다.


“어떠세요? 재채기가 나올 것 같나요?”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누워서 눈부심을 힘껏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재채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왠지 코끝이 간질거리면서 재채기가 나올 것 같기도 한데 막상 재채기는 안 나왔다. ‘어라, 어떻게 된거지?’ 재채기라는 게 참는다고 안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참아서 그럴리는 없고, 그렇다고 재채기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아예 안 드는 것도 아니고... 헷갈렸다.


“잘 모르겠어요 ㅠㅠ”


나로서는 자신 있게 "괜찮다”라고 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재채기가 나오지 않았기에 간호사는 “일단은 괜찮은 것 같다”라고 의사에게 보고했다.


잠시 후, 실제 수술에 들어가면서 의사 선생님은 만일 재채기가 나올 것 같으면 자신에게 미리 수신호로 알려달라고 했다. 국소마취만 하고 하는 수술이라, 내 눈을 겸자로 잡아당겨 크게 벌린 다음 눈알에 송곳 같은 기구로 구멍 세 개를 뚫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조폭 영화의 잔인한 장면들을 유독 잘 못 보는 나에게, 지금 그런 영화의 가장 잔인한 일이 직접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제 내 눈에 3개의 수술기구가 박혀있다. 여기서 만일 재채기라도 하게 되면 끝장이다. 나는 너무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재채기는 나오지 않았고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어릴 때는 백발백중이었는데…  눈이 부시면 재채기가 나왔는데, 어찌 된 걸까?


찾아보니 아츄신드롬은 나이가 들면서 덜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니 내 경우가 그런 것 같다. 나도 수술 전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나의 이 초능력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깐.




눈 수술과 아츄 증후군에 대해 곱씹어보고 나서 드는 인생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이 있다.


첫째, “우리 모두에게는 ‘트리거(trigger)’가 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재채기처럼 강한 반응을 일으키는 ‘트리거’가 되는 것들이 있다. 특정한 노래를 듣거나 특정한 냄새를 맡으면 누군가가 생각이 나거나 강한 감정(그것이 사랑이든 미움이든 분노이든)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신에게 어떤 것들이 그런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알고, 또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은 사는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


둘째,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반응하지는 않는다.” 똑같은 트리거에도 사람마다 반응하는 방식은 다르다. 나는 눈부신 빛을 보면 재채기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어떤 이에게는 큰 공포와 분노를 유발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이 모든 것에 다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저 사람은 왜 저래?’라고 생각하는 일도 줄어들 수 있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이 반응하지 않음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셋째, “준비한다고 해서 다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나의 아츄신드롬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막상 눈이 부시고 재채기가 나오려고 하면 내가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살면서 우리는 피하고 싶은 일들이 있고, 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많은 준비를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일들이 있다. 이런 일들은 마냥 부정하기보다 잘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많은 것들이 변한다” 내 아츄 신드롬이 나이가 들면서 증세가 덜해진 것처럼, 내 삶에서 강한 반응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키던 어떤 것들이 나이가 들고 시간이 감에 따라 나에게서 이끌어내는 반응의 강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나에게 어떤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변화가 있는지를 살피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술이 끝나고 시력이나 모든 것이 회복되려면 한 달은 걸릴 거라고 한다. 하지만 수술을 잘 마치고 내 눈알도 무사하다니 참 기쁘고 감사하다. 그래서 요즘 종종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아츄! 널 보면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 내 사랑이 더 이상은 삼키기 힘들어~.”


https://brunch.co.kr/@taejin-ham/1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