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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Aug 31. 2024

열린 마음의 힘

오픈 이노베이션 (Open Innovation)

<1999년 8월 17일>

“오늘 아침 Alabama의 Southern *** 의 Dr. T*** 와 conference call을 했다. 오후에는 Netherlands의 O***사의 연구진들과 conference call을 했다. 엊저녁에는 논문이랑 특허 10여 개를 기숙사로 가지고 와서는, 오랜만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공부했다... 세계 top rank에 있는 회사, 과학자들과 상대하니 배우는 것도 많고 일도 바빠지고, 재미있고, 자부심도 생기는 듯하다.”


연구원 3년 차 무렵. 외국에 있는 유수의 회사들과 공동연구개발을 추진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매일 실험실에서만 일하다가 해외의 과학자나 사업가들을 상대하게 되니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인터넷도 이메일도 지금처럼 널리 쓰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외국의 연구기관이나 회사를 찾기 위해서는 논문과 특허를 뒤적이며 직접 조사해야 했다. 연락 역시도 이메일이 아닌 팩스로 주고받았다. 우리 회사를 소개하는 내용을 서투른 영어로 작성한 뒤, 팩스로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답장이 왔을까 기대하며 연구지원실에 있던 팩스 기계 앞으로 부리나케 달려가곤 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했던 일은 요즘 ‘오픈 이노베이션 (Open Innovation)’이라는 멋있는 이름으로 불리는 전략이었다



오픈 이노베이션 (Open Innovation)


기업이 자체적인 자원과 아이디어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의 더 나은 아이디어나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전략을 '오픈 이노베이션'이라 부른다. 이는 특히 제약산업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왜 그럴까? 인간의 모든 유전자 정보가 분석된 이래,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가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어서다. 이제 생명공학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그래서 글로벌 제약기업들조차 이 모든 과학기술의 발달을 홀로 습득하고 신약개발에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서 새로운 약물을 ‘발굴’하는 것은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자와 작은 회사들에게 맡겨지고 있다. 대신에 큰 회사들은 이들이 개발한 기술이나 신약 후보물질 중 유망해 보이는 것들을 사들여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임상시험 과정을 통해 약으로 ‘개발’하고 상업화하는 데 집중하는 일종의 협업 시스템이 갖춰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최근, 한국의 유한양행이 개발한 ‘레이저티닙(lazertinib)’이라는 항암제가 미국 FDA의 허가를 받으면서 회사의 주가가 급등했다. 이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원래 이 약물은 한국의 작은 바이오회사가 개발한 것을 유한양행이 인수해 추가 개발을 진행했던 것이다. 이후 유한양행은 이 약물을 글로벌 제약사인 얀센(Janssen)에 다시 기술 수출했다. 두 번의 오픈 이노베이션 과정을 거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이번 FDA 허가에 따른 대가로 800억 원을 일시불로 받게 된다. 더불어서 향후 약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하면 매년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 규모의 로열티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오픈 이노베이션은 큰 회사와 작은 회사 양쪽 모두에게 성공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 삶에서의 오픈 이노베이션


1. 겸손: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기

오픈 이노베이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크고 훌륭한 회사라도 자신이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2023년 통계에 따르면, 세계 1위부터 10위까지의 제약 기업들은 각각 한 해 동안 연구개발비로 적게는 약 10조 원에서 많게는 40조 원에 이르는 금액을 투자했다. 단 한 개의 회사가 말이다. 우리나라 전체 제약시장의 규모조차 27조 원에 못 미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거대 제약사들은 자체 연구개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기술과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데 더 적극적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많이 배웠고, 많이 가졌더라도 내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내가 늘 옳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더 나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더 성장할 수 있다.


2. 열린 마음: 다양한 관점 포용하기

’오픈 이노베이션 (Open Innovation, 열린 혁신)‘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 전략의 핵심은 ‘열려있어야 혁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상식과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찾고, 이를 이미 갖고 있던 것들과 비교하고 경쟁시키고 접목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나간다.


우리 삶도 비슷하다. 나와 비슷한 연배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편하고 즐겁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그렇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힐링’이지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다양한 배경과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가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우리를 더 성장시킨다.


3. 용기: ‘헤어질 결심’

제약산업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쉬워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선택지가 더 많아지는 만큼 어떤 것을 취할지 어떤 것을 버릴지에 대한 고민이 더 치열하고도 더 일상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 애착이 가던, 혹은 너무나 많은 공을 들였던 과제를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방향을 트는 용기도 필요하다.


인생도 그렇다. 때로는 익숙하던 것들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할 수도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위험과 도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다.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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