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제작을 위한 최소 단위
그림책 제작을 하다 보면 '더미북'이라는 용어를 흔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더미'는 많은 물건이 한데 모여 쌓인 큰 덩어리라 하며 여러 장의 페이지가 한데 모여 책으로 엮이면 이를 '더미북'이라고 한다. 더미북은 실물 그림책으로 출간하기 전에 만드는 임의의 책으로 본격적으로 그림책의 그림을 디테일하게 그리기 전에 러프하게 스케치를 하여 각 장면별로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혹은 구상이 적절한지 아이디어를 확인하고 보완하는 단계에서 더미북을 제작한다.
그림책은 수없이 많은 수정을 거치기 때문에 완벽하게 채색까지 한 후 더미북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즉, 1단계의 스케치 만으로 콘티를 구성하듯이 러프하게 그려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림책의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집에 프린터기가 없거나 인쇄할 종이가 부족하여 출력이 부담된다면 pdf 파일로 묶어서 전자책 형태로 더미북을 볼 수도 있다. 출판사에 투고를 하기 위해 더미북을 제작하기를 원한다면 1:2 비율이나 1:5 비율로 작게 축소하여 종이들을 이어 붙여 제작하면 된다. 책 판형에 맞게 1:1 비율로 제작하게 된다면 일반 프린터기로 A4 사이즈 이상의 용지를 출력하기 힘들기 때문에 미니북 형태로 먼저 만들어 보는 것이다.
더미북을 제작하는 유형은 아코디언처럼 접었다 폈다 하는 형태로 만들거나 페이지 번호에 맞게 그림을 붙인 다음 여러 장의 종이를 한데 모아 가운데에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 외에도 책을 제작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으니 본인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작하면 된다.
실물 그림책 작업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더미북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적이 있다. 글의 구조가 단순하거나 그림으로 그려내기 어렵지 않으면 러프스케치 단계를 최대한 생략하고 디테일 스케치와 컬러링 단계로 바로 넘어가면 된다. 그러나 글 작가가 글을 쓴 의도가 그림에서 세세하게 드러나야 하여 그림으로 표현해 내기 어려운 경우는 더미북을 사전에 제작하면서 그림의 연출이 부자연스러운지,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등 반복해서 확인하며 수정해 나가야 한다. 더미북이 비록 완성된 책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이 안에서 완성된 스케치 구조가 나와야 그림책으로 출간할 때 상품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 그림책은 한 장이 아닌 최소 16장 이상의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시일 내에 빠르게 만들어지지 않고 최소 몇 달에 걸쳐 긴 호흡을 가지고 완성이 된다. 만약 더미북 단계에서 스케치 수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그림책을 제작하게 되면 분명 출판사 측에서 수정 사항을 많이 요청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엎고 다시 그리게 되어 작업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게 된다. 따라서 그림을 구체화시켜 그리는 과정에서 작업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러프스케치 단계에서 마음에 드는 구상과 연출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려내야 효율적으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더미북 단계에서 스케치 작업을 어느 정도 완료했다면 스케치를 더욱 구체화한 다음 채색을 입히면 그림책에 들어가는 그림은 완성이 된다. 그런 다음 그림책을 출간하기에 앞서 실물과 유사하게 사전에 인쇄물을 출력하여 '가제본' 형태의 책을 제작한다. 기본적으로 한 번에 2000권의 책을 발주하므로 1쇄 출간을 하게 될 시 뒤늦게 수정해야 할 부분을 발견한다면 아쉬움을 뒤로 한채 수정을 하고 나서 2쇄 제작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슬픈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여러 권의 책을 발주하기 전에 샘플로 한 권의 책을 임의로 만들어 인쇄 색상 상태나 화질이 선명하게 잘 나오는지 확인해 보고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색감과 해상도를 조절하여 다시 한번 발주를 하여 가제본을 만든다. 또한 재단선보다 3-5mm 정도 가장자리에 여분을 주어 책 작업을 하므로 책을 재단할 시 중요한 부분이 잘려나가지 않는지도 확인해 보아야 하며 접지에도 그림이 말려들어가 잘 보이지 않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 밖에도 인쇄되는 종이 재질에 따라 인쇄 상태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비슷한 재질의 종이에 출력을 해보기도 하고 맞춤법이 맞는지 혹은 오타가 없는지 여러 번 확인해 보며 가제본을 통해 책을 전체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림책은 작가 혼자만 만족하기 위해서 소장용으로 단 한 권만 제작하지 않는다. 여러 권의 그림책을 제작하여 서점과 책방에 내놓아 세상에 널리 알리므로 그림책은 하나의 '상품'이다. 따라서 상품 가치로 인정이 받아야 진정한 그림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과 부모가 그림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비록 그림책 수정 작업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내가 만든 책을 독자의 시선에서 항상 바라보며 책 작업에 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