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짜장면을 비벼야만 하루가 저무는 날이 있다.
검게 눌어붙은 소스 속에 오늘의 허기를 잠재우고
쉼 없이 수동적인 손놀림을 반복하다 보면
면발 끝에 매달려 있던 미련들이 툭툭 끊어진다.
나는 잘게 조사진 계절을 천천히 씹어 넘긴다.
젓가락 끝이 눈에 띄게 야위어야만
비로소 늦가을을 수긍하는 날이 있다.
나무가 스스로 제 수분을 차단하며 몸을 덜어내듯
나 또한 야윈 나무 막대기에 의지해
그릇 바닥에 남은 희미한 온기를 긁어모은다.
밤은 이제 쓸모를 다한 것들을 가차 없이 흔들어 떨어뜨리고
낮 동안 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소음들이
차가운 보도블록 위로 소란스럽게 추락한다.
나는 어떤 대답도 발설하지 않은 채
거울처럼 말갛게 비워진 그릇을 응시한다.
이윽고 잎사귀를 다 떨궈낸 나무의 빈 가지 끝에
날 선 별 하나가 서늘하게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