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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우 Jun 14. 2024

1.지하생활자

김민우 단편집 1화

 19세기에서 21세기로,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지하생활자는 건너왔다. 우리는 인간실격에서 오바 요조를 찾고 슬퍼하지만 지하생활자에 대해선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도 그런게, 그는 매우 꼬였고 뒤틀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허나 지하생활자는 아직도 존재한다. 그곳은 이제 햇볕이 간신히 머무르는 지하에서 아예 스스로 원천을 차단한 방에 거주하고 있다. 난 이 지하생활자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

 

 멀쩡히 대학을 다니던 지하생활자는 돌연코 나의 쉐어하우스에 박혀있다. 그는 꼬질꼬질하지 않다. 긴 수염도 없을 뿐더러 때가 껴있지 않다. 매일 머리를 감으며 샤워하고 포근한 향수를 뿌린다. 머리에 포마드를 멋드러지게 바른 양복쟁이는 출근한다. 이게 지하생활자다. 그리고 이 지하생활자의 그림자는 방 전체에 드리워져있다. 이 글은 그 그림자와의 대화이다.


 또 왔냐고 지하생활자는 불평한다. 프리랜서인 나는 작업을 다 마치면 산책을 가기 전 이 지하생활자를 만나러 간다. 지하생활자는 갈 때마다 침대 아님 의자에 앉아있다. 곱상한 까만 입을 움직이며 투덜거린다. 너는 언제나 나의 심술을 보러 와. 대체 왜 오는 거야? 나에게 흥미가 있나? 흥미가 있을려면 저 밖으로 나가는 녀석을 따라가서 견학이나 다녀오는 게 어때? 세상 재미진 건 다 저 밖에 있어. 이 곳은 햇빛조차 안 들어오는 까만 방이라고. 난 고개를 끄덕인다. 난 이 지하생활자의 불평을 듣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는다. 젠장 실어증 걸린 녀석을 보는 것 같군. 그 삐뚤어진 흥미를 보는 것도 지겨워. 정말 병들었어 넌. 나보다 더. 제일 쓰레기 같은 인간이 뭔 줄 알아? 나같은 잉여에게 관심을 가지는 녀석이야.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길거리의 고양이를 보듯이 보지. 왜냐면 자신은 이미 모든 걸 가졌다고 생각하거든. 하하하, 멍청한 자식들. 엿이나 먹으라지! 미친 놈들처럼 내가 부라리면 그때서야 기분 나빠하며 도망가. 난 그때를 즐기거든. 하지만 이내 그들은 공포가 아닌 역겨움을 내게 느낀다는 것을 깨달으면 난 서글퍼지고 토라지지.  


 난 저 밖에 나가는 녀석이 이해가 안 가. 내가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 녀석들은 날 속으로 비웃었지. 난 그에 역겨움을 느껴 뛰쳐나갔고. 내가 어떻게 아냐고 그 비웃음을? 난 누구보다 혜안이 뛰어난 녀석이니깐! 난 사기꾼들의 속셈을 다 안다고. 어떻게든 등쳐먹을려는 그 속셈을. 너도, 그 녀석도, 그 녀석이 굽신거리는 녀석도 다 사기꾼이라고! 그런데 그 사실을 그 녀석에게 알려주자 그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나가버렸어. 왜 그러는 거야? 저 밖엔 내가 알 수 없는 사실이라도 숨겨져 있는 거야? 그걸 알려주면 난 사라지지 곧바로.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하, 넌 그저 이 대화가 즐거운 모양이군. 꺼져. 너하고 이제 대화할 생각없어.


 그렇게 녀석과의 대화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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