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사람

by 공삼

인기 드라마였던 낭만 닥터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한 대목이다.



선생님은 좋은 의사입니까? 최고의 의사입니까?

지금 여기 누워있는 이 환자에게 물어보면 어떤 쪽의 의사를 원한다고 할까?

최고의 의사요.

아니, 필요한 의사다.
지금 이환자한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골절을 치료해 줄 OS(정형외과)야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이 환자한테 필요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답이 됐냐?
네가 시스템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고, 그런 세상을 만든 꼰대들을 탓하는 것 다 좋아. 좋은데!
그렇게 남 탓해봐야 세상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래 봤자 그 사람들 네 이름 석 자도 기억하지 못할 걸
정말로 이기고 싶으면 필요한 사람이 되면 돼
남 탓 그만하고 네 실력으로!
네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알겠냐?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새롭게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이 태어나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이루려는 목적은 다양할 것이다. 그래도 일을 하다 보면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 속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겨나는 법이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반복적인 루틴 속에서 일을 하다 보면 그 일을 해야 하는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마치 그 자리에 있어서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목적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순간이라 본다.


이러한 의구심이 드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 원인에서 출발한다.


그건 바로 인정이나 칭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정을 받지 않음으로 해서 당연한 것이 되고, 나 스스로가 필요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불어 처음엔 칭찬을 받다가 익숙해지는 순간부터 칭찬이 줄어들면서 사람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함을 칭찬이 줄어드는 것에 빗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스로가 불안해지고 필요한 사람으로서 일을 하기보다는 지금 이일을 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능동보다는 수동적으로 일처리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반대 측면에서 생각을 해 보자.

같은 일에 대해서, 같은 결과에 대해서 늘 인정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칭찬도 마찬가지이다. 일 년 전에 일을 잘해서 칭찬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칭찬에 힘입어서 작년만큼 일을 했다고 치자. 물론 칭찬을 받을 만한 결과겠지만, 그 어떠한 개선없이 딱 전에 했던 그만큼만 이룬 것을 칭찬하는 것은 어딘가 부족함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며 딱 그 정도의 성과를 내는 것에 사람들이 칭찬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 칭찬은 당연한 것이 되고, 칭찬을 받은 사람은 딱 그 정도로만 성장하고 마는 수가 있다.


자기 스스로가 필요한 사람이라 인정하며 일을 하게 되면 앞에서 말한 칭찬도 인정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법이다. 칭찬과 인정을 바란다는 것은 아직 나는 케어가 필요한 의존적인 사람이라는 말도 된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아이 같은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도 된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


꼭 그것을 확인해야만 삶에 있어서 윤택함을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힘이 든다면 다른 일을 통해서 인정을 받는 것이 더 빠른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칭찬과 인정받는 것에서 벗어나는 순간, 진정으로 자신 스스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하게 되는 순간이라 본다.

자기 스스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순간, 어떤 일이 내 앞에 펼쳐져도 핑곗거리를 찾지 않는 법이다. 이유는 일단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혹 일을 해결 해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는 일을 해결하고 난 뒤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핑계가 아니다. 그건 자기가 자신을 위한 스스로의 칭찬이자 인정인 셈이다.


핑계를 두지 않고, 일단 해결하려는 데 노력하는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 스스로가 잘 인정하는 것이고, 해결하고 난 뒤에 이어지는 각종 영웅담은 자신을 달래며 칭찬하고 인정함으로써 자신을 더욱더 견고하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남이 아닌 나 스스로가 필요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웰빙이 아닐까 새롭게 생각해 본다.

웰빙이라고 말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스스로 필요한 사람으로 일을 하면, 일을 하는 동안 불평불만이 줄어서 다른 스트레스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그만큼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그러니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문제도 능히 컨트롤 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험 속으로 몰아넣지 않는 법이다.

오히려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필요한 사람임에도,,, 또는 자신 스스로가 필요한 사람이라 인정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옆에 있을 경우이다. 예를 든다면, 차별을 두고 일을 시킨다거나 일을 너무 잘해도 그 꼴이 보기 싫어서 늘 폄하하거나 불이익을 주려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경우이다. 그 대상이 가깝게는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직장동료 또는 직장 상사가 될 수도 있다.

가장 흔한 반응으로는 질투이다.


이런 문제는 스스로가 인정을 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없는 법이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고 해도, 주위에서 계속해서 독설과 독을 뿜어 내는데 이길 장사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 보면 된다. 물론 이것 또한 이기는 방법이 존재한다.

몇 가지 방법이 있지만 한 가지만 거론하자면, 이 또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인정과는 다른 인정이다. 바로 "표 나지 않는 무시의 인정"이다. 사람은 모든 것을 관여할 수 없는 법이다. 관여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스트레스이며 나아가 질병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상대가 독설과 독을 뿜어 낸다고 해도 그 뜻에 대해 관여하기보다는 무시하면서 그 사람을 딱 그 정도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표 나지 않는 무시의 인정"이라고 해두고 싶다.

그러나 "표 나지 않는 무시의 인정"을 갖추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순차적으로 경험을 통해서만이 체화하는 인간의 특성을 고려할 때, 다수의 경험이 필요한 법이다. 원래 천성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민감한 사람이라면 경험이 부족함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쏟아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친구와의 대화가 될 수도 있고, 혼자서 쓰는 일기나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자신을 필요한 사람으로 스스로 인정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달래줄 수 있는 대상이나 행위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응원하고 질투와 시기 없이 상대를 배려하는 문화가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자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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