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로 살다 보니 이유 없이 무료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무료함이 때로는 우울증으로 때로는 슬럼프로 발전된다. 그래서 무료하지 않으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한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단순하게는 청소나 설거지할 때 음악을 틀어 놓는다거나,
반복적인 일을 할 때는 영어 방송을 틀어 놓는다거나,
정말 무료함이 극에 다다를 때는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님을 스스로 세뇌시키곤 한다.
그러나 때론 정말 지칠 때가 있다.
하루는 전날 새벽 3시에 잠을 자서 세 시간 이후에 깨어나 아내의 출근을 준비하고 딸아이 유치원 등원을 준비하느라 피곤했던지 집에 돌아와서 커피 한 잔 하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거실 바닥에 앉은 순간 눕게 되고 누운 순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요란한 알람 소리에 깨어나 보니 유치원에 딸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꼬박 6시간 30분을 자버렸다. 그리 많이 잤음에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부랴부랴 눈곱 때고 양치질하고 딸아이 데리러 집을 나섰고 딸아이 하원과 동시에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
마시려던 커피는 이제 7시간을 지나 이미 식어 있었고 컵 안에는 집안 먼지가 들어가 이미 지저분해져 있었다.
오늘 내가 뭘 한 거지? 그 순간 모든 게 무료하고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의욕이 떨어졌다. 정말 열심히 생활할 것이라며 이것저것 쉬지 않고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았는데 전날 잠을 덜 자서 피곤한 탓에 6시간 30분을 자고 나서 일어나니 오늘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생각에 정말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피아노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다녀와서 저녁을 차려주고 뒤늦게 바삐 움직여 보지만 여전히 기분이 별로였다. 게다가 소소한 딸아이의 잘못이 짜증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이러면 안 되는 데 하면서도 내 행동과 마음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계획표를 열어 다시 조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이게 무슨 소용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는 전업주부 생활을 하면서 뭔가를 거창하게 준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시 힘차게 일어나서 사회에 진출하여 일하는 꿈?
나는 남들과 달리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꿈?
오늘만 봐도 하루가 무너지니 남은 하루가 종일 복잡한 생각으로 엉켜져 버렸는데 이것은 아직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증거이자 아직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뜻일 것이다. 전업주부 생활을 시작했으면 그에 맞는 생활에 충실하는 것이 매우 옳은 일일 텐데 나는 늘 다른 꿈을 겨드랑이 밑에 숨기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야만 무료한 가정주부 삶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마음을 다 잡는데 꽤나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표를 내려하지 않아도 결국엔 아내에게 들키고 말았다.
하루는 아침에 딸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아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본 아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냐고 물어보길래 나는 여전히 목소리가 격양된 채 "내가 뭐요?"라고 답변을 했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챈 아내는 출근하려던 걸 물리고 식탁에 앉아서 나와 대화를 시작했고, 잠시 후 덩치 큰 남자 전업주부에 눈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울고 있으면서도 왜 우는지 몰랐고 그냥 속상하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도 말을 잘 듣지 않는 딸아이를 원망하고 있었다.
순간 아내가 두 손을 잡아주며 자기도 집에 있을 때 그런 심정을 겪어 봤다며 다독여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는 봄기운에 눈 녹듯이 자연스레 진정을 하게 되었고 내가 화가 나는 이유가 딸아이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난 나의 입장을 제대로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48년 동안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 자신의 마음이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렇게 위험하게 흘러갈 줄은 전혀 몰랐다. 우스갯소리로 귀신에 씌었다는 표현이 적합할까? 정말이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주부생활이 지칠 때가 있는데 어느 순간이 위험인지는 개인마다 틀릴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화가 날 때 화가 나는 대상이 정말 원인인지 아니면 뭔가를 숨기면서 대신 다른 것에 화를 내는지를 구별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미리 막을 수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로 바라보지 않고 감성으로 받아준 아내의 힘이 매우 컸다. 지금 생각해도 매우 부끄럽게 아내 앞에서 바보같이 울었지만 그 모습을 마다 하지 않고 추한 모습 그대로 받아 준 아내 덕에 다시 열심히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