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는 같다.
20대 중반 꿈을 위해 정신없이 달리던 시기가 있었다. 그땐 뮤지컬 연습이 한창이었다. 중학교 무렵부터 성인이 되면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겠노라 다짐했기에 통장 잔고가 떨어지기 전, 틈틈히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었다. 시간이 돈보다 부족하던 시절이었기에 대부분 파트 타임으로 일을 구했는데 그때도 아침에만 잠깐할 수 있는 시급이 쎈 일을 구했고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때 내가 구한 일은 오전 7시부터 낮 12-1시쯤까지 회사가 지정해주는 지하철 역, 승강장 문 앞에 앉아 사람들이 몇명이나 타고 내리는지 인원을 체크해서 시간대별로 회사에 보고하는 일이었다. 알*몬에서 이 일을 찾고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지원했다. 오전에만 잠깐 해서 낮에 연습을 가야하는 나에게 딱이었고, 일이 쉬울 것 같았으며, 한자리에 멍 때리고 앉아 사람만 세면 되는 일이기에 체력 소모도 적어 낮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는 연습에 방해도 안 될 것 같았다. 또 시급도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높아 여러모로 좋았으니 내 입장에선 이런 장점이 많은 아르바이트를 지원 안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쉽게 벌 수 있는 돈은 없다고 했던가.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던 매섭게 추운 겨울, 지하철 승강장이 외부인 곳이 많아 부츠를 신고 양말 두개를 껴신어도 동상 걸릴 것처럼 발이 꽁꽁 얼고, 옷 4-5겹을 겹쳐입고 핫팩을 사용해도 추위에 온 몸이 고장난 기계처럼 덜덜 떨리는, 그 와중에 시도때도 없이 안부를 전하는 졸음까지 물리쳐야 하는 그런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생각이 참 많았다. 세상에 대한 생각도, 사람에 대한 생각도. 앞으로 펼쳐질 미래와 꿈에 대한 생각도. 걸어다니는 생각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간혹 어떠한 주제에 꽂혀 그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하기도 했었는데, 그때 꽂혔던 주제 중 하나가 도움에 관한 것이었다.
타인을 도우며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럼 누구를, 어떻게, 왜, 언제, 어디서 도와야하나. 이런 류의 복잡한 생각들. 대부분 도움 주는 것을 떠올리면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신체적으로나 경제적, 환경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먼저 떠올린다. 아니면 주변에 있는 부모님, 친한 친구들처럼 사랑하는 사람 중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떠올리거나. 그 시절의 난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을 극히 제한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난 생각할 때 항상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먼저 찾아보는 습관이 있는데, 실제로 돕다의 사전적 정의는 이랬다.
돕다
1. 남이 하는 일이 잘되도록 거들거나 힘을 보태다.
2. 위험한 처지나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다.
3. 어떤 상태를 증진하거나 촉진하다.
내가 고민해왔던 돕다의 사전적 정의는 2번이었다.
무튼 나는 추위에 몸을 떨며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 누군가 내 옆에 앉는 것을 느꼈다. 코 끝을 타고 찬 공기와 함께 역한 냄새가 따라 들어왔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상한 낌새에 옆을 바라봤는데, 족히 몇 달은 씻지 않으셨을 것 같은 노숙인 할머니께서 내 옆자리에 떡하니 앉아계셨다.
그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필 수 많은 의자 가운데 내 옆이라니. 부끄럽지만 솔직한 나의 속마음이었다. 나는 12시까지 승강장 6-4, 이 앞을 떠날 수 없는데. 숨을 꾹 참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옆을 다시 힐끔 보았다. 어렸을 적에 아빠가 노숙자분들 재활 봉사를 오래하셨기에 이런 분들에 꽤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분은 정말 만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것만 같은 행색이었다.
하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난다해도 갈 곳도 없다. 어차피 계속 이 앞에 있어야 하는데. 죄송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어차피 코는 쉽게 적응되지 않던가. 결국 있어야 한다면 그냥 모른 척. 참자로 결론 지었다.
냄새는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앉아 일에 집중하다보니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끔 지하철에서 내린 승객들이 내리자마자 그 분을 보고 또 그 분 옆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는 날보고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가긴 했지만, 딱히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지하철이 그렇게 몇대가 지나갔고, 그때였다.
적막이 깨진 건.
“ 여기서 뭐하는거야? ”
옆에 앉아 계시던 그 분이 내게 말을 건 것이다. 생각보다 또랑하고 온화한 목소리였다. 사실 꽤나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침착하게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아르바이트요. 여기 앉아서 지하철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나오는 사람들을 세고 있어요.”
“ 그렇구나. 날이 추운데. 춥지는 않니? ”
할머니가 나에게 자상하게 물어주었다. 사실 난 몇달동안 씻지 못한 행색에 할머니가 정신이 좀 이상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질문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니 그냥 평범한 우리 할머니같았다. 그래서일까. 난 진짜 너무 추웠는데, 이상하게 반대로 대답했다.
“ 아니요, 괜찮아요. 따뜻하게 입고 나왔어요. ”
할머니가 그런 날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 으응, 아까도 여기에 있는거 봤거든. 감기 걸릴라 따스하게 입고다녀. ”
그렇게 말씀하시며 할머니가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오랜 기간 감지 못한 머리가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냄새가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몇대의 지하철을 보내며 같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처음과는 다르게 할머니에게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설마 지나가다 날 보고 내가 걱정되어 다시 돌아와 내 옆에 앉으신걸까.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곳에 함께 앉아 나도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있었다. 할머니는 안 추우실까. 어디서 묵으시는걸까. 어쩌다 길거리에 있게 된걸까. 궁금했지만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물어보기엔 무겁고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알게 되면 내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물어보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고민하다 어느 것 하나 물어보지 못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비집고 자상하고 따뜻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 아침은 먹었어? ”
“ 아뇨. 아직요. 할머니는 아침 드셨어요? ”
“ 응, 난 먹었어. 아침을 잘 먹고 다녀야하는데. ”
자신의 손녀마냥 나를 걱정하는 할머니에게, 안심을 시키고자 웃으며 말했다.
“ 늦잠자서요. 곧 일 끝나서 그때 점심 먹으면 돼요. 괜찮아요! ”
그렇게 대화를 하다 지하철이 와 사람 수를 세고 있었는데, 그런 내 옆에서 부시럭부시럭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날 불러 쳐다보니, 엄청 큰 가방 속에 있던 보름달 빵과 요구르트 하나를 내게 주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할머니에게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했다.
“ 할머니, 전 괜찮아요. 이따 할머니 드세요.”
“ 나는 매일 아침이면 저기 역 앞에 가면 봉사자분들이 나누어 주셔. 추운데서 일하는데 배고프면 몸에 안좋아. 갖고있다 이따 배고플때 먹어. ”
주머니를 빠르게 뒤졌다. 주머니 속엔 만원짜리 한장이 있었다. 있다가 드리려고 했는데 지금 안 드리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할머니에게 빠르게 내밀었다.
“ 할머니, 그럼 제가 이거 드릴테니 필요할 때 쓰세요.”
할머니는 내가 내민 돈을 보자마자 말씀하셨다.
“ 나는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주는 곳이 있어서 돈 쓸데가 없어. 이만 가볼게. 추운데 따스하게 입고 다녀. ”
할머니는 내가 내민 돈 때문인지, 처음부터 빵과 요구르트를 주러 오신건지. 그렇게 나에게 보름달 빵과 요구르트를 남기시곤 제대로 인사할 기회도 주지 않으시고 황급히 일어나서 어디론가 향하셨다. 일하고 있는지라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 가는 길을 배웅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오랜 기간 못 씻은 듯한 할머니의 거뭇거뭇한 손을 힐끔힐끔 바라만 보다 손 한번 제대로 잡아드리지 못하고, 꼭 한번 껴안아 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
할머니가 가시고 난 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이 모든 일이 꿈 같았다. 그렇게 그 날 아르바이트 하는 내내 보름달 빵과 요구르트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것들의 감촉이 느껴질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하고 아렸다. 할머니에게 나는 사랑하는 사람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도 아닌데 할머니는 받는 것보다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을 택했다. 나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편견을 갖고 정신이 이상하신 건 아닐까, 할머니의 행색과 냄새에 피할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완벽하게 할머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맞았던 것 같다. 뭐라 설명할 길 없는 감정에 오랜 기간 마음이 먹먹했다.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나에게 값진 교훈을 주었던, 무거운 책임이 느껴지는 이 빵과 요구르트를 먹지도 못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그때처럼 찬 공기가 코 끝을 스치고 지나갈때면, 정말 천사가 아니었을까 싶은 할머니가 주고 간 보름달 빵과 요구르트가 가끔 생각 난다. 편견 많고 용기 없는 나에게 큰 교훈을 주신 할머니가 지금 어디선가 사람들의 보호 아래서 안전하게 지내시고 계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삶이란 건 무엇일까. 진정한 도움이란 건 무엇일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난 아직 답을 찾아가는 중이고, 앞으로도 그 답을 알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건,
항상 도움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항상 도움 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
도움을 받는 이도 줄 수 있는 이도 결국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는 것.
우린 누구나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아 생을 이어가고 있는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인생의 곳곳에 존재하는 따스한 손길들이 오늘도 당신과 나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
오늘과 내일의 나를 살리는 이가 내가 하찮게 여기는 누군가 일수도, 내가 보호한다고 여기는 누군가 일수도, 내가 도움을 준다고 여기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도움을 주는 사람도 정해져 있지 않고, 받는 사람도 정해져 있지 않으며 도움은 돌고 돈다.
상대의 행색이나 신체적, 경제적 환경, 나이, 직업 등 어떠한 것에도 편견을 가지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는 용기를 내어 겸손한 도움을 주고, 선뜻 나에게 도움을 베푸는 이의 도움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기로 하자.
이 모든 건
“ 더불어 사는 우리 ” 라는 마음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자는
누군가를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도울 수도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도움을 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상대를 향한 편견 없이 겸손한 마음.
상대를 나와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도움을 주고, 받는 자세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도움이 아닐까.
내가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천사들에게 오늘도 빚진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
누군가가 나에게 빚진 마음이 들지 않도록, 우리라는 마음으로 행하자.
당신이 있어야 나도 있기에.
- 글이 쓰다보니 너무 길었네요.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