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의미있는 돌멩이가 생길 수 있을까
결혼을 하며 신혼집으로 이사가기 위해 짐을 챙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방정리는 역사의 현장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일 같았다. 뭘 놓고 가고, 뭘 버리고, 뭘 가져가야 할지, 그것을 정하는 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의 의미와 현재의 가치까지 따져가며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것이었기에 짐을 정리할수록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머리까지 복잡해졌다. 결국 짐을 챙기다 지쳐 거실에서 쉬고 있었는데, 엄마께서 우리집 거실 수납장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동그란 돌 몇개를 가져오셨다.
“ 딸 이것도 가져갈래? ”
“ 그게 뭐야? 왠 돌? ”
“ 이거 기억 안나? 너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한참을 계곡에서 예쁜 돌 찾는다고 하더니 가져왔잖아.”
엄마의 말을 들으니 어렴풋이 생각이 날듯 말듯 했다.
“ 내가 그랬어? 기억이 날듯 말듯. 에이 근데 뭘 이걸 가져가. 그냥 돌이네. ”
난 그제야 그 돌이 왜 오랜기간 우리집 거실 수납장 위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풀렸다.
“ 그냥 돌 아니야. 봐 봐. 얼마나 예쁜데. 네가 그때 얼마나 열심히 찾았는지, 진짜 매끈하고 동그란 예쁘게 생긴 돌들을 잘 찾아왔다니까. 이거봐. 너무 예쁘지 않아? ”
엄마의 말에 돌들을 집어서 보았다. 지금의 내 눈으로 보기에는 좀 평범해보였다. 내가 이 돌들에 반해 얘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왔단 말이지. 흐음-
돌들을 무심히 쳐다보다 이내 엄마 손에 내려놓았다.
“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에이, 난 안 가져갈래.”
“ 그래? 그럼 엄마가 가질게. 얼마나 예쁜데. ”
엄마는 시큰둥한 나를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돌들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 보며 흐뭇하게 쳐다보고는 제자리로 가져갔다.
돌들이 오랜만의 외출에 신이 났다가 바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느끼곤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납치해서, 이 재미없는 곳에 데려다 놓고는. 이제와 모른 척 하다니. 너무하다 너무해.
괜히 돌들에게 좀 미안했지만, 나에겐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돌멩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엄마 눈에는 저 돌들이 그렇게 예뻐보이나. 왜 난 이제 쟤들이 안 예뻐보이지. 의문을 던지려던 찰나, 엄마가 크게 말씀하셨다.
“ 딸, 그럼 이거 가져갈래? ”
“ 뭔데? ”
엄마가 신이 난 표정으로 방긋방긋 웃으며 손바닥에 뭔가를 올려놓고, 나에게 다가왔다.
“ 짠! 너 어릴 때 뺀 이. ”
“ 으악. 이게 뭐야. 이게 어떻게 있어? ”
“ 이것도 너가 가져왔잖아. 치과에 가서 초등학교땐가 발치하며, 이걸 버리는 걸 알곤 의사선생님한테 달라고 했대. 본인꺼라고 버리고 오긴 그랬는지. 그래서 이걸 엄마한테 줬잖아. 귀엽지? 이거 가져가 그럼.”
아주 조그맣지만 심술맞게 생긴 유치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날 신혼집에 데려가. 너 예전에는 나 버리고 가는 기분이 들어서 집까지 데려와 놓고. 이제와서 모른척이냐.
“ 엄마. 이걸 왜 안 버렸어. 나 안 가져갈래. ”
“ 어머, 이걸 왜 버려. 그럼 가져가지마. ”
유치가 엄마 손에 잡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며, 날 째려보는 것 같았다.
야박한 주인녀석. 변했네 변했어. 과거를 잊는 자에겐 현재도 없다!
엄마는 유치를 원래 자리에 돌려 놓은 뒤, 신이 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 너 유치원 때인가. 엄마한테 나뭇가지 선물해줬던거 기억나? 손에 꼭 쥐고 왔는데 얼마나 꼭 쥐고 왔는지 나뭇가지가 땀에 젖어 축축했어. 평범한 나뭇가지였는데. 그게 네 눈에는 너무 예뻐보였나봐. 엄청 소중한 거를 가져오는 것처럼 꼭 쥐고 와선, 엄마 이거 선물이야. 이러면서 줬었는데. 그걸 버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
금시초문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야기하는 엄마의 눈빛이 반짝반짝거렸다. 반짝이는 눈빛을 하며 환하게 웃는 엄마를 바라보니 왠지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우리 딸이 봤을때 그 나뭇가지가 정말 특별하고 예뻐보였나봐.”
그 말을 하며 환하게 웃는 엄마는 어딘가 행복해보였다. 난 그뒤로도 엄마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었는데, 생각해보면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때 처음으로 용돈을 모아 엄마, 아빠에게 해주었던 선물도 아직 갖고 있는 듯 했다.
어느 날엔 어떤 옷을 보여주며, 초등학교 고학년때 내가 해준 선물이라고 기억나냐며 해맑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헉 그렇게 오래된 옷을 아직도 가지고 있냐고 했었는데. 바보같은 딸은 엄마가 워낙 검소한지라 낡고 해진 그 옷들을 아직 갖고 있는 줄 알았나보다.
이상하게 나도 모르는 나를 추억하며 환하게 웃는 엄마를 바라보니, 마음 한 켠에 살랑거리는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나에겐 이젠 기억도 안나는 의미 없어진 돌멩이들을 꼬마인 내가 예뻐해줬던 것처럼 여전히 예뻐해주며 소중히 아껴주고, 그걸 찾고 기뻐하던 내 모습을 생생히 추억하며 아직도 함께 기뻐해주는, 심술맞고 못나게 생긴 유치를 바라보며 의사 선생님에게 자기 이를 달라고 해서 기어코 가져온 꼬마를 기특하다며 그리워해주고, 그때의 나처럼 유치를 기어코 못버리는, 어디서 주어왔는지도 모르는 평범한 나뭇가지를 내 시선에 맞추어 예쁘다 바라봐주고 아직까지 마음 한 켠에 고이 보관해두며, 나뭇가지를 선물하던 그 꼬마를 떠올리며 아직도 설레는 미소를 짓는.
나의 마음엔 그림자도 남기지 못하고 빠르게 지나갔던 어떠한 것들이 엄마에겐 옷장 한구석, 서랍 한구석, 마음 한공간을 차지한 채 떠나가지 못하고 남겨져있었구나. 왜 내가 엄마만 보면 어리광 많은 딸이 되는지 나는 그때 알았다.
엄마의 마음엔 아기인 나도, 꼬마인 나도, 학생인 나도, 성인인 나도, 지금의 나도, 마치 손을 내밀면 손이 맞닿을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었구나.
당신이 그랬듯 시간이 지나 아이를 품에 안게 된다면, 나에게도 평생을 버리지 않고 바라보며 미소지을 수 있는 의미있는 돌멩이가 생길 수 있을까.
예쁘고 매끈매끈한 돌멩이를 찾느라 분주했던 내 눈이 돌멩이를 의미있게 간직해 둔 엄마 덕분에
드디어, 나를 향해 항상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엄마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마음에
살랑거리는 따스한 바람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렇게 아주 조금씩
당신의 마음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