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토랑 Oct 17. 2021

티셔츠를 걸레로 착각한 소년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태국에 공연으로 봉사 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어느 날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모여있는 고아원에서 연락이 와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 아이들 30여명정도가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고아원이었다.


그곳에 가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가며 이 아름다운 풍경 안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있다는 현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걸 생각하니 괜히 풍경이 쓸쓸해보여 아름다움은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고아원에 도착하니, 시설이 열악해보이는 그곳과는 반대로 한눈에 보기에도 보호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티가 나는 밝고, 명랑하고, 건강해 보이는, 그곳의 풍경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따사로워보이는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아원의 열악한 시설 탓에 우리는 공연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강당이나 공연을 할 만한 넓고 평평한 바닥을 가진 장소는 물론이고 아주 작은 스피커조차 없었다. 스피커라곤 그곳에서 봉사하는 미국인 친구의 노트북이 전부였다.


아쉬웠지만, 우리 팀은 최소한의 적은 인원으로 가능한한 공연을 빨리 마무리하고, 남은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시설은 열악하지만 적은 스텝 수와 넓은 장소로 인해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해 보이는 그곳의 하루 일손이 되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여 그 날 나의 일은 고아원에 있는 작은 도서관 청소를 도맡아 하는 것이었다. 우리 공연팀의 인원도 적은 편이기에 청소 구역 한 곳당 한, 두명이 배정되었고 도서관은 혼자 할 만한 곳이라 해서 자신만만하게 갔는데.


아뿔싸.


도서관에 도착해보니 꽤 넓었다. 그리고 밖이 흙이여서 그런지, 내부가 바닥빼고는 책상, 책장, 책 등 온통 흙먼지로 뒤덮여서 눈으로 보기에 쌓인 먼지가 거의 1cm는 되어 보였다.


이곳을 혼자 청소해야 한다니. 넋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바닥을 빗자루로 청소하고 대야에 물을 퍼오고 걸레에 물을 적시고, 당연히 청소기 따위는 없는 곳에서 젖은 걸레가 굳은 먼지를 닦아내며 까맣게 되어버리기를 몇 번을 반복했고 대야에 물을 몇 번을 바꿔오면서 에어컨도, 당연히 선풍기도 없는 그곳에서 얼굴과 몸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아이들이 다른 생김새의 내가 자신들의 환경에 들어와 땀을 비 오듯 쏟아내며 청소를 하는 것이 신기한지 내 주변을 맴맴 돌았다.


영어를 아직은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내 주변을 맴돌며 여러 번 인사했다.


“Hello!”

“Thank you”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며 고맙다를 외치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몇몇 아이들이 내가 모아놓은 책의 먼지를 다 털어내자, 아직 먼지를 털지 않은 다른 편의 책들을 장난치듯 깔깔 웃으며 소심하게 갖다 주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아이들과 팀을 이루어 청소를 했다.


하지만 먼지가 쌓인 책상과 책보다 가장 힘겨운 싸움은 먼지가 가득한 책장이었다. 낡은 책장에 굳어버린 쾌쾌 묵어버린 검은 먼지는 몇 번을 수건으로 긁어내도 깨끗하게 떨어져 나갈 줄을 몰랐다. 어느덧 까맣게 변해버린 수건들이 가득하고 몇년을 그곳의 주인이었던 먼지와 씨름을 벌이느라 아이들을 잊고 있던 찰나 땀으로 범벅이 된 힘이 다 빠진 몸을 이끌고 힘겹게 물을 버리고 대야에 깨끗한 물을 떠왔는데 한 아이가 내가 하던 쪽 반대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모를 수건으로 박박 닦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얘 너 뭐하니? ”


나를 쑥스럽게 쳐다보는 아이는 아까부터 내 주변을 맴돌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유일하게, 과묵하고 진지하게 정말 도움다운 도움을 주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책을 갖다 주면 다른 아이들도 따라 하고, 마치 아이들을 움직이는 반장 같아 보이는 진중해 보이는 친구였다.


이 친구는 아빠가 던진 술병에 눈을 맞아 한쪽 눈이 실명되어 한 눈만 보이는 친구였는데, 뜨고 있는 한쪽 눈이 유난히 깊어 보이고 반짝이는 그런 친구였다. 내가 청소도구를 들고 들어설 때부터 나를 유심히 관찰하며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와주려고 애쓰는 그 친구가 생전 처음 겪어보는 먼지와의 전쟁에서 나는 참 든든하고 고마웠다.


그 아이는 내가 책장의 먼지들에 집중하기 시작할 때 내 주변을 맴돌며 지켜보다 본인이 할 일이 없다고 느꼈는지, 이내 먼지와 사투하느라 내가 어느 순간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줄 겨를없이 바빠지자 다른 아이들처럼 잠시 사라졌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반대편 책장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이미 시커먼 수건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책장을 닦고 있는 언제 왔는지 모를 그 아이를 발견하고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아는 척을 하자, 아이는 씩 웃으며 짧은 영어로 대답했다.


“ for you.”


그렇게 말하고는 쑥스러운지 다시 책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청소에 열중하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뭉클해짐과 동시에 코끝이 찡해졌다. 하지만 감동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나는 얼른 끝내리라 다시 청소에 열중했고 아이도 나와 함께 반대편 먼지와의 사투에 열중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팀을 이루어 먼지와 사투했다.


대야의 물이 여러번 바뀌었고, 버려야 할 수건도 늘어갔다. 점점 도서관도 잃었던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사투를 벌인 걸까. 밖에서 우리 팀 몇몇이 청소를 끝냈는지 아이들과 장난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창가의 해도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져 속력을 더했다. 그렇게 마지막 책장 청소를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 들어설 때와 달리 꽤 도서관다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감개무량했다.


온몸과 옷이 물 속에 있다가 나온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땀 흘리는 것을 엄청 싫어해서 여름엔 샤워를 5번을 한 적도 있는 나인데, 하지만 이상하게 전혀 찝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 흘린 땀만큼 얼룩진 나의 마음과 영혼이 아주 조금은 청결해진 기분이 들었다.


여태 나와 함께 해주었던  친구와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어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도 청소를 마치고 자신의 걸레를 대야에서 빨고 있었다. 그런데 걸레가 어찌나 쌔카만지. 너무나 까맣게 변해버려서 도저히 걸레가 빨리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레를 빨았다. 아이에게 다가가 걸레를 달라 했다. 내가 최대한 하얗게 해볼게.


그런데 이게 뭐지.


이건 걸레가 아니다. 뭔가 이상해서 걸레를 펴봤다. 하얀색의 티셔츠, 옷이었다. 헐. 하며 놀란 표정으로 아이에게 물었다.


“ 이거 네꺼야? ”


아이는 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더니 민망한지 해맑은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낡지 않은 옷이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처럼 옷이 많지 않다. 그런 이곳의 아이들에게 옷은 하나하나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옷은 이젠 버려야 될 정도로 새까만 못 입는 옷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음이 너무 심란했다.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내게 아이가 의젓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 I’m ok. Don’t worry. I want to help you.”


아이의 돕고 싶었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울컥했다. 아이가 그렇게 말을 하고 웃는데, 아이가 날 돕기 위해 밖에 나가 걸레를 찾다가 걸레가 없자 (얼마 안 되는 걸레를 우리 팀이 다 가져갔기 때문에) 자신의 옷을 가져오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남은 걸레가 없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옷을 가지러 갔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심란해진 것을 느낀 눈치가 빠른 아이는 나에게 계속 괜찮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진심을 다해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울보인 나는 말하면서 엉엉 울 것 같아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어른인 척 조심히 다가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혹시라도 내가 울어 민망한 상황이 만들어질까 싶어 아이에게 시선을 주진 못하고 아이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귓가에 여러 번 말해주었다.     


“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 so much. I’ll miss you. I won’t forget you. ”     


아이가 그런 나를 쳐다 보며 머쓱한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 I miss you too. Bless you.”


아이의 말이 아이의 키답지 않게 묵직했다. 아이의 눈빛처럼 투명하고 순수했다. 그 말이 조금은 청결해진 내 마음에 작은 씨앗을 하나 뿌렸다. 그런 예쁜 말을 하며 환하게 웃는 아이의 시선을 피할 수 없어 촉촉해진 눈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이 찢어지도록 크게 웃었다.     


나는 내가 더 많이 움켜쥐려고 할 때마다 까맣게 되어버린 아이의 티셔츠를 생각할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적어 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아이의 진심 어린 축복을 떠올릴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보이지 않을 때마다 세심하게 날 관찰하던 그 반짝이는 눈빛을 생각할 것이다. 나는 내가 상처투성이가 돼서 사람을 다시 사랑하지 못하게 될 때마다 사랑이 가득하던 아이의 남은 한쪽 눈과 아이의 잃어버린 한쪽 눈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먼지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동지로서 서로를 오래도록 그리워할 것이다.


고마워,

먼지 구덩이에서 나를 구해준

작지만 위대한 친구.


나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없어도,

내게 줄 것이 늘 넘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이전 06화 사소해보이지만 어려운, 아주 따뜻한 관심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배우는 사랑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