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든.
사람은 각자 자신과 동일시하는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은 때로 개인이나 집단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직업이나 취미 생활, 그것도 아니라면 물건이나 장소, 본인이 추구하는 어떤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것들이 있었다. 꼭 나의 모습처럼 보이던 것들 아니 어쩌면 나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것들.
필자는 왜인지 간격을 맞춰서 심어놓은 관리 잘 된 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정돈되고 깔끔한 빌딩숲을 걷노라면 마음이 뻥뚫린 것처럼 시원하고 개운해졌다. 그런 나에게 부모님은 네가 태어난 곳이 그런 곳이라 그런가보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부모님이 말하는 빌딩이 즐비한 서울 중심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을 인천에서 보낸 나는 어딘지도 모를 다른 화려한 도시들을 흠모하곤 했다. 하늘 위로 치솟아 번쩍이며 빛나는 높은 빌딩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인지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것들을 바라보며 살고 싶었다.
어릴 적 서울에서 벗어나 처음 인천으로 이사간 곳은 산이 집 바로 옆에 있는 곳이었다. 산으로 둘러쌓인 곳에 아파트같은 단지형 빌라가 길게 들이선 곳이었는데, 왜인지 그곳이 무서웠다. 정말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 태어나서 그런걸까. 밤이 되면 어두움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그곳이 가끔 무섭고 안전하지 못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난 동네에 애정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이사를 갔다. 전에 살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단독주택이었다. 그곳은 대로변에 위치한 어느 국회의원이 지은 것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집에 고풍이 넘쳤다. 사업을 하는 아빠 덕에 우리는 거실에 값비싼 샹들리에를 달았다. 도시의 화려함같은 샹들리에가 거실에서 찰랑찰랑 아름답게 빛났다.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 수 있는 드넓은 거실과 거실 한 벽을 통창으로 마무리 한 그 집은 겨울엔 좀 추웠지만, 샹들리에 덕인지, 드넓은 거실 덕인지 어린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친구들도 우리집에 한번 오고 나면 또 놀러오고 싶어했다.정원에서 동물도 키울 수 있고, 친구들과 뛰놀 수 있던 놀이터같던 그곳이 참 좋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사를 갔다. 다음 이사 간 동네도 도시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동네였다. 오히려 도시의 삭막함, 칙칙함과 가까웠다. 적당한 키의 관리 잘 된 나무 한그루 없는, 산업 도시의 그늘같은 동네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었다. 화려한 샹들리에도 드넓은 거실도, 높은 빌딩들도 없는 그 곳에 처음 이사 갔던 날, 난 그 동네가 주는 무게에 눌려 버리는 기분이었다. 이사를 가자마자 떠나는 것을 꿈꿨다. 그 동네에서 어딘지도 모를 화려하고 정돈된 도시에 대한 열병은 더욱 심해졌다. 매일밤 눈을 뜨면 전에 살던 집이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아니면 다른 곳 어디라도. 그제야 산 속의 뒤죽박죽 자란 나무들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정렬된 나무들이 깔끔하게 자리한, 빛이 영롱하게 반짝이는 화려한 도시로 이사가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 다행히 하는 일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청담, 압구정, 신사같은 서울의 중심에서 보내게 되었다.불편했던 마음도 한결 편해졌고, 매일 같이 그곳에 가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화려하고 세련된 그 동네 특유 분위기를 좋아했던 나는 키도 큰 편인데 늘 도시를 쏙 빼닮은 하이힐을 즐겨 신고, 셋팅된 긴머리를 휘날리며 다녔다. 그 때문인지. 새침한 외모와 맞물려 사람들은 날 도시여자의 정석같다고 칭하곤 했다.
그런 내 모습에 취해 있던 20대 중반, 홍콩에 잠시 반년정도 머문 적이 있었다. 홍콩의 트레이드 마크인 별이 쏟아지는 듯한 야경 탓에 난 홍콩 라이프를 꽤나 기대했다. 하지만 내가 머물게 된 곳은 빌딩도 아파트도 있고, 단독주택도 요트도 많은 곳 이었지만, 도시 중심가와 거리가 먼, 바다가 한 눈에 들어 오는 잔잔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조용한 곳이었다. 내가 흠모하던 바쁜 걸음의 세련된 사람들과 아름답게 반짝이는 빌딩숲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끔 바다의 짠 냄새가 일대에 그윽하게 풍기며, 느린 발걸음으로 편안한 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머무는 집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 나가면 파도 치는 소리가 들리는 해변가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의 가게들은 화려한 도시의 가게들과 달리 소등도 빨리 했다. 저녁 시간만 지나면 길거리엔 인적이 거의 끊기는, 밤바다의 깊은 어둠만 내려앉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단독주택을 쉐어했는데, 영어가 모국어인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솔직히 꽤 외로웠다. 그곳에서 난생 처음 느껴보는 이방인의 고독이 영혼에 스며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마치 박제되어 있는 그림 같았다. 온전히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과제하고 수업을 듣기 위해 모자란 영어 실력을 보충하느라 늘 바빴다. 처음 느껴보는 고독감 때문이었을까. 난 그곳에서도 나에게 만족감을 안겨주는 화려한 도시를 그리워했다. 바쁘고 빡센 그곳의 스케줄과 고된 연습으로 이십 대가 되어 처음으로 운동화와 편한 복장을 한 채, 자주 머리를 묶고 다녔는데 한국과 상반된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고, 셋팅한 머리에 세련된 옷과 하이힐을 신은 내 모습이 그리웠다.
그래서 가끔 과제를 하고 시간이 남으면 홍콩의 번화가로 놀러갔다. 하이힐을 신고 세련된 옷을 입고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가끔 나서는 외출은 상쾌한 만족감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난 그렇게 가끔 도시에서 위로를 받고 왔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어느 날은 시간이 없어 처음으로 평소 연습할 때 입는 운동화에 트레이닝 차림으로 그곳을 갔는데 그 날따라 왜인지 번쩍거리며 날 압도하는 화려한 빌딩 밑에 서 있는 내가 작아보였다. 갑자기 그동안 즐겨 신는 하이힐과 즐겨 입는 세련된 옷차림이 도시의 화려함에 지지 않으려는, 장비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도시에서 처음으로 엄마 자궁 속에서 느꼈을 것같은 편안함과 만족감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로 화려한 도시를 그리워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외로운 감정이 들 때마다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운동화나 슬리퍼를 신고는,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집 앞에 있는 해변가를 걸었다. 혼자서는 처음 산책하는 바다, 끝 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그날 난 울고 있었다. 그때 받았던 위로 때문인지, 그 뒤로도 자주 음악을 들으며 집 앞 해변을 거닐었다. 처음엔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모래가 불쾌해 인상을 쓰며 바로 털어내곤 했는데 어느 순간엔 그 모래들이 정답게 느껴졌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땐 요트와 해변가 앞 고층 아파트와 빌딩의 불빛들 그것들과 함께 있는 바다가 아름다워 보였는데, 더이상 요트와 고층 아파트, 빌딩의 불빛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드디어 오롯이 보게 된 바다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밤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캄캄했지만 묵묵하게 지긋이 날 바라봐 주었다. 누군가 깰세라 잔잔하게 파도치는 그 소리는 매우 깊고 따뜻했다. 그렇게 바다와 가까워지며 마음 깊은 곳 가득했던 이방인의 꼬리표도 점점 희미해졌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부모님과 친구들이 참 보고싶었고, 내가 살던 동네와 집이 참 그리웠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쇼핑도 하러 가지 않게 되었다. 하이힐과 세련된 옷들, 유행에 민감하던 내가 더이상 패션 트렌드가 궁금하지 않았다. 자신 외에 타인과 사회의 시선에는 관심이 없던 단벌 신사인 친구, 드레스업이 필요한 날 외엔 편안한 복장으로 해변에서 뒹구는 또 다른 룸메이트, 잠옷같은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는 또 다른 친구, 그리고 바다와 어울리며 난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몇개월, 이십 대 이후 처음으로 운동화와 슬리퍼만 신고 보낸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더이상 화려한 도시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내가 지내고 있는 곳의 고요함과 아늑함이 좋았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화려해야 할 땐 화려하고 세련된 복장을 입을 줄 알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날엔 몸이 편안하게 느낄 매우 자연스러운 옷차림을 즐겨 입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연을 즐겼고 기뻐했고, 그 속에서 온전히 누렸다. 그리고 친구들은 도시 또한 즐길 줄 알았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만족감을 느낄 줄 알았고, 오늘 하루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은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센트럴 파크에서 야경을 봤다. 내가 사랑하던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 더이상 황홀하지 않았다. 도리어 압도적인 빛을 내뿜으며 무언가를 감추려는 것처럼 보였다. 도시의 한 켠에 자리한 고독, 가난, 슬픔, 고통, 외로움의 비명들이 압도적인 빛에 의해 소리 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하고 흩어지는 듯 했다. 그곳에서 너도 나도 아름다운 장신구와 고급지고 세련된 의복으로, 치부와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껍데기를 감추려는 듯 했다. 영롱하게 빛나는 것들에서 얻은 값싼 평안과 안식이, 도시의 꺼지지 않는 불빛 속에서 위태롭고 불안정하게 마구 흔들리는 듯했다. 도시는 구원을 바라지만 껍데기에 파묻혀 숨이 막힌, 잔뜩 움츠려든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더 크게 드러내며 압도적으로 번쩍이는 빛을 비추었다. 그 화려함에 처음으로 취하지 못하고 숙연해진 마음을 안고 센트럴파크에서 내려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출국 전, 짐 정리를 하며 신발장 한 공간에서 화려함을 내뿜고 있는 1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하이힐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라면 난 그것을 신고 공항으로 출발했겠지. 하지만 왜인지 손이 가지 않는 그 아이를 캐리어에 넣어 버리고, 운동화를 신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세련되진 않지만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옷을 입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하이힐 속 꿈꾸던 도시를 뒤로 하며,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이 더 큰 꿈을 꾸는 것처럼 설레었다.
발가락 사이 사이로 들어오는 모래알의 감촉이 참 좋다. 밤바다를 비추는 은은한 달빛이 참 좋다. 운동화를 신고 땅에 발을 맞닿은 채 걷는 가벼운 발걸음이 참 좋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은 하늘이 참 좋다. 나를 그들의 일부로 두 손 벌려 받아주는 자연이 참 좋다. 값을 치루지 않아도 나에게 자신들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모두 나눠주는, 깊은 평안을 거저 주는 바다와 산, 호수와 강, 해와 달, 하늘이 참 좋다.
그리고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세련되고 고급진 옷을 입고 셋팅된 머리를 하지 않아도
어디에 살든, 어디서 어떤 모습이든
날 사랑해주는 당신의 눈빛이 정말 좋다.
그렇게
당신과 함께하는 그 모든 곳을 꿈꾼다.
당신이 어떠한 모습이든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곳이 당신의 꿈이 되며,
어디에서나 즐기고 기뻐하고 만족하는,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당신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