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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랑 Oct 20. 2021

쉬지 않고서는 멀리 갈 수 없다.

적절한 타이밍에 누리는 적당한 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나홀로 점심을 먹고,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수성동 계곡이 자리잡은 인왕산 초입. 가을비가 내린지 얼마되지 않아 물이 넘쳐 흐르는 생명력 있는 소리가 근방에 그득했다. 무엇이 그리 신이 난지 즐겁게 지저귀는 새소리들과 가을을 알리며 그림 그리는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어우러진, 가볍게 걷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조금 걷다 초입에 자리한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새파랗게 익은 하늘이 가을 날씨처럼 활기로 충만해보였다. 앉은지 얼마 안되어 누군가 확신에 차 크게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쉬지 않고선 멀리 갈 수 없어요. 자자, 모두 잠깐 쉬었다 갑시다."


깊게 패인 주름만큼이나 생기와 열정이 얼굴에 가득 묻어 있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외치시더니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어랏. 밍기적 댈 틈이 없었다. 빠르게 할머니의 일행을 보니 내 바로 옆 벤치와 내가 지금 앉은 벤치에 모두 앉으면 내가 가운데 낀 꼴이 될게 뻔했다. 망설일 것 없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학생, 일어나라고 여기 앉은 게 아닌데.. 앉아있어도 돼요! 가지마요! "

일어나기가 무섭게 할머니의 주름만큼 또렷한 목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그냥 가기엔 할머니의 가지마요가 너무 애처로왔다. 난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 아. 저는 원래 막 가려던 참이었어요. "

결국 개미만한 목소리로 이도저도아닌 말을 남긴 채, 황급히 자리를 옮기며 살짝 후회했다. 할머니의 애절한 목소리에 미안한 감정 생기지 마시라고 예쁜 말, 유쾌한 감정, 상큼한 기분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결국 말보단 행동이 앞서고, 머릿 속 생각과 언어는 늘 불일치하는. 뭐, 나에게 자주 있는 일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저보다는 할머니들께 의자가 더 필요한 것 같아서요. 멀리 가시기 전 좋은 시간되세요" (상큼한 목소리로 밝게 웃으며) 였는데. 나는 왜 이런 말이 현실 세계에선 바로바로 생각이 안나는걸까.


할머니의 "쉬지 않고선 멀리 갈 순 없어요." 란 말을 드자마자 마음에 확 꽂히며 여러가지 생각들이 물 밀듯 들어왔기에, 자리를 박차고 떠나려던 참이긴했다. 쉬지 않고선 멀리 갈 수 없다. 이 말을 여러번 되새겨보았다. 거꾸로하면 멀리 가려면 쉬어야 한다. 1+1=2 처럼 당연한건데 우리는 생각보다 이걸 간과할 때가 많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쉼을 죄악시하는, 젊음을 불태워 모두에게 박수 받는 결과로 만들려던 그런 사람. 20대 초반, 나는 음악에 미쳐있었다. 미쳐있었다라는 말 밖에는 그때 상태를 대체할 만한 어떠한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스스로가 음악을 위해 태어났고, 음악이 날 선택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늦게 출발선에 선 나는 처음 마음가짐과는 다르게 점점 불안해졌고 스스로에게 혹독했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도 느꼈지만, 아직 어떠한 성취도 이루지 못한 나를 재능만으로 인정해주고 주목해주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분명히 처음에는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음악이, 그저 좋아서 이것만 할 수 있다면 가난해도 좋아라며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쩐지 늘어나는 기대와 주목에 부담감과 책임감, 욕망 또한 늘어났던 것 같다. 불안감때문이었을까. 아침부터 새벽까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듣지 못하는 환경일 때도 귓가에 맴도는 음악에 집중했고, 음악에 대해 생각하느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연습을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쉬지 않고 연습과 곡에 대한 공부, 연구를 했다. 남들이 거의 10년 한 것을 최소한의 시간으로 단축시키기 위해 나에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없는 시간을 있게 만드는 것. 이것 뿐이 답인 것 같았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잠을 안자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엔 안 자도 멀쩡하다 느꼈다.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땐 그것이 불안이 아닌 열정인 줄 알았고, 음악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 느꼈기에 나를 지키는 것보다 내 재능을 지키는 것에 몰입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과찬을 받았다. 그 어떤 칭찬보다 내가 원하던 일로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짜릿했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곧 원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그들이 말하는 대로 세상에 한 획을 그을 것만 같았다. 나를 혹독하게 밀어 붙이는 스승에게 듣는 천재 소리를 지키기 위함이었는지,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트로피를 원했는지, 처음의 순수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스스로를 잔인하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일어나보니 몸이 고장나 있었다. 왼쪽 어깨부터 손 끝까지 마비상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처음엔 잠을 잘 못 잔건가 싶어 무식하게 기다렸는데 몇시간이 지나도 팔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아니였다. 너무 혹독하게 연습에 매진한 나머지 근육과 신경, 온 몸이 난리가 났나보다. 남들은 달리고 있는데 아니 이미 10년을 먼저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금 팔 마비라니. 사망선고가 내려진 기분이었다. 그땐 바빠 거의 떨어져 있던 부모님께 울면서 전화하니 부모님이 놀라서 달려오셨다. 어떤 상태인지 전혀 짐작을 못하셨다. 갑자기 멀쩡하던 팔이 마비라니 나처럼 와닿지 않으셨나보다. 내일 병원에 가보자고 하셨다. 선생님에게 연락했다. 선화 예중, 예고를 나와 독일 명문대를 졸업한 선생님은 쿨했다. 특유의 엘리트 의식에 젖은 목소리로 자기도 그런 적 있었다며 빠르면 몇주 길어봤자 한달이라며. 일주일 푹 쉬고, 그뒤론 서서히 돌아올테니 완벽히 나을 때까지 오른손으로만 연습하란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은 되었다. 나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그때까진 전혀 모르던 터라 선생님 말씀대로 곧 돌아오겠지하며 일주일은 이론 공부를 하며 좀 쉬자 했다.


막상 쉬기 시작했는데, 뭘 해야할지 몰랐다. 첫날부터 할게 없었다. 음악을 듣고 연주자들의 연주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갑자기 마주한 쉼은 달갑지 않은 불청객 같았다. 쉰다는 것은 도태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불안한 감정이 날 짓눌렀다. 이대로 팔이 마비되면 앞으로 뭐를 해야하는걸까. 중요한 시기인데, 하루 하루가 아쉬운데. 몇주가 아닌 몇달이 되면 어쩌지.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길면 몇주라 했는데 팔은 한달이 되도 그대로였다. 난 너무 초조해지고 멘탈이 거의 나갔는데 선생님은 그래도 쿨하셨다. 절망을 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른손만으로 연습을 하며 매일 마음을 달래기도 했지만, 우울과 좌절, 희망과 절망 각종 감정 사이를 마음이 널뛰기를 하듯 건너 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쉼을 온전히 누리게 되었을 때, 문득 내가 음악만을 위해 태어난 건 아니지 않을까 의문을 던졌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다른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가지에만 목매며 이걸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귀가 들리지 않거나 갑자기 몸이 불구가 되어버리면 스스로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았다. 오랜만에 음악과 나를 분리해 생각했다. 그동안 잊고 있던 근원적인 나라는 존재. 음악이 아닌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 존재의 이유.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었다.


나 자신을 성공한 인생을 위한 욕망의 도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니, 스스로를 격려하고 돌보게 되었다. 그렇게 원치 않던 쉼은 경주마처럼 좁은 시야로 앞만 보고 달리던 내게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말처럼 넓은 시야와 여유를 안겨주었다. 몸도 그걸 안걸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뎠지만, 3개월을 안 채우고 왼손과 팔은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시야가 좁아질 때마다 음악은 내가 좋아서 선택한 그저 내 인생에 행복와 만족감을 더 해주고, 타인에게 유익과 감동을 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자주 되뇌였다. 물론 원래 생겨먹은 생김새가 있기에, 바로 엄청나게 변하진 않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난 전보다 스스로에게 덜 혹독해졌고, 그것이 무엇이든 결과에 대한 집착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가치관의 큰 테두리가 바뀌었고 그 부분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더이상 삶의 주인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로 했고, 나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집착하지 않으며 마음을 지키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때 운명처럼 내게 와주었던 쉼은 결국 내 마음과 몸, 영혼까지 살렸다. 나를 돌보지 못하고 실력과 성공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던 내가 그때 일을 계기로 조금씩 나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다른 사람들이 아주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여러가지 일을 거쳐 이젠 몸과 마음, 영혼이 망가져 쉼을 달라고 부르짖기 전에, 먼저 휴식을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커리어는 그냥 커리어일뿐, 난 더이상 음악을 하지 않아도 내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뒤로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그때의  모습처럼 쉼을 죄악시 여기거나, 용기가 없어 번아웃된 몸을 이끌고 절뚝이는 경주마처럼 삶을 이어가고 있거나, 현실의 중압감에 영혼이 눌려버려 조금의  후에 다시   있다는 믿음을 져버린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경주마처럼 살기엔 우리의 심장은 한개뿐이고, 쉼없이 달리기엔 한계가 너무 많다. 세상엔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눈부신 일들이 너무나 많고, 무엇보다  인생길 탈나지 않고 제대로 가려면 때때로 쉼을 내어 자신의 마음을 돌봐줘야한다. 그리고 아쉽게도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누가 대신 해줄  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 해야하는 일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누리는 적당한 쉼은 

당신을  멀리   있게 도와줄 것이다.

자신을 믿고 용기내어 짧던 길던,

자신만을 위한 온전한 쉼을 누리길 바란다.


마음을 돌봐주어라.

그것은 당신을 위한 그리고

당신 옆의 소중한 사람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아니라면,

멀리 가기 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쉼을 가져보아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휴식은 당신에게 가장 좋은 쉼이 되어줄 것이다.


다만 사랑에는 쉼이 필요하지 않다.

완벽한 사랑은 쉼 그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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