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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랑 Oct 04. 2021

사소해보이지만 어려운, 아주 따뜻한 관심

사람을 살리는 건 아주 대단한 것도 엄청난 것도 아니었다.


인생에 불행이 물 밀듯 들어오는 그런 시기가 있었다. 한가지 큰 사건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작은 삶 나의 울타리 안에 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다. 어찌할 방도도 없는, 연달아 터지는 불행을 그저 마주하며 순식간에 마음은 어둑어둑해졌다. 밝디 밝았던 마음이 빠르게 어두워지는 것에 밸런스를 맞추어야 했는지 그에 질세라 몸의 구석구석도 켜져 있던 불을 하나씩 끄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이 하나, 둘 고장나기 시작하더니 마음 깊은 곳에서 아주 위태롭게 켜져 깜빡깜빡거리던 마지막 불마저도 꺼져버렸다.


그렇게 서서히 삶에 존재하던 빛이 하나,  사라졌고어느 순간엔 빛이 존재하던 시간을 잊게 되었다. 어둠에 익숙해져 빛을 그리워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게 되었을 무렵, 사람에  둘러쌓여 있던 나의 주변 사람들의 그림자가 하나,  사라지기 시작했다.     


낮보다는 나의 존재를 그림자마저 집어삼키는 밤이 고맙고, 나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는 듯한 새벽이 편안한 그런 시절이었다.

 

찬란하고 눈부신 모든 것이 태어나는 설레는 봄이,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생명력 있게 자라나는 여름이, 아름답게 선선한 결실이 맺어지는 가을이 불편하게 느껴져, 모든 것을 고요하게 덮어버리는 겨울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던 그런 서늘하고 차가운 시절이었다.


그렇게 찾아온 어둠 속에선 모든 것이 귀찮았다. 아니 귀찮기보다 도저히 작은 것도 제대로 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어둠에 갇혀 앞이 캄캄해 보이지 않으니 모든 일에 흥미가 떨어졌던 걸까. 외모를 가꾸는 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토록 좋아하던 사랑하는 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일도, 매일 밤을 새워가며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도 흥미롭고 즐겁던 모든 것들이 다 의미가 사라졌다.


어느 날의 밤은 유독 더 짙었다. 나에게 생명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것을 불현듯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의 고통이 너무 깊어 온몸과 영혼이 베이고 찔린 듯 아팠다. 차라리 몸이 어딘가 다친다면 마음의 고통이 적어지지 않을까. 비정상적인 생각들이 오고 가던 불안정한 밤이었다. 정신과 육체를 까딱하면 모두 어둠에 빼앗길 것 같은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살예방상담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깊은 밤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화기 너머 지쳐 보이는 듯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흡이 끊어질 듯한 울음소리에 가려져 선명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습게도 그 날 의무적인 말투에 약간은 귀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그 사람의 목소리 덕분에 나에겐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어둠 속에 갇혀 울부짖던 나에게 누군가의 애정없고 형식적인 말투는 전화를 끊고,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잠시나마 현실 직시를 해주었다. 그래. 누가 내 아픔을, 슬픔을, 고통을 공감하고 알아줄 수 있겠어. 내가 죽는게 무슨 그리 큰 일이라고. 스스로에 대한 비참함과 인간에 대한 허무한 감정이 뒤섞여 아주 조금이나마 연민의 감정이 생겨 자기애를 되살려주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밤엔 그 목소리가 나를 죽음과 멀어지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큰 어둠이라는 벽에 갇혀가고 있었다. 빛이 꺼져버린 생기 잃은 얼굴이 보기 힘들어 거울을 보지 않게 되었고, 누군가 알아챌까 친했던 지인들을 만나는 것을 멀리했다. 혹시라도 피치 못할 이유로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날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화사하게 입고, 웃는 내 모습이 어색해 보이진 않을까 거울 앞에 잠시 서서 웃는 것을 연습하고 나갔다. 환하게 활짝 웃는 모습이 예쁘단 소리를 자주 들었었는데 왜인지 거울 앞에 서서 웃어 보이는 나는 전혀 환해 보이지 않고 초라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서였을까. 나는 이 연습의 끝에서 자주 예기치 못한 눈물을 마주하곤 했었다. 그 눈물을 조절하지 못해 몇 번 오열 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오랜만에 한 화장이 번질까 재빨리 마음을 다잡곤 했었지.


사실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도 예기치 못한 시각. 갑자기 떨어지는 눈물을 시도 때도 없이 마주했다. 일을 하다가도, 버스를 기다리다 가도, 길을 걷다 가도, 잠을 자다가도( 잠을 자다 눈물이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난 이때 처음 알았다.) 눈물 스위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 있어 통제가 어려웠기에 누군가를 만났을 때 어디 있는지 모를 스위치가 갑자기 작동할까. 사실 그게 가장 신경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루고 미루다 근 1년 만에 평소 자주는 못 봤지만 그래도 만나면 늘 함께 깊은 대화를 하던 마음이 통하던 지인을 만났다. 평소보다 조금 더 화사하게 입고, 젊음과 메이크업이 날 생기있게 만들어 준, 자연스레 많이 웃고 예전처럼 대화한, 미묘한 감정은 한 번도 내색하지 않은 순조롭게 해냈다고 생각한 그런 만남이었다.


만남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버스를 기다렸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며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려 애썼고 함께 자연스레 웃었다. 그러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나는 집가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차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었다. 그때 적막을 깨며 지인의 조심스럽고 따뜻한 말투가 내게 들렸다.


"혹시 무슨 일 있는건 아니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뒤를 돌아 지인을 쳐다봤다. 어디있는지도 모를 눈물 스위치가 눌릴까 괜시리 긴장했다. 아무렇지 않게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지인이 또 한번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걱정이 되서, 아무일도 없다면 정말 다행인데. 사실 아까 카페에서 갑자기 빛이 네 얼굴을 비추는데, 문득 네 얼굴이 평소랑 많이 달라보였어. 너무 슬퍼보였다고 해야하나. 근데 그게 너무 깊어보여서, 나까지 슬퍼지더라. 그래서 그때 물어볼까 고민하다 왠지 물어보면 안 될 거 같아서. 근데 모른 척하고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고민하다 물어보는 거야. 그냥 집가기 전에 꼭 한번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너 한번 안아줘도 돼?"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지인에게 어떤 말과 표정으로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무 각목처럼 가만히 서서 아직 대답도 못했는데 지인이 갑자기 나를 안아주었다.


" 고생했다."


나를 안아주는 지인의 손과 행동이 마치 사람을 처음 안아보는 것처럼 매우 어색해 보였다. 그런데 그 애정 어리고 조심스러운 어쩌면 아주 사소할지 모르는 관심 어린 그 말에 내 마음에 마지막으로 꺼져버렸던 희미했던 작은 불이 한번 깜빡하는 것을 느꼈다. 어색하지만 따스하고 용기 있는 그 행동에 모든 불이 꺼져있던 몸에도 깜빡하고 작은 불이 켜졌다 꺼졌다. 짧은 찰나의 순간,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스함 때문일까. 왜인지 마음이 울렁거렸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고,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지인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보자며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가장 밝게 인사했다. 버스 안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지인에게 눈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지인이 시야에서 멀어지자마자 내 눈에서는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자 갑자기 훅-하고 마음으로 작은 빛이 들어왔다.


나는 누군가가 내가 어둠 속에 갇혀있는 것을 먼저 알아봐주길 기다렸던걸까.


그 뒤로 사소해 보이지만 어려운, 아주 따뜻한 관심을 주었던 지인과 애정 어리게 나를 돌봐주며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주었던 다른 이들로 인해 내 마음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언제 어둠에 갇혀있던 건가 싶을 정도로 그 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 경험 전 아주 멀게 느껴졌던 어둠이 한 사건 후, 얼마나 쉽게 내 삶을 집어 삼켰었는지를 기억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항상 주변을 맴돌 것을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이상 나에겐 어둠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어둠 속에 갇혀있는 이들을 이제는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영혼이 그것을 먼저 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쉽게 지나갈 수 있던 어둠이 드리운 이들을 이제는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이미 빛이 꺼져버려 어둠에 익숙해져버린 이들이나 깜빡이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는 이들을 만날때마다 마음이 쓰인다. 저 빛은 언제 꺼졌을까. 어디쯤 서 있는 걸까. 괜찮은걸까. 마음이 아린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치거나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호시탐탐 나를 압도하려는 어둠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어둠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간절히 내 빛이 더 강해지길 기도한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 나에게 주었던 사소해보이지만 어려운, 아주 따뜻한 그런 관심을 누군가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사람이기에. 그게 아주 대단한 것도 엄청난 것도 아닌 사소해보이지만 아주 따뜻한 것임을 알기에,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내 마음의 온기와 빛을 지켜내고 싶다.


이 글을 우연히 읽은 누군가의 어둠이 아주 조금은 걷혀졌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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