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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Sep 17. 2019

#2 애들아 선생님 유학간다.

그곳은 바로 군대야


전편: 엄마, 나 출근하래


그래도 당시의 삶이 힘들지 만은 않았다. 발령 동기들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목요일만 되면 행복했다. 일주일에 16시간이었던 나의 수업시수는 금요일을 공강으로 만들어주었다. 목요일이면 언제나 술 마실 동기들을 긁어모았다. 2015년은 순하리와 같은 과일향이 나는 소주가 대유행이었다. 귀했던 순하리 소주를 수소문해가며 자리를 옮겼고, 매번 그 가게의 순하리 소주를 동 냈다. 1차로는 아쉬우니 2차를 갔고, 2차로는 부족해 3차를 갔다. 항상 만취였고, 다음 날 숙취로 괴로워했다.



그러다가 결국 몸이 고장 났다. 원래부터 위가 약해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나면 그날 저녁은 배가 쓰렸다. 그런데 다음날, 길어야 그 다음날이면 말끔해져야 할 배가 말끔해지기는커녕 더 비명을 질렀다. 이전에 느꼈던 배탈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배꼽부터 하여 등허리까지 배배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번 배탈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퇴근을 하고 곧바로 약국부터 들렸다. 약사에게 찡그린 얼굴로 증상을 설명하니 위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약사는 하얀색 제산제 몇 봉지를 처방해주고 자극적인 음식과 술을 피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집에 들어와서 제산제부터 먹었다. 살면서 처음 먹는 제산제였다. 제산제를 먹고 조금 있다 보니 배의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스스로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하나 싶었다. 다행히 제산제를 며칠 복용하니 배 통증이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배 통증과는 이별 했구나 착각했다.


배 통증이 사라지고 며칠 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바깥 음식이 먹고 싶었다. 홀로 삼겹살을 구워 먹기엔 얼굴이 두껍지 못해 근처 분식집에 갔다. 원래는 잘 시켜먹지 않는 음식인데 유독 순두부찌개가 눈에 밟혔다. 직감을 믿고 순두부찌개를 주문했다.

순두부찌개는 맛있었다. 국물 한 숟가락 남김없이 바닥끝까지 긁어먹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방바닥에 누웠다. 나의 작은 방에는 TV도 없고 침대도 없는 터라 집에 들어오면 할 수 있는 게 눕는 일 밖에 없었다. 누워서 핸드폰 속 작은 세상을 뒤져보는 중 서서히 배가 아파왔다. 분명 떠났을 거라 생각했던 통증이 다시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아있던 제산제를 급히 투여했지만 이번에는 나아지는 게 없었다. 차라리 자고 일어나면 자연스레 통증이 사라질 거라 생각해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잠들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새벽 한 두시까지 버텼다.


오히려 밤이 깊어지자 통증은 더욱 거세졌다. 이미 정신은 고통으로 깬 상태였고, 슬슬 보통일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TV에서나 봤던 급성 어쩌고저쩌고 하던 병인가 싶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젠 입에서 신음소리가 났고, 이마에선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에 이르렀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근처 응급실을 검색했다. 2015년의 세종시에는 응급실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응급실이라고는 25km 거리에 있는 대전의 한 병원뿐이었다. 119에 전화를 하기 에는 꼭두새벽에 소란을 일으키는 것 같아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큰 도로변까지 가는 데에도 큰 고통이 뒤따랐다. 겨우 택시가 다닐만한 도로변으로 가 하염없이 택시를 기다렸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안 보인다더니 평소에는 그리 많던 택시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대로 저 세상 가나 싶을만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때에 겨우 택시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서둘러 택시를 잡고는 목적지를 이야기했다. 아저씨의 아프냐는 질문에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병원까지 가는 20분은 살면서 느낀 가장 처절하고 끔찍한 시간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해 담당의사에게 배가 찢어질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원망스럽게도 담담의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침대 하나를 가리켰다. 가서 누워있으란 뜻이었다.


누워있으니 간호사가 와서 증상을 물었다. 배가 아프다고 하니 저녁에 뭘 먹었냐고 되물었다. 순두부찌개를 먹었다고 말했다. 전에도 배가 아픈 적이 있냐고 묻길래 얼마 전까지 위염이었다고 답했다. 간호사는 의사와 잠깐 상의하더니 나에게 다가와 링거를 꽂았다. 확실히 내가 병에 걸렸구나 싶어 지금 투여되고 있는 약이 뭐냐고 물었다. 걱정되는 마음이었다. 간호사는 잠시 뜸을 들이고 답했다.


“수액이요.”


의료지식이 전혀 없는 나였지만 위독한 병에 수액을 맞지 않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저 왜 아픈 건가요?”


“아마 순두부찌개에 있던 고춧가루가 위염 때 생긴 구멍에 낀 것 같아요.”


조금은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순두부찌개. 겨우 순두부찌개 하나 때문에 새벽에 이 난리를 쳐야 한다니. 자괴감을 넘어 서글퍼졌다.


‘그냥 광주에 있었으면 이렇게 위에 빵꾸도 안 뚫렸을 거고, 순두부찌개도 안 먹었을 거고, 아팠더라도 엄마나 아빠차 타고 병원에 갔을 텐데. 병원에 가서도 옆에 누군가 있어주고, 다음날이면 분명 죽을 끓여줬을 텐데.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수액을 맞는 동안 머릿속은 후회와 서러움으로 가득 찼다. 수액을 다 맞고 나서도 후속 조치는 없었다. 그냥 다시 두 발로 걸어 나와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따뜻한 죽 한 그릇 없이 학교에 출근했다. 그게 다였다.


인간의 새끼는 태어날 때부터 동물의 새끼보다 훨씬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고 들었다. 인간의 새끼, 즉 아이가 두 발로 걷기까지 10개월이 걸리는 반면 송아지는 네 발로 우뚝 서는데 몇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둥지를 떠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새끼제비가 둥지를 떠나는 데에는 8개월이면 족하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20년은 능히 걸린다. 인간의 홀로서기는 다소 타이밍이 늦다. 나는 홀로서기를 하는 중이었고, 새끼제비가 느꼈을 둥지 밖 세상의 냉혹함을 이제야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어느새 나도 여타 선생님들과 같이 일상의 쳇바퀴에 녹아들었다. 주말을 그리워하고, 월요일을 두들겨 패고 싶어 하는 그런 일상이었다. 7월쯤 되자 마음이 들떴다. 여름방학이 코앞이었다. 나에게는 첫 번째 여름방학이자 입대를 앞에 두고 맞이하는 마지막 휴식이었다. 그냥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여름방학 스케줄을 채웠다.


여름 방학식에는 텐션이 저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학기 중에 그리 어두워보이던 선생님들의 안색은 옥빛으로 빛났다. 충전을 앞둔 방전 배터리에 표정이 있다면 그와 같았을 거라 추측해본다. 선생님들의 노동 강도에는 분명 충전이 필요하다.


여름방학에는 방학식부터 개학을 하루 앞둔 날까지 정말 열심히 놀았다. 노는 때는 어쩜 그리 시간이 빨리도 가는지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한 달이 채 못 되는 여름방학은 제트엔진을 달고 날아갔다. 시작과 끝 사이에 있어야 할 중간이 뿅 하고 사라진 여름방학이었다.


개학을 하고 나서는 곧바로 아이들과 이별 준비를 했다. 입대 날짜가 9월 달로 확정된 뒤였다. 아이들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학기 초에 경력자인척 애매한 뻥을 쳐둔 상태였다. 그렇다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기에는 6개월 동안 아이들과 쌓아온 정이 있었다. 고민을 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 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다!


“애들아 선생님 미국으로 유학 가니까 다음 주부터 다른 선생님이 오실 거야.”


아이들은 썩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아이들에게 죄가 많은 것이라 짐작했다. 마지막 반에 마지막 뻥을 쳤다.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교실 책상을 보고 있자니 허탈함이 밀려왔다. 선생님들에게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짐을 싸서 학교를 빠져나오는데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힘들었고 촌스러웠지만 선명한 하루들이었고, 삐거덕거렸지만 왁자지껄했던 날들이었다. 짧은 6개월이었지만 사회초년생으로서, 첫 선생님으로서 나름 잘 버텼다는 것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었다. 이제 선생님 노릇은 2년 뒤의 일이었다. 모든 기억과 다짐을 뒤로한 채 나는 공군에 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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