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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 다운타운을 걷다

느린 걸음으로

by 리베르테 Mar 15. 2025

햇살이 따스했다. 집에만 있기 아까워 해밀턴 다운타운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도심을 가로질렀다. 마치 시티 투어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와 사람들, 그리고 건물 하나하나가 이색적이고 낯설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팀홀튼 1호점이었다. 이곳은 전설적인 하키 선수 팀홀튼이 창업한 곳으로 캐나다 최대의 커피 및 도넛 체인점이다. 1층에는 주문대와 기념품, 도넛 진열대가 있었고, 커피 한 잔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니 창업자의 사진과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옛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입구에 하키 하는 모습의 동상이 이곳이 1호점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아이는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해 사진을 찍는 것보다, 현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더 좋아했다. 거리 곳곳을 걸으며 현지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직접 체험하는 것을 즐겼다. 우리는 다운타운까지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익숙하지 않은 거리에서 낯선 표지판과 가게들을 발견하는 일이 작은 모험처럼 느껴졌다."     


한 시간쯤 걷자, 다운타운 중심 거리에 도착했다. 금요일 낮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출발 전, 오늘의 목적지를 팀홀튼 1호점, 잭슨 스퀘어 쇼핑센터, 해밀턴 아트갤러리, 파머스 마켓, 그리고 멕시코 요리 타코를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정해 두었다.    

 

천천히 거리를 거닐며 해밀턴 다운타운을 둘러보았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아늑하고 정겨운 분위기였다. 오래된 건물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고 특별했다. 전형적인 공업도시라 관광할 곳이 많지 않다고 알려졌지만, 색다른 거리를 누비는 즐거움만으로도 좋았다.     


먼저 잭슨 스퀘어 쇼핑센터에 들어갔다. 특별히 구매할 물건은 없었지만, 쇼핑센터라는 말에 궁금함이 생겼다. 우리나라의 지하상가와 비슷한 느낌이었고, 푸드 마켓과 영화관, 쉐라톤 호텔까지 연결된 복합 쇼핑몰이었다. 다양한 매장이 있었지만, 특별히 사고 싶은 것은 없었다. 천천히 구경만 했다.    


다음으로 해밀턴 도서관 옆에 위치한 파머스 마켓에 들렀다. 이곳에서는 인근 농장과 과수원에서 재배한 신선한 과일과 채소, 치즈, 빵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채소들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고, 갓 구운 빵 냄새는 코끝을 자극해 허기를 느끼게 했다. 신선한 재료들이 많아서인지 시장은 제법 붐볐다. 2층 코너에서는 예쁜 엽서와 에코백이 눈에 띄었지만, 비싸서 그냥 지나쳤다. 이곳의 독특한 상품들과 로컬푸드를 구경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해밀턴 아트갤러리를 방문했다. 이곳은 오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미술관으로, 현대 미술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층마다 전시되어 있었다.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와 함께 그림을 감상하며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특별했다. 

     

거리 한편에서는 기타를 연주하며 자유롭게 공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도심의 분위기를 한층 더 생동감 있게 했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겼고, 그 여유로운 모습이 부러웠다.     


점심시간이 지나 킹 윌리엄 스트리트로 향했다. 이곳은 해밀턴에서 유명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모여 있는 거리다. 아이가 미리 검색해 둔 멕시코 타코 전문점 '더 뮬(The Mule)'에 들렀다. 상호와 더불어 내부 곳곳에 해골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인테리어가 독특했다. 우리는 토마토와 새우가 들어간 타코, 고기 타코, 그리고 맥주와 오징어튀김을 주문했다. 오래 걸어서인지 배도 고팠고, 아이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먹으니, 맛과 즐거움이 더욱 배가 되었다.     


“엄마, 힘들지 않으세요? 저는 이런 여행이 좋아요. 무작정 걸으면서 곳곳을 둘러보는 여행이요.”   

  

나도 이런 여행이 좋다고 말했다. 이방인이 아닌, 마치 이곳에 사는 사람처럼 여유롭고 느긋한 여행. 둘이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힘들면 잠시 쉬어가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자유로운 여행. 오랜만에 이런 즐거움을 느껴본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행의 모습이 달라졌다. 한때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보호했지만,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 어엿한 성인이 된 아이는 나를 챙기고 세심하게 살폈다. 낯선 길을 건널 때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자연스럽게 나를 보호해 주었다. 이런 순간을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내가 보호해야 할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아이가, 어느새 나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더욱 서정적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그저 평범한 하루가 될 거로 생각했지만, 아이와 함께한 오늘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주었지만, 이제는 아이가 나를 이끌며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변화가 낯설면서도 왠지 든든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또 다른 여행을 떠나게 되더라도, 어느 곳에 있든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지켜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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