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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디톡스, 나를 위한 공간

 내려놓기, 다시 채우기

by 리베르테 Mar 16. 2025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커피를 내려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공간을 가득 채운 커피 향기가 좋았다. 비 오는 날의 차분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오늘 공원은 평소와 달리 조용하지 않았다.     


오전 10시,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공원 중앙에 커다란 행사용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빗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몸을 흔들며 손뼉을 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는 사람들, 그리고 곳곳에서 터지는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여러 색의 연기가 피어올랐고, 공원은 마치 생기로 가득 찬 축제의 현장 같았다. 아마 이곳에 이민 온 사람들의 고향을 기념하는 축제인 듯했다.  

   

모두 즐거워 보였다. 오후 늦도록 음악은 끊이지 않았고,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환한 표정으로 함께 노래하는 활기찬 분위기를 보고 문득 생각했다. 마음을 나누고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할까? 그 순간, 소음처럼 들렸던 음악과 사람들의 북적임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비가 그치고 행사가 끝나 사람들이 돌아가자, 이번엔 아이들이 공원으로 몰려들었다. 창문 너머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농구공 튕기는 소리, 응원하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국적을 떠나 어디에서나 똑같이 들린다.     


언어가 필요 없는 맑고 순수한 소리.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문득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걱정 없이 웃던 그때의 순수함이 그리웠다.    

 

저녁에 아이가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해물 파스타를 만들어 먹자고 했다. 나는 아이가 만들어주는 파스타를 먹을 때마다 과식하게 된다. 오늘도 여전히 그랬다. 파스타를 먹으며 생각했다. 사랑은 거창한 게 아니라 이런 작은 순간들 속에 있지 않을까?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하고,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 가장 단순하지만 확실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설거지를 마친 후, 가볍게 산책을 나섰다. 여전히 밖은 밝았고, 바람 속에 달큰한 봄 내음이 스며들었다.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이들, 저녁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것이 단순해졌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익숙한 관계의 끈을 놓는 것은 마치 홀로 섬에 고립된 느낌이었다. 꼭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놓을 때마다 불안했다. 그러나 조금씩, 내 안에 가득했던 것들이 비워질수록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졌다.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는 해방감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그동안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었던 것들을 내려놓자, 마음속에 여유와 평화가 생겼다. 소중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때로는 나를 억누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속에 허전함이 아닌, 오히려 넓어지는 공간을 느꼈다.     


관계는 때로 빽빽한 숲과 같다. 나무가 너무 빽빽이 자라면 서로 햇빛을 가리고, 뿌리는 서로 얽혀 영양분을 빼앗는다. 그 숲을 걸을 때, 어두운 곳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나무와 나무 사이에 열린 공간이 있을 때, 햇빛이 들어오고 그 공간 속에서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너무 많은 나무처럼 서로의 빛을 가리고 나를 숨 막히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비워내지 않으면 새로운 것들이 자리를 잡을 수 없다. 비워낸 후, 나를 비추는 햇빛이 들어오면 그 공간에서 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가득 채우는 것보다 덜어낼 때 더 확연히 보이는 것들이 있다. 관계와 삶도 때로는 비워야 제대로 담을 수 있다. 그렇게 비워냄으로써 나를 채우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늘 곁에 있던 사람과 떨어져 지내며, 익숙한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지내는 적막함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그 고요함이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가까이 두었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물러서 보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인다. 숲을 보기 위해서는 숲을 떠나야 한다는 말처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때로 거리가 필요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때로는 멈춰 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숨 돌릴 때, 다시 채울 준비가 된 나를 어느새 만나게 된다.    

 

저녁, 한적한 공원을 걸으며 낯선 이곳에서 그동안 나를 둘러싼 관계들을 되돌아보았다. 잠시 거리를 두고 그 관계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지나면, 어쩌면 더 맑고 깊은 관계를 위한 공간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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