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새로운 시작
다시 기온이 내려가긴 했지만, 겨울은 지나고 봄이 성큼 다가왔다. 누렇게 마른 채로 있던 공원 잔디가 드문드문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직 완연한 봄이라 하기엔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남아 있지만, 낮 동안 내리쬐는 햇살은 점점 따뜻함을 더해가고 있었다. 햇볕은 두꺼운 코트를 벗어 던지고 얇은 겉옷으로 갈아입게 했다.
오늘은 아이와 함께 대청소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가 머무는 집의 주인, 유니님이 내일 한국에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5개월 만에 돌아오는 집이 깨끗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머물렀던 흔적을 정리하고 아늑한 기운을 채우고 싶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두 달을 넘어섰다. 처음 도착했던 날, 낯선 집에 현관문을 열 때의 생경함이 기억이 생생하다. 공간의 구조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모두 다른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들리는 새소리, 창을 흔드는 바람 소리, 계단의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익숙한 우리 일상의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떠날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엄마, 2시 티타임을 청소하는 시간으로 정할까요?" 아이의 제안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창문 활짝 열어 놓고 대청소하자! “
평소보다 느긋한 아침을 보낸 후, 우리는 오후 2시를 ‘대청소 시간’으로 정했다. 햇살이 집 안 깊숙이 들어오는 시간대라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청소하기에 딱 좋았다. 겨울 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계절과 함께 돌아오는 유니님을 맞이할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나는 거실 창문부터 활짝 열었다. 차갑기만 했던 겨울바람과 달리, 이제는 포근하고 상쾌한 봄바람이 밀고 들어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겨우내 갇혀 있던 공기가 한순간에 밀려 나가며, 창밖의 공원과 이어지는 듯한 개방감이 느껴졌다. 코끝으로 봄 냄새가 감지되었다.
"엄마, 저는 지하방이랑 화장실 청소할게요!" 아이와 청소 구역을 나눠 맡았다. 아이는 청소 도구를 챙겨 지하로 내려갔고, 나는 거실과 주방, 그리고 나머지 공간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흐트러져 있던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으며 정리해 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구석구석의 공간들은 우리가 얼마나 이곳을 채우며 살아왔는지 보여주었다.
창틀에는 손에 잡히지 않던 먼지가 쌓여 있었다. 마른 천으로 닦아내고, 먼지가 사라질 때마다, 겨울의 흔적이 하나씩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작은 카펫을 들어 탈탈 털어내고 물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부엌과 거실 선반을 정리하면서 개운한 마음이 들었다. 청소기가 지나갈 때마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부스러기들이 사라졌고, 걸레질할 때마다 바닥이 만질만질했다. 그제야 집 안이 봄을 맞을 준비를 마친 듯했다.
"엄마, 집이 상쾌하고 밝아진 것 같아요."
깨끗해진 공간, 가벼워진 마음에 기분 좋아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 전에는 분주한 생활의 흔적으로 조금은 어수선했던 집이 이제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질서 있게 정돈되었다.
"그러게. 대청소하니까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어. “
나는 문득 떠올랐다. 예전에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청소 시간을 '평화 놀이'라고 불렀던 것이. 그때는 그냥 재미있게 지으려고 붙인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예전에 학교에서 청소 시간을 '평화 놀이'라고 불렀던 거 기억나? 그 의미가 뭐였을까? 엄마는 이제 알겠어."
청소하고 나니 공간이 정돈될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맑아지고 평온해졌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함께 정리되는 듯했다. 공간이 늘어날수록 머릿속에서도 불필요한 생각들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청소를 마친 아이가 커피를 내렸다. 진한 커피 향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 남은 시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내일이면 유니님이 돌아온다. 그러면 아이는 열흘간 밴쿠버로 여행을 떠나고, 나는 유니님과 새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밴쿠버에 가면 뭘 제일 먼저 하고 싶어? “
"음... 일단 제일 먼저 근처 수영장에 가서 수영하고 싶고요. 구석구석 걸으며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완이랑 함께 무엇을 할지도 이야기해 보고요. 여기저기 많이 다녀보고 올게요.!"
긴 겨울을 보내고 다시 맞이한 봄. 단순한 청소였지만, 그것은 단순히 공간을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물건 하나하나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맞이할 변화에 대해 준비하는 의식과도 같았다.
창문을 열고, 겨울의 무거운 공기를 내보내고, 새봄의 기운을 들이마시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였다.
나는 유니님과 함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지 생각했다. 2개월 동안 아이와 단둘이 지내던 조용한 일상과는 달리, 이제는 바쁘고 분주한 시간이 될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는 생각에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처음 이곳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일상들이 떠오른다. 아침마다 걸었던 공원의 산책길, 나들이 삼아 들렀던 소박한 카페, 창가에 앉아 비 오는 날을 바라보던 순간들. 이런 순간들이 곧 추억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하니 한 달여 남짓 남은 이곳에서의 생활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돌아가는 것이 끝이 아니라, 또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과 가능성을 열어준 것처럼, 돌아갈 곳에서도 다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행은 떠나고 돌아오는 순환의 과정이며, 돌아온다는 것은 또 다른 출발점에 서는 것이다.
”우리 집에 돌아가면 겨울 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대청소할까?" 아이에게 말했다.
오늘의 대청소는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간을 정리하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한 작은 의식 같은 것이었다. 유니님이 돌아오는 집을 깨끗이 하는 것은 감사의 표현이자, 우리를 위한 마음의 정리이기도 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봄처럼, 내 마음에도 새로움이 스며들었다. 청소로 비워진 공간은 이제 다시 새롭게 채워질 준비가 되었고, 정리된 마음은 다가올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봄이 겨울을 밀어내고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듯, 우리도 지나온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며 다가올 변화를 차분히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