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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Apr 22. 2021

좋은 문장을 만나는 기쁨

편지, 딸에게


아주 오랜만에 좋은 문장들을 가득 품고 있는 책 두 권을 읽었단다.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과 과학자인 호프 자런이 쓴 ‘랩 걸’이었어. 한 달에 한 번 책모임을 하다 보니 독서가 취미인 엄마조차도 더 책을 열심히 읽게 되는 긍정의 효과가 있더구나. 아무튼, 일주일여 동안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요즘 좀처럼 책을 읽으며 느끼지 못했던 가슴 떨림이 찾아온 거야. 너무 기뻤어. 엄마가 생각해도 무척 신기한 일이었고.


좋은 문장이 곳곳에 보물 찾기처럼 포진해 있는 데, 읽다가 눈이 반짝 떠지고, 손은 어느새 밑줄을 긋고 있는  아니겠니! 미식에 까탈스러운 사람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낯선 도시에서 맛 집을 발견한 기쁨 같다고나 할까.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 철’ 이라거나 ‘봄이 오면 나는 병을 앓을 것이다’ 혹은 뇌졸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두고 몸의 절반은 봄 같았고 나머지 절반은 겨울 같았다.’라는 박준 시인의 표현들에선 절로 몸을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었단다.


어디 그뿐이겠니. 평생을 실험실에서 탄소동위원소 측정에 골몰하는 한 과학자의 문장들은 ‘과학자마저 이렇게 글을 잘 쓰면 어쩌자는 거지?’라는 속마음을 내뱉게 만들더구나. ‘랩 걸’ 에도 중간중간 자체적으로 빛을 발해서 절로  따스해지는 문장들이 참 많았지만, 아무래도 계절적으로 봄이다 보니 봄을 표현한 문장이 더 눈에 들어오더라.


미네소타의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얼어붙어 있던 땅이 햇빛에 더는 버티질 못하고 안에서 녹아내리면서 하루아침에 시작된다. 봄이 시작된 첫날 땅을 파보면 진한 초콜릿 케이크 같은 흙이..’로 시작된 문장을 보다 보니 저 머나먼 대륙의 미네소타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나던걸?^^. 하지만 정작 엄마가 가장 감동을 받고, 우리 딸에게 언젠가 들려주고 싶었던 문장은 따로 있었어. 아마도 단풍나무에 관한 묘사였을 텐데, ‘매일 밤 자원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물을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려, 약한 어린나무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어떤 부모도 자식을 완벽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돕는다.‘ 였어.


너무 아름다웠고, 한편으론 울컥했지. 어쩌면 이렇게 적확하고 여운이 남는 비유가 있을까 싶었거든. 네 어릴 적 함께 읽었던 오규원 시인의 ‘나무속의 자동차’ 도 생각이 나더라. 반평생 글 밥을 먹은 엄마지만, 남겨지는 글이 아닌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ON AIR'의 글을 썼다 보니 이렇게 종이책에서 발견하게 되는 가슴 저린 문장들이 더더욱 소중하고 고맙구나.


뭐, 엄마에게도 오프닝이나 클로징 멘트에 한 혼을 담았던 시절도 있었겠지, 누군가 우연히 그 멘트를 듣고 팍팍한 일상에서 공감과 위로를 느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런 좋은 글을 만날 때마다 허허로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구나.


그 허허로움을 엄마는 다시 읽는 것으로 채워가는 것일까? 아무튼 나이 들어 눈이 건조해지고 가끔은 통증을 느낄 때있지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을 멈추지 않는 어린아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거야. 그 반짝이는 순간을 지레 포기하기엔 아직 찬란하다 싶은 인생이 너무 아까운 거지.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 또 이렇게 담뿍 저축됐으니 오늘 하루도 꽤 성공적인 시간이었다 싶구나. 행복한 꿈 꾸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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