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와 수제비, 그 한 그릇에 담긴 미학
편지, 딸에게
오늘 여기 분지는 하루 종일 흐렸단다. 네가 있는 곳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고 했지만 여기는 애간장만 녹이는 먹구름만 왔다~갔다 할 뿐이었구나. 이런 날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멸치로 진하게 육수를 우려낸
칼국수나 수제비가 생각나곤 해. 엄마의 ‘소울 푸드’ 중 하나인 칼국수나 수제비는 이 지역에서는 ‘칼제비’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하지
국수 면과 수제비가 한 6:4쯤 알맞은 비율로 섞여있는 그래서 적당히 훌~훌 넘어가는 맛도 느낄 수 있고,
그 맛이 심심할 때쯤이면 수제비 두어 개 건져서는 쫄깃쫄깃한 맛을 음미해 보기도 하고 말이야. 요즘에야 이 칼국수나 수제비를 집에서 직접 밀어 만들어 먹는 경우가 흔치는 않지만, 엄마 어렸을 적엔 한 달에 반 이상은 칼국수나 수제비로 끼니를 대신했었어.
전쟁에 휴전을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죽지 않기 위해, 내일을 살기 위해, 그나마 배급이 용이했던 밀가루로 만들어 먹을 수 있던 음식이니까. 멸치도 귀해서 한 두 마리 겨우 띄워 육수를 내고 감자나 호박, 그리고 푸성귀도 둥둥 떠다니던 그 희멀건했던 칼국수와 수제비.
오늘도 또 이걸 먹어야 하냐며 그 시절엔 투정도 참 많이 부리곤 했다만, 어쩐지 기억해보면 홍합에 바지락에 그 귀하다는 오징어까지 들어있는 요즘의 칼국수나 수제비보다 훨씬 배가 불러오는 맛이었단다.
날이 흐리기 시작하면 나무판과 밀대를 꺼내고 밀가루 반죽을 하기 시작하던 내 엄마(외할머니)의 푸근한
등이 그립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칼국수나 수제비 만들고 남 은 밀가루 꼬댕이를 연탄불에 구워 먹던 아주 오래전 우리 삼 남매의 순정한 얼굴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음식은 이래서 추억이고, 역사이며 강한 응집력을 지닌 문화 복합체인 거지. 같은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 공유하는 세계가 드넓은 거, 이제 이해가 되지?
우리 딸도 언젠가는 영혼을 일깨우는 이런 음식들을 무시로 회고하고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엄마가 해 준 음식, 그 한 그릇의 가치가 온전해질 수 있도록 엄마도 여전히 정성을 기울여야 하겠고.
뭐든 맛있게 먹고 감동하는 네가 무척 그립다. 오늘은 유난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