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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Nov 20. 2020

늦가을엔 마음을 잃고, 몸을 쓰네

편지, 딸에게

엄마의 대화법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건  바로 '역설'이란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이 대화법 때문에 엄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고 할 정도로 이 역설의 매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지. 넌 가끔 진절머리 친다만.


아무튼 이런 ‘역설’ 은 대화 중에서만이 아닌 , 때로는 나약해진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단련시키는 강력한 무기도 된다는 걸, 시간의 흐름을 통해 깨달았단다. ‘찬란한 슬픔의 봄’ 이란 시구를 통해 역설의 아름다움과 강렬함을 동시에 느꼈던 한 소녀가, 쉰이 넘도록 이 역설을 통해 근근이 삶의 진정성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있음에, 오늘도 감사해 보고는 한단다.




요즘 엄마가 모토로 삼고 있는 역설은 바로 ‘늦가을엔 마음을 잃고 몸을 쓰네.’ 란 문장이란다. 물론 너에게도 익숙한 기형도 시인의 ‘빈집’의 첫 구절을 을 차용하고 패러디한 문장이지만  엄마는 스스로 만든 이 문장을 이미지로 눈앞에 걸어두고 아직 남아 있는 11월의 매일을, 11월이 몰고 온 끝 간 데 없는 쓸쓸함을, 다시 한번 이겨내는 중이지.

이토록 찬란한 늦가을의 아우성이라니!

어느 정신과 의사가 그러더구나. 생각이 복잡해지고 무언가 집중할 수 없이 혼란스러울 때는, 오히려 무식해 보일 만큼 ‘몸을 쓰는’ 일에 집중해 보라고! 그렇게 몸을 쓰고 또 쓰다 보면 고민거리들도 어느새 생각했던 것보다는 하찮은 것이거나,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더해도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어떤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이야.


그런데 있잖아~정말 효과가 있더라고! 유행가 가사처럼 ‘내 마음 갈 곳을 잃는’ 가을이 오면, 그렇게 갈 곳을 잃어 헤매는 마음은 그냥 어디로 가든지 외면해 버리고, 오로지 몸을 쓰는 수많은 행위들에만 집중해오니, 가을이 더 이상 서늘~한 바람처럼 신산하지도, 뒹구는 낙엽처럼 바삭거리지도 않게 됐단다.


오직 마음만이 나의 주인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첫 발걸음은, 잴 것도 없이 망설일 것도 없이 문밖으로 일단 가는 거더구나. 


엄마의 경우엔 서재로부터, 쌓인 책으로부터 잠시 탈출하는 것! 오늘도 단단히 채비를 하고 싸~한 잔향을 남기는 늦가을바람에 몸을 맡긴 채, 오로지 이 시간을 즐겨보려 한단다. 어쩌면 손톱만큼 남아 있는 늦가을엔 몸을 쓰면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소중한 것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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