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린혜원 Feb 17. 2021

엄마, 하늘나라에도 떡국이 있어요?

그래도 먹지 말고 기다려요. 내가 갈 때까지.

생각해보니, 내 추억은 눈과 관련된 것이 많네요. 엄마.

아마 그날도 눈이 많이 온 어느 날이었을 거예요. 

예고도 없이 저희 집엘 오셨더랬죠. 동생네 밥솥을 얻어 쓰고 있는 큰딸이 그렇게 안쓰러우셨어요? 사실은 전기압력밥솥을 그닥 선호하지 않기에 그저 보온의 용도로나 쓸까 하고 가져온 거였거든요.

"요새 아~학원비에 과외비 댄다꼬 쪼들리나? 밥솥은 아무리 동생 거라도  헌거 쓰는 거 아이다..가자..엄마가 비싼 거는 아이라도 하나 사주꾸마"

"엄마, 뭐 그런 소릴 하노, 아이다. 내, 그 정도 돈도 없을까 봐? 나는 그냥 압력밥솥에 금방 해서 먹는 밥이 좋아서 그런 기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간 거 같아요. 꼬깃꼬깃 쌈짓돈을 꺼내 들고는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혀있는 엄마를 보는데, 정말 미안하고도 고마웠어요. 당신을 위해선 천 원짜리 한 장 허투루 쓰지 않는 엄마인데, 왜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 딸 밥솥까지 신경을 써야 했을까요? 그래요. 그게 우리 엄마의 성정이니 누구도 막을 도리가 없죠.

그래도 기왕 온 거 사주께, 아니다 괜찮다..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창밖에는 굵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지요. 마침 저녁 밥때가 가까워 오기도 했고, 엄마 집, 경사가 가파른 골목길에 눈이 쌓이고 미끄러워지면 가뜩이나 무릎도 좋지 않은 분이 혹여라도 넘어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엄마 내 퍼뜩 떡국 끓이께. 묵고 여기서 주무시고 가"

"아이고 야이야.. 고마 집에 갈란다"

은근히 매운 금녕 김 씨 가시나 고집에, 황소 같은 밀양 박 씨 할매 고집이 서로 씨름을 하다 보니, 밖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그새,  눈발도 굵어졌고요. 어쩌겠어요. 사정이 이러니 엄마가 지는 수밖에. 그때 정말 잘 져주셨어요.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밥 한 끼 차려드리는 게 힘들었는데 설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 데다, 엄마 좋아하는 찌짐도 넉넉히 있겠다, 얼른 떡국 끓여서 드시게 하면 되겠다 싶었지요.

제가 끓이는 떡국이 엄마의 레시피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다는 걸, 혹시 눈치채셨던가요?



우선 다시 멸치와 다시마, 양파를 넉넉히 넣어서 육수를 우려냅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웬만하면 떡 국물에 사골육수를 쓰지 않고 개운한 맛을 위해 멸치육수를 쓴다는 걸 항상 강조하셨잖아요. 육수를 끓이는 동안 한쪽에서는 꾸미를 볶아야죠.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다진 소고기를 매매 볶다가 마늘을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하죠. 요즘 저는 어간장을 써 조금 더 감칠맛을 내곤 한답니다.

그날따라 온갖 솜씨를 부려, 계란도 황백지단으로 각각 부치고, 김도 즉석에서 구워 부신다음 정성스레 올렸네요. 오랜만의 대접에 저도 신이  났던가 봅니다.

"아따, 맛있다. 우짜믄 이래 맛있게 끼맀노. 니가 엄마보다 낫다"

연신 후루룩 소리를 내시면서, 그렇게 푸짐하게 담은 떡국 한 그릇 기분 좋게 비워내셨죠. 워낙 식성이 좋으시기도 했지만, 맛있게 먹기로도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러울 엄마였기에, 저도 따라 맛나게 한 그릇, 다 먹었던 거 같네요

그날, 펑펑 날리던 눈과 함께 엄마의 짙은 마음과, 약간의 눈물이 고스란히 두 모녀의 식탁으로 스며들어 아리면서도 따스했던, 그래서 더욱 기억에 아로새겨진 시간들이었답니다.

그 떡국이 엄마를 위해 끓인 마지막 떡국이었어요. 함께 떡국을 먹으며 올 한 해도 다들 건강하고 열심히 살아가자던 다짐, 채 다 이루기도 전에 서둘러 엄마는 먼길 떠나고야 말았으니까요. 이렇게 잘 드시니 백 살까지 사시겠다, 농반진반 웃으며 하던 얘기들도 다가올 이별을 막아줄 부적이 되진 못했네요.

올 설에는 추모의 집 방문도 다 금지되다 보니 찾아뵙질 못했어요. 명절 이튿날, 엄마한테 들렀다 입구에 마련된 방명록에 '큰딸 왔다가요..'라고 남기는 게 나름 낙이었는데, 많이 아쉬워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올해도 엄마 레시피대로 맛있게 떡국 끓여 먹고 세상나이도 한 살 더했답니다. 살아서도 오로지 자식 걱정밖에 없었던 엄마, 혹시 그곳에서까지 '큰딸 이제 밥솥은 샀나' 이런 기우로 편히 쉬질 못하시는 건 아니죠?  전, 잘 먹고 잘~ 살다가 갈 테니 허튼 시름일랑 던져 버리세요. 언젠가 예정된 시간이 닥치면 다시 엄마와 딸로 만나, 맛있게 드셨던 떡국 많이 많이 끓여드릴게요.


더 이상 아프지도 말고, 염려도 말고, 나이도 잡숫지 말고, 내가 알던 울 엄마 모습 그대로 계셔주세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요. 꼭이요.


이전 03화 비빔밥과 정장 두 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