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토). 오늘은 10월의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입니다. 공기는 조금 서늘하지만 햇살은 반짝거리고 하늘은 참 맑고 푸르고 높은 아침입니다. 몸은 무겁지만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면접 특강과 모의 면접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잘해야 할 텐데 살짝 긴장이 됩니다.
올해는 면접 특강 및 모의 면접 신청 인원이 적은 편입니다. 제가 상담하는 센터에는 약 120명 정도 등록이 되어 있지만 작년에 비해 대학진학상담반에 나오는 청소년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올해는 진학을 준비하는 학업형보다는 자격증이나 취업에 더 관심이 많은 직업형 유형의 청소년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수능 이후에 면접 전형이 많지만 전문대학 등 수능 전에 면접이 있는 대학도 있어서 저는 수능 한 달 전쯤인 10월 초에 면접 특강을 진행합니다. 이 시기는 수시모집 원서 접수와 수능일 사이라서 수능 준비에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면접 특강은 면접 방식에 따른 면접 유형과 질문 내용에 따른 면접 유형의 특징을 설명하고, 면접 대비 방법 공통 과정과 면접 대비 방법 실전 과정 등으로 진행합니다. 모의 면접은 희망자를 대상으로 지원 대학별 기출 및 예상 문제, 면접 예상 질문 TOP 40, 면접 실습 및 피드백 등의 내용으로 진행합니다. 모의 면접은 작은 상담실에서 진행하는 데 희망하는 경우 동영상을 촬영해서 같이 보면서 피드백을 주기도 합니다.
진로에서는 지식, 기능, 가치 및 태도를 균형 있게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진로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자전거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자전거를 잘 탈 수는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서는 몸으로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자전거는 아는 것이 아니라 탈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전거를 더욱 재미있게 잘 타고 즐기기 위해서는 라이더로서 바람직한 가치관과 태도도 가져야 합니다. 면접도 마찬가지입니다. 면접에 대한 지식, 면접을 잘 보기 위한 기술, 진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그리고 올바른 태도가 고루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균형 있게 갖추어질 때 흔들리지 않고 답변을 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참가한 청소년 K는 불안 심리가 높은 것 같습니다. 모의 면접을 하는 데 시선 처리가 불안하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뒷문장을 빨리 말하려고 하다 보니 앞 문장의 끝마디와 자꾸 겹칩니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모습입니다. 안면이 있는 친구라 모의 면접 후에 피드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과는 다른 과인데 집안 사정상 아무래도 전문대 간호과나 보건 관련 계열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어차피 가지 않을 건데 면접을 잘 못 봐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낙담이 큽니다. 반대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실수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상담에서 장학 제도도 물어봤는데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 청소년 쉼터에 거주하는 청소년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 이혼으로 가정이 붕괴되었고, 아무도 책임져 줄 수 없어 그곳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이 학생도 경제적 사정으로 학과 선택에 고민과 갈등이 많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조금의 각성은 업무 효율을 높이지만 너무 심한 각성은 불안을 높여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면접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면접을 잘 보았다는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다 망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모두 다 면접을 처음 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연습해도 낯설고 떨리기 마련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시험 중에 하나를 치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중간만 하자.', '큰 실수만 하지 말자.' 정도만 해도 된다고 위로하고, 불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보았습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이미 절반은 달성했으니 나머지 반은 몰입과 관성의 시간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관성의 법칙을 믿고 도전해 봅시다. 작은 성공이 모여 큰 성공이 됩니다. 우리는 천천히 가도 되지만 뒤로 가지는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해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양육의목적
최근에 학교 밖에서 상담한 청소년 O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를 미진학 했습니다. 성적이 하위권이라 일반고 합격이 어려웠습니다. 학부모는 배움도 많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았습니다. 부모님은 어디선가 컨설팅을 받아 오셨고,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등의 악기가 아닌 아주 흔하지 않은 희귀한 악기를 배워서 예술고에 진학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은 흥미와 적성이 달랐기에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도 지역의 농어촌 일반고를 갔다가 2년 후에 다시 전학을 오는 방법으로 진학하기를 권했으나 학생은 친구들과 떨어지는 게 힘들어서 이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학생은 최하위권 특성화고를 진학해서 1학기 성적이 우수하면 교육청 정책에 따라 일반고로 전입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는 면학 분위기를 고려해서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등 직업 고등학교는 반대하셨습니다. 결국 선택은 단 하나 미진학이었습니다. 학부모는 건강 등의 사유로 진학하지 않는다고 주변에 얘기했습니다. 고졸 검정고시와 수능을 여러 번 칠 수 있는 시간의 이점을 최대한 고려한 결정이기도 합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학부모의 권유에 따라 일본 유학도 준비했고, 만약 국내 대학을 진학하게 되면 편입제도를 통해 수도권 대학으로 갈 예정이라 토익 등 영어와 관련된 공부도 알아봤다고 합니다. 제가 그동안의 상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모든 방법을 그 청소년은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진로 상담을 하면서 걱정과 불안이 많은 청소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때에는 '걱정은 해롭고 계획은 이롭다!'는 말을 많이 해 줍니다. 일단 다이어리부터 사서 친해지라고 합니다. 매일의 계획을 메모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의 감정이나 생각들도 자주 적어보면 훨씬 마음이 안정되고 계획도 잘 수립하고 진행도 잘 될 거라고 말해 줍니다. 그런데, 이 청소년은 너무 많은 계획이 있어 그것 때문에 걱정과 불안이 높은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합니다. 너무 많은 계획이 내담 청소년을 힘들게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차근차근하다 보면 점점 더 좋아질 테니 너무 먼 목표와 너무 많은 것은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적당한 각성은 자신에게 자극제가 되기에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너무 많은 자극과 걱정은 오히려 뇌에 오류를 일으켜 집중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긍정 마인드를 가지고 자신에게 칭찬도 하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지도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상담하는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검정고시 학원에서 준비를 잘하고 있었지만, 기가 많이 죽어 있었고 우울감도 높아 보였습니다. 최대한 귀를 기울여 들었고, 공감하고 또 공감했습니다. 해 줄 말은 “그렇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힘들지? 그맘때는 다 그래.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번에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호소하는 문제와 상황에 맞는 해결 방안을 같이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 이후로는 연락도 없었고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진학 희망 대학의 검정고시 출신 연도별 입학 비율을 궁금해하기에 알려 주고 ‘나비 포옹법’을 가르쳐 주긴 했지만, 불안한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 계속 걱정되고 마음에 남았습니다. '잘하고 있을까?' 하고 가끔 생각이 납니다. '잘하고 있겠지!'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스스로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게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 그 생각은 잠시 잊기로 합니다.
정승익 선생님의 <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를 읽었습니다. 지속가능하고 실천가능한 사교육 줄이기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저는 특히 '양육의 목적'에 대해 서술한 대목이 가장 기억이 남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가족과 양육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자녀를 양육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요?"라고 묻습니다. 그 대답으로 "자녀가 부모의 품을 떠나서 진정으로 독립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질문과 대답이지만 저도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양육이란 보살펴서 자라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잘 자라게 하고 있을까요? 일단 잘 보살피고 잘 자라게 할 아이조차 낳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TV 프로그램에는 연애, 결혼, 출산, 양육 콘텐츠가 많아졌습니다.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경험을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바쁘고 치열한 무한 경쟁의 시스템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독립이란 사회적, 경제적 독립이겠죠? 이 과정에서 진학은 하나의 과정입니다. 자녀가 '인서울 명문대 진학'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진학 또한 한 과정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는 결국은 넓은 바다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름길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넓은 바다에서 모두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무한 경쟁이 있습니다. 그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은 '시간'의 힘을 알고, '습관'의 무기를 습득하고, '희망'을 품고, '즐거움'을 알고, '강점'을 연습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진짜 실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짧은 시간 동안에 타고난 지능과 재능으로 성취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르쳐야 하겠지요? 시간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좋은 습관을 만들고 나쁜 습관을 버리도록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체력을 키우고 인성을 기르고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하겠지요.
2023년 서이초 사안을 보도한 여러 언론을 보면 우울증, 정신적 피해, 스트레스, 학부모 갑질, 악성 민원, 교권 보호 장치 미비, 공교육 붕괴 등을 이야기합니다. 최근의 교육 문제의 원인은 양육과 입시 교육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가정, 사회, 학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에는 금쪽이, 은쪽이, 동쪽이, 쇠쪽이, 흙쪽이가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금쪽이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출산 및 돌봄의 양과 질 사이의 불균형 때문이죠. 모든 자원은 '무한 경쟁'이라는 사회적 합의 속에서 분배됩니다. 진학도, 직장도, 결혼도, 아파트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사랑과 낭만은 사치입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무한 경쟁은 저출산을 더 악화시키고 양육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가정에서는 아이가 잘 자라도록 기르고 보살피는 '양육'을 해야 하는데 부모는 일과 경쟁에 지쳐서 최소한의 양적 '보육'만 남았고, 그마저도 상당 부분을 공교육과 사교육 기관에 맡깁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질적 돌봄이 부족한 아이들은 내면은 '반쪽이', 외양은 '금쪽이'인 아이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학교는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인격을 길러주어야 하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저출산 사회는 학교에 '돌봄' 서비스를 강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대한 요구와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환경, 기술, 사회·경제가 변화하는 데 당연히 학교도 바뀌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가다가는 가정은 생물학적인 출산만 제공하고, 학교는 거대한 돌봄 시스템으로 변해 양육까지 맡게 되는 만화 같은 일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출산, 양육, 교육, 일자리 문제의 배경에는 모두 과도한 경쟁시스템과 부족한 사회 안전망이라는 구조적 원인이 깔려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가정의 양육과 사회의 돌봄, 그리고 학교 교육의 본질에 대해 깊이있게 다시 생각하고 점검해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