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x세대의 시작을 열어젖힌 연령대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라며 우리들은 개인주의란 말을 당당히 쓸 수 있게 되었고 이전과는 다르게 각자의 방식으로 청춘을 소비했다. 무너진 사회주의와 독재정권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여전히 복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서태지가 쏘아 올린 자유로운 영혼의 선언에 철저히 젖어있었다. 내 인생 내가 산다는 게 죄스럽게 느껴지는 시절의 그림자엔 발도 디디지 않고 스스로만 챙겼던 것을 보면 마치 나를 엄청나게 사링했던 거 같으나 실은 나 하나도 버거운데 주변을 돌아본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잘 보듬고 아꼈던 것도 아니었다. 나의 소명은 지난 나에게서 벗어나는 거였다.
"청춘을 청춘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버나드 쇼의 말은 맞았다. 불행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징징거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느라 감정은 지나치게 넘쳐흘렀다. 20대에게 요구되는 다음 시기를 위한 준비 혹은 뻗어나가는 꿈 같은 것은 없이 자기한테 걸려 넘어져 빙빙 그 자리를 맴돌았다. 빛나던 시절은 제멋대로 사용되었으니, 지금은 질리도록 쓰나 그때는 일상의 말로 명명되지 않던 '자존감'이 없었던 게다. 밤새워 술을 마시는 것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고 불쑥불쑥 변변치 않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자유롭지 않으면 죽는 거처럼 내내 역마살이 천성인 양 굴었으며 '아비정전' 같은 영화들에 끌리는 불안한 영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럴 만한 심각한 과거를 품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자기 연민은 큰 병이다.
주변 사람들은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이렇게 상태가 난감했으니, 결혼은 하기로 했으나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면서 아이를 키운다고? 맙소사 꿈도 꾸지 마."라고 자기 객관화가 된 것도 있었고
"아이를 난 별로 안 좋아해" 혹은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모르겠어" 같은 변명 같은 것을 혼자 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무서운 책임감이 나를 뒤덮으리라는 것을 은연중에 인지하고 있었다. 부모의 세상은 한 세계가 끝나고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생겼다.
남들처럼 살고 싶다고 외치며 맞이한 결혼에 적응하기도 전에 시작된 육아는 산 넘어서 산이었다.
선택도 후진도 없이, 아직도 자기 마음 하나 해결할 줄 모르던 채로 엄마가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이 없다. 출산하자마자 그전의 나를 삭제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 것은 당연했다. 엄마가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었을 테지만 나는 영 재능이 없었다. 밤새 우는 아이를 보면 나도 울고 싶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화를 내도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었고 아이와 둘이 남겨진 집안의 무거운 공기는 나를 점점 땅으로 꺼지게 했다. 갓난아이는 꽤 자주 아파서 이유를 알고 싶어 밤새 육아카페를 검색하고 삐뽀삐뽀 119를 보고 또 보거나 응급실에 달려가곤 했다.
"아니 어떻게 이 힘든 일을 다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지??"
고등엄빠 프로를 보면 고등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부모가 되는 선택을 하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 아이들은 누구나 아이를 낳지만 누구나 부모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어떤 직업보다 하드 한 것이 부모다. 결코 도망갈 수 없다.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 무작정 덤벼들 만한 일이 아닌데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걸 알아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결국 출산은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다.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고 아이를 키우면서 미처 성장하지 못했던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육아로 나를 잃어버린 거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