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각자 새로 만들어가는 세계에 집중하느라 아니 실은 자기 살기 바빠서 잘 만나지 않던 친했던 동창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아이가 영재고에서 서울대를 입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만났으니 그 친구로서는 매우 생경한 일이었으리라.
"주당, OOO, 자식은 엄마를 닮지 않는다를 보여주는 사례 아니야?? 그걸로 글을 써봐. 하하하"
다른 친구도 비슷했다
"너 그런 스타일 아니잖아? 솔직히 너 별로 한 것도 없지 않아? 푸하하"
대부분 이런 트랙을 걸었던 아이를 둔 부모들은 나보다 정성이 가득하게 미리미리 준비했을 확률이 많을 거다. 덤벙대고 의지박약에 대충대충을 입에 달고 사는 나와 성실하고 의지가 강한 아이는 확실히 많이 다르다. 대학 타이틀이 아이를 성공적으로 키운 스티커를 엄마한테 주고 으스대게 할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설사 백번 양보해서 성공적인 입시에 대해 칭찬을 받는다면 그것은 엄마몫이 아니라 노력한 아이가 들어야 할 찬사일 거다.
어찌 되었든 본인이 원하는 곳에 입학한 것만으로 그 아이의 인생이 탄탄대로를 보장받는 것도 아니고 그런 타이틀 외에 다른 인간적 성숙함과 사회성 등 고려해야 할 많은 부분이 있는데 그것들을 배제하고 아이를 잘 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단지 과학고나 영재고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의대나 서울대에 갔다고 육아비법을 전수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다.
세상천지에 좋은 대학에 가는 비법, 좋은 엄마가 되는 법을 담은 쏟아지는 책들을 읽어보면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엄마가 뭘 이렇게까지 신경 써야 하지?" 의심이 들곤 했다.
그러한 책들에는 학원 제대로 이용하는 방법, 메타인지 키우는 방법, 습관 키우는 방법, 사교육 없이 성공하는 방법, 수도 없이 많은 경험담과 노력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접근한다. 이런 확신을 나는 가지지 못했고 치밀한 계획 하에 키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키웠다는 점에서는 친구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구나 한다. 원래 스스로 틀에 박힌 행동을 싫어했었던지라 아이를 키울 때도 "꼭 해야 한다"라는 지침들에 괜히 심술을 부리는 삐뚤어진 감수성을 가진 엄마여서이기도 했다
"그래, 이렇게 비급 육아로 키워도 아이는 멀쩡하게 큰다고. 잘 키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원래 아이들은 스스로 크는 거라고!"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의 엄마들을 만나면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 넘쳐나는 훌륭한 육아비법을 시연하지 못하고 기분에 따라 성질을 부려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면 어쩌지 와 같은 후회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곤 한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발현되어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도 많이 보아왔고 아이들의 기질은 모두 달라서 책과 육아전문가가 말하는 정답과 현실이 다른 경우도 종종 목도했다.
한 예로 아는 아이의 엄마는 성질이 날 때 아이의 책을 박박 찢었다. 책의 법칙대로라면 그 아이는 엄마에 대한 분노를 쌓아가고 상처받은 영혼이 되어야 했지만 지극히 밝고 명랑하게 자랐고 엄마와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사이가 좋다. 물론 그게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이처럼 공식대로 짠 진행되는 것이 육아가 아니라는 것을 키워본 사람들은 다 알지 않을까.
나 역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너무 스트레스받으며 스스로를 몰아치는 것을 경계했고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자신을 꾸역꾸역 위로했다. 그것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지난한 육아의 과정을 지나온 비법이라면 비법일 것이다. 부족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문을 걸면서.
아이가 생기면 태교가 육아의 시작점일 것이다. 과학적으로도 영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것 같지만 굴하지 않고 나는 내 편할 대로 임신 기간을 보냈다.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6주가 되어 임신 사실을 알기 전까지 평소처럼 흥청망청 과음의 나날을 친구들과 보내고 있었는데 임신을 알고 어쩌지 하고 걱정의 마음이 산더미가 되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들은 "모르고 먹은 술은 괜찮다."라는 말을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되뇌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래 이미 지난 거 어떡하겠어. 걱정해도 소용없는 것은 하지 말자고"
임신 사실을 알고도 클래식을 들으며 영어책을 읽거나 수학문제를 푸는 등과 같은 태교를 하기는커녕 만화책을 읽거나 그때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한번 게임에 빠지면 밤낮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결국 아이를 낳으러 가는 날 새벽까지 했다. 음식도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과자를 남편이 좋아해서 매일 먹어댔고 고구마 자두가 몹시 당겨서 많이도 먹었다. 아이는 임신 때 먹던 음식을 좋아한다던데 과자를 즐겨하지 않고 고구마보다 감자를 좋아하고 자두는 시다고 입에도 안대니 잘 믿기지 않는 통설이다.
다만 만삭 때 밑도 끝도 없이 500만 원 정도를 투자한 적이 있었는데(지금은 별게 아닌 금액일 수 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거액이었다) 그 돈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마음을 졸이고 걱정을 해대는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걱정이 많을 때면 그때 그거 때문일까??라는 죄책감이 들곤 했다.
클래식을 듣거나 좋은 음식을 골라먹는 등의 양질의 태교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안 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의무가 되어 스트레스를 받느니 내가 행복한 게 최고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판에 마음이 불편해서 아이에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어 그것은 지금도 후회되는 지점이다.
아이는 태어날 때 너무 힘들어 울지 못해 폐에 물이 차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3.65킬로의 나름 큰 덩치로 인큐베이터에 일주일도 넘게 들어가 있었는데 처음에 나는 그즈음 친구가 출산 시 태변을 먹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던 차라 별로 속상해하지도 않고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지 뭐 하고 철없이 남의 일처럼 여겼다. 혼자 미역국도 푹푹 먹어대고 아이고 왜 이리 아파하며 내 고통만 생각하고 퇴원을 했다.
혼자 산후조리원에 보내진 후 시간이 지나 찾아간 병원에서 인큐베이터에 갇혀 쌕쌕거리던 아이를 본 순간 푹 하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날 이후 산후조리원 방에서 젖몸살에 시달리며 눈물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흘러내렸다. 철없던 천방지축 아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아픔에 강하게 찔려 마음에서 피를 철철 흐르다니,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