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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24. 2024

나는야 백발 마녀

내 가치는 내가 만든다

염색을 안 한 지 4개월째다. 서른이 넘어서부터 아이 임신, 수유기 때를 빼고는 이렇게 길게 안 한 것은 처음이다. 유전의 힘으로 형제자매 모두 염색하지 않으면 백발이 성성해진다. 

나는 당분간 염색하지 않고 얼마나 하얘지나 내버려둘 셈이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관리를 하지 않는 게으른 자'라는 눈길과 '나이를 알 수 없는 그냥 늙은 사람'이 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모두 외부의 시선에 의해 생기는 껄끄러움이다.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니고 남의 눈으로부터 미친 듯이 자유로운 인간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간 지속해 온 이 끝없는 염색의 싸이클이 어느덧 지루해졌다. 

믿거나 말거나 염색하고 눈이 멀었다는 소리가 들릴 만큼 염색약은 독성을 가지고 있다. 항간의 인기 있는 70대 멋쟁이 유튜버도 환경을 보호하는 데 일조한다고 염색을 중단하고 오래된 옷만 입고 있다. (나도 옷을 사고 있지 않다!)  이렇게 귀찮고 돈 들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몸에도 안 좋은 염색을 하는 이유가 모두 '시선' 때문이라면 안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단 생각이 든다. 반골 기질이 이런 데서도 나타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너무 추레해지면 안 되겠다 싶어 머리는 싹둑 잘랐다. 긴 머리 치렁치렁에 백발은 진짜 감당이 안 되니까. 머리를 자르면 소위 '쎈 언니' 캐릭터 뿜뿜이라 그간 자제해 왔다. 아니나다를까 바로 쎈언니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우 몰라. 그냥 독한 백발 마녀로 살아보지, 뭐. 


불편할 정도의 부당한 대우와 오해를 받으면 그때 다시 고민해 보기로. 머리 하나 가지고 참으로 유난스럽게 구구절절이다만 이런 나의 결심은 내 가치는 내가 만든다는 생각과 살포시 연결된  부분이 있다. 인정욕구가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있는 것들이 타인에게 서운함을 느끼거나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게 했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의 과정과 결과를 누군가가 박수치거나 칭찬하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두리번거리다 의기소침해지거나 애써 시작한 일들을 때려치우기도 했다. (물론 게으름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만)

'단단함'.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단어다. 스스로 내면이 단단하면 나아가는 데 자꾸 뒤통수를 잡아끄는 수많은 시선에 의해 주저앉지 않을 거다.


며칠 전 아이가 

"스스로를 믿는 게 왜 이리 어렵지? 통제할 수 없는 조건들도 감안하고 최선을 다했으면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믿어야 하는데 자꾸 의심하게 되네."

"엄마는 스스를 믿은 적이 없어. 너를 보면 그래도 잘 믿는 거 같아서 부럽더라."

"스스로를 못 믿을 게 아니라 결과가 잘못되면 개선 방향을 찾으면 되는 건데 그게 쉽지가 않네."

"그러게, 그러려고 노력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겠지. 엄마도 그러고 싶다"


"환경을 정의하는 건 나 자신이고 내가 바뀌면 모두 바뀐다"고 한다.

나를 믿지 않고 세상에 부딪히면 작은 부정적인 피드백이 태풍이 되어 나를  휩쓸고 판단을 흐리게 한다. 

백발 마녀를 결심하니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기분도 든다. 난 그런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요. 라고.

내 가치는 내가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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