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일기
장맛비가 잠시 쉬어가는 맑은 날이었다. 날은 흐리지만 환했고, 습하지 않아 선선함이 감돌았다. 놀러 가기 좋은 여름날이었다.
오전에 외근을 나갔는데, 오래된 아파트 입구 아치가 눈에 띄었다. 녹색 푸름이 풍성히 채워진 아치엔 따뜻하고 보드라운 주황색 능소화가 만발해 있었다.
언젠가 뉴스에 , 능소화관련된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능소화가 아름답게 펴서 사진명소가 된 곳이 있었는데 누군가 줄기를 잘라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처음 나의 눈에 띈 능소화. 이후 곳곳에 피어있는 능소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온통 녹색인 여름 한가운데 피어있는 능소화를 발견했다.
‘능소화가 여름 꽃이었구나.’
언제부터 능소화가 이렇게 숨어있었을까. 아는 사람만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무엇이 나의 안개를 걷어가 밝혀준 것일까. 오늘 여름의 새로운 발견을 하였다.
오후에도 외근을 하게 되었고, 복귀해 주차를 하려는 중이었다. 주차장은 차로 꽉 차있었고, 나가려는 차와 들어가려는 차로 혼잡했다. 안쪽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데, 거기서 후진으로 나오는 차가 있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천천히 후진하던 차가 갑자기 급가속을 하더니, ‘퍽’. 주차돼있던 중형차의 앞부분을 들이받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헉'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충격이 꽤 있었는지 후진하던 차의 뒤 범퍼가 옴폭 들어가 있었다. 나와있던 동승자는 당황해했고, 운전자는 앞으로 차를 뺐다. 그러자 들어가 있던 뒤 범퍼가 다시 원래대로 '퐁' 튀어나왔다.
바로 앞에서 사고를 목격했기에, 혹시 몰라 사진을 찍어두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 운전자는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차에서 나왔고 상대차를 몇 번 보고 나서 동승자와 같이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설마 그냥 가버린 건가…?'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난 차를 주차한 후 동료와 함께 차를 보러 갔다. 차는 검은색 중형 세단이었다. 앞부분을 봤는데, 사고 흔적이나 들어간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살짝 흰색 페인트가 보이긴 했지만 크게 눈에 띄는 정도도 아니었고, 이번 접촉사고로 생긴 거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아마 번호판 같은 단단한 부위애 부딪혔던 거 같았다.
'운이 좋았네 그분들.'
그렇게 신기해하며 한참을 보고 가려는데, 사고를 낸 차가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사고를 낸 분들이 차 앞에서 이야기하는 우리를 보더니 차 주인이냐고 물어, 아니라고 답한 후 자리를 떴다. 차에 이상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후속조치를 하려고 돌아온 거 같아 가도 될 거 같았다. 주차장 한 곳에 고양이 세 마리가 누워있어 가방에 있던 추르를 꺼내 주고 사무실에 돌아왔다.
사무실에서 접촉사고를 목격담 얘기를 했는데, 누군가 차주인에게 연락하는 게 나을 거같다했다. 사고 흔적도 없고 사고 낸 차도 돌아와 그래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다시 차로 가 사고 난 곳을 보고 차주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차주는 나이가 있는 듯한 남자분이셨는데, 내 얘기를 듣는데 놀라지도 않으셨고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을 보이셨다. 사고 낸 분들이 연락하셨구나란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차주는 고마워하셨고, 난 혹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다 잘 되었나 보다 하고 잊고 있었는데, 저녁에 보니 문자가 와있었다. '나중에 돌아와 차를 봤는데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고, 고마웠다'라고. 이렇게 인사를 해주시니 고맙고 잘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많이 고마우셨는지 어디에 사는지 치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인사를 하셨다. 난 그냥 주변에서 연락하면 좋을 거 같다해서 잠시 전화한 것뿐이라고 마음만 받겠다는 인사를 계속 드렸지만, 어디 사는지를 물어보며 계속 문자를 주셨다.
진짜 좋게 봐주셨나 보다란 생각에 고맙기도 했지만, 개인 정보를 드러내는 게 조금 부담스럽던 찰나, 그분이 본인의 아들 나이를 말해주시고 슬쩍 내 나이를 물어보시는 거였다.
나이를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숨길 이유도 없고 나이를 알면 마음 정리를 하시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제가 나이가 조금 더 있는 듯합니다.'라고 답을 보냈다. 어떤 답장이 올까 하며 있었는데, 이후 더 이상 문자가 오지 않았다.
문자를 보낼 때마다 계속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서, 언제 문자를 끝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보고 답장을 멈추셨구나란 생각에, 웃프기도 했다.
'그래, 여기까지 서로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길'이라 생각하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남기기로 했다.
다음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본다. 오지랖일 수도 있어 개입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때도 상황을 보고 판단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이번에 전화해서 알려주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경험을 했기에, 조금은 더 용기를 내도 된다 싶었다. 그래 다음엔 그렇게 하는 걸로.
새로운 경험과 대처 +1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