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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Sep 21. 2022

캐나다에서의 갑과 을의 관계

캐나다 회사에서 적용하는 윤리규정


한국에서 '갑'과 '을'이었던 관계가 캐나다에서 바뀌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이민 오기 직전까지 한국에서 개인사업을 하던 저는 철저히 '을'이었고 저의 고객이었던 여러 회사들은 모두 '갑'의 입장이었겠지요.


캐나다에서 제품 연구개발 책임자 일을 처음 맡게 되면서 한국에서는 거의 겪어보지 못했던 ''입장이 되었습니다. 여러 공급업체 담당자들의 방문으로 상담을 가지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를 통하여 업무 외에 개인적인 친분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기획한 신제품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출시가 되면 그 제품의 공급회사 담당자와는 더욱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가깝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향후 준비 중인 다른 신제품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서로 교환하게 됩니다.



연구개발 책임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존 공급업체의 담당자의 방문으로 진행 중인 여러 가지 업무와  그러듯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 작별인사를 하려는데 저에게 조그만 봉투를 내밀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업체 담당자: "주말 잘 보내십시오"


순간 '받아도 되는 건가' 잠깐 주저하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나: "이게 뭔가요"

업체 담당자: "아, 네 영화 티켓입니다. 전에 영화를 좋아하신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준비했습니다. 요즘 상영하는 영화 중에 은 작품이 많이 있더라고요."

나: ".... 네"


'영화 티켓 받으려고 영화 이야기한 것은 아닌데'하며 사무실에 돌아와 혹시나(?)하며 봉투를 열어보니 역시나(?) 팝콘과 음료가 포함되어 있는 2장의 영화 관람 티켓이 들어 있었습니다. 금액으로 환산하니 전부 25불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받아도 괜찮고 문제가 없는인사부에 문의를 해보니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입사하면서 받았던 서류 중에 근무 윤리 규정(Ethnic Issues)에 관한 몇 가지 사항이 있었는데 금액으로 25불 정도 되는 어떠한 상품이나 향응은 일반적인 감사의 표시로 허용되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금액을 초과하는 물품이나 향응이 되는 경우는 사양을 하거나 아니면 받더라도 인사부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캐나다의 '갑'이 되고 나서 제가 경험했던 거래 업체로부터 제시되는 여러 가지 상품 또는 향응을 기억해 보면,


1. 거래업체의 판촉물

납품업체회사 광고나 영업 활동 증진을 위해 자사의 로고가 인쇄된 판촉물들로 받아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칼, 포스트잇, 온도계, 달력, 계산기 등입니다.


2. 영화 티켓 & 와인

가장 많이 받는 상품으로 25-30불 정도 가격의 와인이나 2장 정도의 영화 티켓입니다. 특히 와인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받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자주 받거나 술을 안 마시는 직원은 인사부에 전달해서 전체 직원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경품 추첨 상품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3. 경기 관람 티켓

조금 애매할 수 있는 부분인데 어떤 경기인지 그리고 경기장에서 어느 위치의 좌석인가에 따라서 금액의 차이가 많이 납니다. 테니스 경기, 야구경기, 농구 경기, 하키 경기 티켓 (제일 비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을 몇 번 받은 적이 있었는데 티켓에는 금액이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인터넷 사이트에서  경기장이나 대회의 좌석 위치에 따른 금액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프로농구(NBA) 주말 낮 경기 티켓 2장을 받았는데 미리 약속된 다른 일과 시간이 겹쳐 생각 끝에 농구를 정말 좋아하는 친한 후배들에게 주었습니다. 저녁에 후배들 중 한 명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후배: "형, 오늘 덕분에 눈 호강했습니다."

나: "왜? 경기가 재미있었어?"

후배: "경기도 좋았지만 좌석이 코트에서 두 번째 줄이어서 정말 실감 나게 경기도 관람하고 치어리더들도 가까이에서 보고. 정말 고맙습니다."

나: "그래? 그렇게 앞쪽 좌석이었어?"


순간적으로 비싼 티켓이었다는 알았고 좌석을 체크해보지 않고 그냥 준 것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확인해 보고 인사과에 물어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에 계속 찜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4. 골프 대회 모임 초대

가장 금액이 크지만 대형 공급업체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주로 봄, 가을에 많이 열립니다. 기존 거래하고 있거나 향후 가능성이 있는 모든 고객회사의 구매 책임자와 원, 부재료의 사용을 결정하는 제품 연구개발 책임자들을 초청하여 골프 라운딩을 하고 끝나면 별도의 저녁 식사시간과 추첨을 통해 준비한 간단한 선물을 안기는(?) 일정으로 진행합니다. 공급업체의 책임자들은 물론 동종업체와 관련 경쟁업체의 책임자들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정보와 인적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중요한 자리가 됩니다. 주 중에 열리는 경우가 많아 회사를 결근하면서 참석하기가 조금 꺼려지기는 하지만 주말에 열리는 경우에는 참석을 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골프모임에 대해서는 회사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공급업체의 그런 행사가 오래된 전통이 있1대 1의 만남아닌 많은 업체의 실무자들이 함께 참가하여(서로 감시하며?) 업계의 최근 트렌드와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는 자리여서 그런 것이 아니가 싶습니다.



이직을 통해 처음으로 R&D manager가 된 후 1년쯤 지나 부서의 결원이 생겨 경력직 연구원 1명을 고용해야 한다는 오더와 함께 직책에 요구되는 경력 사항을 인사부에 통보하게 되었습니다. 그 포지션이 구직 사이트를 통해 리스팅 된 후 어느 날 인사부 책임자지원자들의 서류를 검토하고 인터뷰를 할 3명의 최종 후보자의 이력서를 들고 왔습니다.


"최종 면접 후보자 3명의 이력서고 자세히 보면 그중 한 명은 한국인이야. 경쟁이 재미있게 됐는데."


건네준 세명의 이력서 중 한 명은 캐나다로 이민 온 한국인이었고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개인 비즈니스를 때 만난 거래처인 '크00' 연구소의 과장이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외국업체와 함께 제가 기획한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했던 연구소의 한 부서장이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며칠 후 통보받은 3명의 후보를 면접하는 날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시간이 정해진 후보자를 만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갔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하고 질문을 시작하려는데 전혀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긴장했고 제 모습이 많이 망가져 있어서(당시 포니테일 머리에 고티 수염을 기른 상태였습니다)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한국말로 기억을 더듬어 예전의 이야기를 꺼내니 깜짝 놀라며 그제야 알아보는 것 같았습니다. 반가움과 민망함이 아닌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잘 부탁한다는 당부와 함께 헤어졌습니다. 단지,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가 아니라도 세 명의 후보 중에 요구되는 경력과 스킬이 가장 뛰어나서 그분으로 최종 결정을 알렸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지만 저는 만남보다는 좋은 헤어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헤어짐 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 관계는 전보다 더욱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면사진 (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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