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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Dec 12. 2022

띠동갑 늦둥이를 둔 아빠의 비애

아빠 나이가 우리 반 아빠들 중에 제일 많아!


작은 아이가 7학년이었으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쯤 됐을 나이일 때입니다. 어느 날 저녁식사 중 제게 뜬금없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우리 반 아빠들 중 아빠 나이가 탑이야"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니?"

"친구 아빠동갑이었는지난주에 전학 가서 이젠 아빠가 최고로 늙었어"


밥 먹다가 갑자기 황당한 소리와 함께 늙었다고 이야기하니 좀 서글퍼지면서 이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습니다.


'항상 어리고 젊을 것 같니? 세월 가면 너도 늙는다'


물어보니 반 친구들끼리 부모님 나이, 심지어 이혼 여부도 서로 물어봐서 알고 있다고 합니다. 혹시 예전 글을 읽어 보신 분들이 있다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미 고인이 된 가수 유재하와 봄여름 가을 겨울의 드러머 전태관이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아, 크루즈는 동갑이었네요. (연식이 나오죠. 참고로 이글에 나오는 모든 나이는 한국식 나이가 아닌 만 나이입니다).




작은 아이는 제 나이 마흔두 살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큰 아이와 띠가 같습니다. 네, 12살 차이 나는 띠동갑입니다. 자녀를 많이 두어 형제자매 순서도 헷갈리곤 했던 저의 부모님이나 윗세대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일이었지만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서 그리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이 차가 있다 보니 가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작은 아이가 한, 두 살 때 가족이 함께 외출을 하면 좀 젊게 보이는 와이프의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큰 아이를 사별 혹은 이혼한 전처의 자식으로 보는 시선이 꽤 많았습니다. 나중에 같은 배에서 아파 낳은 자식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다 그렇게 오래 쉬다가 아이를 낳았냐', '사고냐 계획이냐'라웃으며 물어보는데 딱히 답변할 말이 없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모두 하늘에서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한국에서는 육십갑자에 따라 그 의 이름을 부르고 자기가 태어난 해가 60년 만에 돌아오는 축하하의미로 환갑잔치나 회갑연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예전에는 수명이 짧아 60세까지 사시는 분들이 많지 않아 축하의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지금은 평균 수명도 늘어나고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어 그렇게 중요한 이벤트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캐나다에서는 50세가 되는 해를 'Golden Jubilee' 또는 'Half a Century'라고 부르며 그 해 생일 파티를 크게 열어 축하합니다. 직장에서도 동료들의 50세 생일은 보통 때와는 다르게 보내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나이가 위인 료는 50세 되는 해 토요일인 생일 앞뒤를 포함해 3일간 집에서 성대하게 파티를 계획하고 주말이니 꼭 오라고 초대장을 보내왔습니다. 궁금하기도 하고 축하도 해주기 위해 참석했는데 그의 가족, 친지, 동료 그리고 주위의 이웃사람들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밤늦게까지 찐(?)하게 노는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50세 되던 날에도 가족들보다 회사에서 오히려 크게 축하를 받았습니다. 회사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모든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축하와 선물을 받았습니다. 집에서는 여느 해와 다름없이 간단하게 가족들과 미역국에 생일 케이크 나누며 하루를 보낸 것 같네요.


50세 생일축하 케이크




저와 7살 차이 나는 막내동생을 늦게 보신 아버지께서는 유난히 막내를 많이 챙기고 커서도 애틋함을 보이곤 하셨습니다. 뭘 그렇게 유난을 떠시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제가 늦는 나이에 작은 아이를 얻고 자라는 걸 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저와 와이프는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로 각자 직장에서 자신의 입지와 미래를 위해 개인의 삶을 일부분 포기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맞벌이 부부들이 그랬듯이 우리 부부도 부모님이 사시는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겨 큰 아이를 맡기고 도움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늦은 퇴근과 육체적, 정신적인 피곤함으로 어릴 적 큰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컸고 항상 마음 한 곳에 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행히 작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나이도 고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감도 있을 때여서 더 많은 시간과 사랑을 작은 아이에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조금 달랐던 와이프는 저에게 '간, 쓸개 꺼내 줄 것 같이 너무 그렇게 큰 아이와 차이 나게 해주지 말라'며 자제를 부탁하는 이야기를 자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이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는 몰랐는데 오래전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아는 분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릴  품 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사춘기가 되면 정을 떼고 성인이 되면 정을 떼며 결혼해서 새 가정을 이루남아있는 정 모두를 떼어 내야지'


그 이야기를 나이 먹은 지금은 새삼스럽게 수긍하게 됩니다. 항상 곁에 있으며 품 안의 자식이고 모든 것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던 작은 아이는 어느덧 자라 대학에 입학하면서 둥지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빠 엄마보다는 남자 친구, 나이 많은 언니보다는 친한 친구를 더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올해 여름이 시작되면서 작은 아이의 졸업과 함께 모든 서포트 (학원, 예체능 레슨에 해주던 차량 픽업, 드롭 등 뒤치다꺼리)가 끝나며 이제는 완전한 엠프티 네스터 (Empty Nester)되니 무엇인가 집중해서 해야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시작한 것이 브런치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나이에 내가 바라고 번거로운 일을 만드나' 하는 생각에 그냥 포기해 버릴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글 쓰는 재주도 없고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동안 살아오며 보고 느낀 들과 먼저 경험해서 알게 된 것들을 진솔하게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글을 씁니다.


(모든 사진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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