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한 뿌리.

동유럽 오래된 성에서 달래를 캐다.

by Jane Anne

햇살 좋은 봄이었다.

주말에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허물어진 고성에 갔다.
자그마한 동네의 가장 높은 동산에 지어진 돌로 된 성.
지금은 틀만 남은 작은 창문들을 통해 야트막한 동산 위에 쓰러지고 깨진 비석들도 보이고, 바래진 붉은빛 교회 첨탑과 동네의 집들도 보인다.

봄이라 그런지, 드넓은 들판에 심어진 초록빛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쭈욱 뻗어있는 고속도로, 오래 전과 지금이 조화로운 이 곳이다.


성을 둘러보고 내려오다 뭔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파 보니, 그것은 뿌리가 동그랗고 수염이 나있는 달래였다. 진짜 달래였다. 들어가지 말라고 쳐둔 바리케이드 너머의 달래를 기쁜 마음으로 만끽하고, 앞쪽에 있는 달래 두 뿌리만 캐서 내려왔다.


나는 그걸로도 충분히 가슴 깊이 봄을 느꼈다.

성을 나와서 내리막길, 무너져 내려가는 비석들의 비스듬한 언덕 위에서 나의 봄은 넘쳐난다. 내가 신나 하니 나의 아이들도 손톱에 흙을 묻히며 나의 추억에 즐거움을 보태준다. 이번에는 가족 모두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한 움큼의 달래를 캔다.

이 곳은 내 고향으로부터 하늘 길로도 11시간이나 떨어진 곳인데...

13세기 헝가리 제국의 방어를 위해 지어지고 한때는 무척 아름다웠던 이 성이 감옥과 막사로 쓰이다 결국에는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달래는 원래 원산지가 동양이고 재배 채소가 아니라 하니 어느 시절에 바람을 타고 와서 뿌리를 내린 것이리라.

문득, 사람과 식물에게도 인연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곳 사람들은 지천에 두고도 무심히 지나쳤으나 동양에서 온 외국인인 나에게는 무척 의미가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무리를 지어 사나 아마 달래라 불러주는 이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뿌리는 벌써 몇 겹의 껍질에 껍질을 더해 겹겹으로 쌓여있었다.

집으로 곱게 싸 들고 와, 나의 베란다에 딸아이와 함께 옮겨 심었다. 물은 주고, 바람과 햇볕은 자연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나는 그 달래를 먹지 않았다.
그저 나의 공간으로 가져와 바라보았다.
검은 봉다리와 호미를 들고 엄마와 덤불 속 볕 좋은 곳에서 달래를 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젊은 엄마와 어린 나는 그렇게 봄을 느꼈다.
달래를 캐서 오면 엄마는 향긋한 달래 된장국을 끓이셨고, 고추장으로 버물려서 봄이 다 가도록 봄 맛을 느끼게 해 주셨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진한 달래의 맛과 향이 그대로이다.

하지만 올 해의 봄은 참 잔인하다. 그 작은 바이러스가 퍼져 가까이 있는 언니들도 부모님을 못 뵈러 가게 만들었으니.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어도 못 뵈는 그 마음 중 누가 가장 그리움이 가득할까? 아마도 그건 나도 언니들도 아닐 것이다.

이 먼 타국의 땅에서 우연히 본, 달래가 내 마음속에 파고들어 기쁨과 반가움과 그리움과 슬픔을 동시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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