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경, 맑고 자그마한 소리가 잠자는 내 곁으로 찾아온다. 잠을 자면서 들리는 그 소리가 참 좋다. 싱그럽고 투명한 방금 태어난 아기의 소리 같다. 이른 봄에만 들을 수 있는 공원의 새소리가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가볍게 타고 나에게로 온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 졌다. 어느 해 5월, 바다를 보러 가자고 졸랐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도착해 보니 입구 쪽에 마차가 기다리고 있다. 봄날의 낭만을 사고 싶었다. 눈으로, 온몸으로 봄에 취하고 싶었다. ATM기를 찾아 폴란드 돈으로 환전하고 거금 50유로에 해당하는 돈을 건네주었다. 두 필의 말들이 목에 매단 자루 속의 먹이를 먹고 있다. 드디어 마차가 출발한다. 십여 명의 '바다를 보러 가는 사람들'을 싣고서 산으로, 산으로 들어간다. 둘러둘러 올라가는 산 길을 말들은 느릿느릿 걸어간다. 곧 왠지 미안해진다. 힘을 줘서, 몸의 힘을 빼보려 한다. 사람들은 비탈진 지름길로 두 다리와 두 팔을 이용해 날다람쥐처럼 더 빨리 올라간다. 말의 엉덩이가 벌렁벌렁 한다. 여물을 먹고 출발한 뒤라,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소화도 잘 되었나 보다. 뿌지직, 눈앞의 광경도 냄새도 그대로 마차에 실린 우리에게로 가까이, 가까이 다가온다. 코를 막고는 애써 눈길을 산으로 돌린다. 그곳에는 머위로 보이는 풀들이 잔뜩 있다. 어릴 때 집 뒤로 돌아나가면 낮은 산등성이에 머위가 있었다. 그때는 엄마가 잘해주시지도 않았는데, 봄날의 저 풀들을 나물로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진짜 머위는 아닐까, 뚫어지게 쳐다보고 또 본다.
마차는 1시간을 천천히 올라간다. 바다를 보러 가는 길에는 따뜻하게 입고 왔어야 했는데, 봄인 줄 알고 입은 트렌치코트는 추위를 막아주기엔 너무 얇다. 마부는 아직도 겨울의 둔탁한 옷들을 겹쳐 입고 있다. 출발할 때 나눠준 보풀이 잔뜩 일어난 지저분해 보이는 담요를 자꾸만 내 쪽으로 잡아당긴다.
어느덧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내려서 걸어가라 한다. 산 위는 오히려 평평하게 넓은 산 길이 바다와 이어져 있다. 지금부터는 말들이 진짜 말이 되어 달릴 수 있는 길인데 등 떠밀려 내린 나는 어안이 벙벙하다. 30분을 다시 걸어갔다.
산이 깊고 눈이 많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자코파네'의 깊고 깊은 산속에 바다가 있다.
드디어 바다다! 모르스키에 오코( Morskie Oko), 즉 '바다의 눈( Eye of the Sea )'이다. 호수의 알 수 없는 깊은 곳은 어느 바다와 맞닿아 있다는 전설이 있는 곳, '바다의 눈' 은 아직도 하얀 눈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었고, 봄의 나무들은 조금씩 눈동자를 연둣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맑고 푸른 바다를 닮은, 바다라 불리는 바다가 산 정상에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힘차게 내려치는 파도가 없었다. 소금기가 섞여서 비릿하면서도 짭짤한 엉겨 붙는 바닷냄새도 없었다. 갈매기가 모래사장에 앉아서 해바라기 하고, 소리만으로도 가슴의 응어리가 씻겨나가는 짙은 푸른색의 바다는 없었다.
내려오는 길은 마차 삯이 좀 더 싸다. 하지만, 나는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해 마구 내달려서 내려왔다. 봄을 보고 싶었던 내 마음도 바다를 보고 싶었던 내 마음도 모두 거부당한 것 같았다.
새벽에 봄의 소리를 들려주었던 집 옆의 공원을 다시 찾았다.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아이와 그네를 타며 고개를 뒤로 젖힌다. 마음이 우울했다. 그런데, 그곳에 가로등 불빛을 받고 서 있는 봄꽃 나무를 보았다. 아스라이 하늘 높은 곳에 핀 작은 연둣빛 나무의 새순들이 마치 벚꽃처럼 분홍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봄꽃 나무를 찾아 헤매 다녔었는데, 눈물이 핑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