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로사에게.

by Jane Anne


그이기도,
그녀이기도 하다.
이름은 "로사"였다.
지금은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마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만났다면 말이다.

우리 집에서 약 5개월을 살다 오늘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자기도 아는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활달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한동안은 주는 밥을 먹지도 않고 아예 흙을 파헤치고 들어가 몇 주간을 꼼짝도 안 했다. 싱싱했던 음식들은 시들어 바짝 말라버리기 일쑤였다.
분명히 뚜껑을 닫아놓았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걱정이 돼서 여기저기 찾아보다 혹시나 흙을 파보니 잔뜩 웅크리고 앉아 말라버렸다. 그 모습을 보니 짠하다. 몇 번이나 죽은 줄 알고 물을 적셔주고 다시 싱싱한 채소 잎을 놓아두어도 그대로다.


한 번은 답답해 보여 뚜껑을 열어줬더니 금세 알아채고 숨겨놨던 더듬이를 쏙 꺼내더니 여기저기 방향키를 놓다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고 느려 보여도 순식간에 바닥을 건너 벽을 타고 욕조로 내려와 있다. 그러다 잠시 한 눈을 파다 바라보니, 커다란 양동이 벽을 열심히 올라타다 나에게 딱 걸려들었다. "로사"가 움찔한다.
매우 작은 "로사"가 넓은 욕조에서 잘 노는 걸 보고 안심했다. 그러다 그만 깜빡하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안 보인다. 욕실 바닥, 세탁실, 거실 등 여기저기 구석을 봐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 이런!
너무 방심했나 보다.
우리가 자는 동안 쉬지 않고 움직였다면 우리 집 어디로든 못 갈 데가 없었다. 걱정이 되는 건 내가 찾지 못해서 매우 건조한 상황에서 최후를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거의 포기하고 며칠이 지난 뒤, 드디어 딸아이가 "로사"를 찾아냈다. 욕조 바로 가까이에서 말이다. 욕조 위의 모퉁이에 수족관에 넣을 돌멩이를 비닐봉지 안에 넣어두었다. 어떻게 해서 신통방통하게 들어갔나 보다. 그러나 나오는 길을 못 찾아, 다른 돌멩이들처럼 동그랗게 말고 포기한 채 웅크리고 있었다. 서둘러 물을 공급해 주고 맛있는 먹이를 주고, 이번에는 뚜껑을 꼭 닫아두었다.
그 후로 "로사"는 한동안 꼼짝 않고 그곳에서 죽은 듯 살아있었다.
자유를 향했던 실패 때문이었는지, 다시 갇히게 된 절망 때문인지 아예 흙 속으로 들어가 굳어 있었다.

"로사"라는 이름은 딸아이가 지어주었다. 작은 방을 꾸며주며 좋아하더니 어느새 내가 돌보아 주게 되었다. 잊힐만하면 한 번씩 내게 안부를 물어보고는 딴짓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다시 마음이 동했다. "로사"를 새로운 방으로 옮겨주더니 바빠졌다. "로사"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닌다. 노래도 불러준다. 잠시 베란다로 나가 햇볕도 쬐여주고 가을바람도 쐬여준다. "로사"가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다시 방향키를 켠다. 쏙, 쏙 나오더니, 쑤~욱 길게 뻗어 나온다. 순식간에 벽을 올라타고 위로 올라온다. 살짝 건들면 움츠리다 다시 움직인다. 너무 많이 간 것 같아 도로 집으로 데려다 주려 하니 바닥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떼를 쓴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로 바래다주고 다시 집으로 와 식탁에 앉았다. 요 며칠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추워서 창문은 꼭 닫아두고 사방이 조용하다.
"사각사각" 어디선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간지러운 소리가 난다.
아, 우리 집에 나 말고 또 누가 있었던가?
소리가 나는 곳을 찾다, 식탁 위를 보니 "로사"가 아침 식사 중이다.
또 난다.
"사각사각"
규칙적이고 음률이 있는 작고 경쾌한 "로사"의 씹는 소리이다. 그러더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예쁜 녹색 응가를 두어 덩이 싸 놓았다. 몇 달을 어두컴컴하고 침침한 욕조 위, 작은 통 안에 마치 화난 듯 있더니, 내 곁으로 데려오니 밥도 잘 먹고 응가도 잘 눈다. 예뻐서 뚜껑을 열어주니 저번에 가둬놓은 걸 기억하는지 꼼짝도 안 한다.

드디어 "로사"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뚜껑을 열어주니 금방 밖으로 나온다. 활기차다. 다시 집으로 넣어주고는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차 안에서 구멍 없는 뚜껑이 답답할까 내려주니 여기저기 잘 다닌다.

마침내 도착했다.
우리가 그, 그녀를 발견했던 그 장소에 "로사"를 풀어주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그 날 따라 초록은 더 초록색이라서 "로사"의 색깔은 참 예뻤다.
잘 가, 안녕!


우리 딸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널 데려와서 미안했어. 그리고 우리 집에서 살아있어 줘서 고마웠어.


모든 푸른 하늘이 너의 지붕이 되고,

모든 초록 풀잎들이 너의 포근한 집이 되길 바라.

모든 바람이 너의 살결을 부드럽게 해 주고,

모든 이슬이 너와 함께 퐁퐁 터지며 빛나는 아침을 맞길 바라.

너의 집은 아주 좋은 곳에 있었구나!

작은 너와 큰 우리가 만나,

서로를 해치지 않고 잘 지낸 시간이 있어,

우리는 그 시간을 "행복"이라고 기억하게 됐어.

너의 이름은 "로사"였지만,

이제 "너"로 돌아가렴.


너는 다시 찾은 너의 땅에서 서두르지 않고 우아한 몸짓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 더듬이를 한껏 펼쳐서 자유를 깊이 새기며 감상하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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