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익어가는 계절

by Jane Anne


좀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시골의 오일장이 열리는 나름 우리 동네 최고 중심지를 벗어나면 그즈음에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키 작은 우리들이 손을 뻗으면 웬만한 곳에는 무화과 열매가 닿을 수 있는, 그곳엔 잎이 무성한 그리고 열매가 풍성한 나무가 있었다.

그 앞을 지나면 내 친구는 바닷가 어촌 마을로, 나는 논과 밭이 있는 농촌 마을로 헤어지는 갈림길로 들어서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곳, 무화과나무에서 멈췄다. 언니가 물려준 건지 엄마가 시장에서 사준 건지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책가방을 길 위에 던져놓고 우리는 기념비가 세워진 두 개의 무덤이 있는 그곳의 문을 몰래 열고 가, 무화과나무의 무성한 잎들에 숨었다. 그 그늘에서 무화과를 땄다. 하얀 나무 수액이 신기했다. 그리고는 다시 무화과로 눈길을 돌려 살짝 깨물어 본다. 이제야 살짝 분홍빛이 물든 무화과를 먹다 다시 뱉었다. 먹을 게 풍부한 시기가 아니었지만 밍밍한 그 맛이 그때의 나에게는 전혀 맛있지가 않았나 보다. 그리고 들킬까 봐 멀리 수풀 사이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새 무화과 열매를 따다 하얀 우유 같은 빛을 바라보다 또 손에 든 무화과를 먹다 뱉다 하며 한참을 그곳에서 놀았다. 그 놀이가 지겨워질 때쯤 친구와 난 가방을 챙겨 그 갈림길을 향해 걷다 아쉬움에 저만치에서 손을 흔들어댔다.

그 나머지의 길에는 500년도 넘은 당나무가 있고 대로변을 따라 좀 더 걸으면 초록색으로 칠해진 지붕이 있는 집이 있다. 그곳이 우리 집이다.

엄마, 아버지는 일하러 가셨고 언니들은 아직 집에 오기 전이다. 나는 엄마를 찾으러 근처의 논과 밭으로 향했다. 대로변을 건너면 쫙 펼쳐진 논과 낮은 산들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쪽빛 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엄마가 보인다. 논만 있는 그 중간에 우리 밭이 있었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엄마는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고 있다. 우리 엄마의 일터였다. 혼자 집에 가기는 싫고, 뜨거운 볕도 싫었지만, 엄마가 끝날 때까지 풀을 뜯으며 기다렸다.





지금의 우리 애들은 내가 학교 앞으로 데리러 간다. 이곳에서는 초등 4학년 때까지는 혼자 다니게 하면 안 된다. 미리 종이에 적어 낸 명단에 있는 사람만 데리고 갈 수 있다. 대부분 엄마, 아빠나 조부모 또는 초등 5학년이 넘은 형제, 자매들이다. 우리 애들은 항상 내가 간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하고 있는 경제활동이 없다. 학교에서 데리고 온 우리 아이들 곁에는 내가 머물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는 기온이 10도 아래까지 떨어지고 낮으로는 25도까지 오르는 푸르른 가을이다.
아침에는 안개가 잔뜩 끼어있고 낮으로는 햇살이 여름보다도 더 땅으로 내려와 강하게 내리쬔다. 맑은 밤하늘은 가득한 별들로 아득하기만 하다.



내가 사는 곳의 마트에 터키와 스페인에서 온 무화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따뜻한 지중해 지역에서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제철이라 하지만, 이곳에서는 가을에만 맛볼 수가 있는 가을 과일이다.
크고 알찬 걸 9개 골라 왔다. 우리 딸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과일이다. 얼마 전(9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 애는 늦게 데리러 왔다며 뽀로통해 있다 금세 입꼬리가 올라간다. 얼른 손을 씻고 와 반을 잘라 작은 숟가락으로 부지런히 속을 파 먹는다. 하나 먹고 두 개 먹고, 4개 먹고도 또 먹고 싶어 한다.


나는 그것만 봐도 배부르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먹고 남은 걸 자꾸 먹게 된다.

사실 내가 무화과를 산 건 아들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변비에 좋고 소화에 좋다기에 샀는데 아들은 손도 안 대고 작은 애는 달려들어서 먹고 싶어 한다. 결국, 이제는 좋아할 딸을 떠올리며 산다. 여름에 딸은 커다란 수박을 숟가락으로 파 먹더니, 가을에는 무화과를 또 파 먹는다. 꽃을 좋아하는 아이는 그렇게 무화과 꽃을 하염없이 파 먹고 있다. 마냥 물렁물렁해 보이는 그 꽃을 입에 넣고는 밤하늘의 폭죽처럼 오독오독 터지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오동통한 밤벌레처럼 몸에 좋은 걸 야금야금 잘도 먹는다.





아마 9년 전 여름이었을까?
아드리아해가 펼쳐진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무화과를 몇 알 건네받았다. 동양의 어린아이가 귀여웠던지 동네의 할머니가 마당에서 몇 개의 무화과를 따서 주었다. 아들은 그 할머니가 무서워서 내 품에 꼭 매달러 울어댔다. 말 통하지 않는 날 붙잡아 앉히고 할머니는 그 마을의 이름을 몇 번이고 알려주셨다. 나도 몇 번 따라 해 보다 나도 웃고 할머니도 웃고 마신다. 어릴 때 풋내 나는 무화과를 먹어본 후, 처음으로 제대로 익은 무화과를 먹어보게 되었다. 아들은 그때도 무화과를 싫어했었다. 그때에는 내가 그걸 다 먹었었다. 다음 날 바쁜 여정에도 그 마을의 기념품샵에 들러 작은 뭔가를 사서 나왔다. 그 할머니를 추억하고 싶어서였다. 부엌에 이것저것 주방기구를 꽂아두며 쓰는 작은 항아리는 그때 산 것이다. 그리고 아래에는 마을 이름이 있다.(Bale valle)





친구와 나는 무화과의 제철을 몰랐다. 내 기억에는 한 번도 맛난 물렁물렁하고 달콤한 꿀 같은 무화과를 먹어보질 못했다. 아마 그곳을 우리가 지나가고 나면 또 다른 아이들이 와서 따다 먹다 놀다, 장난감 나무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꼬마 손님들 탓에 무화과는 제철까지 남아있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무화과가 익어가는 계절은 아름답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인류가 최초로 재배한 과일이라고 한다. 그 옛날 온종일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화과는 그때에도 지금과 같이 가시 하나 없는 물렁한 껍질로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줬을까? 넓은 손가락을 닮은 큼직한 잎은 아담과 이브의 부끄러움을 가려주기에 충분했고, 시골의 어린아이들에게는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좋은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막내딸이었던 내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근무하다 고향에서 일하는 외지인을 만나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고향에서 계속 살고자 했으나,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고 말았다.
역시 막내딸이었던 나는 5년만 살다 돌아가고자 했으나 벌써 10년째 외국에서 살고 있다.
무화과가 익어가는 계절, 언제 우리는 무화과 그늘에서 만나 제대로 익은 달달한 무화과를 먹을 수 있을까?
무화과 아래 비밀스러운 문으로 들어가는 꿀벌처럼 우리는 언제 우리만의 공간으로 돌아가 만발한 꽃 속에서 지난날을 얘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날씨가 너무 아름다워서 상대적으로 내 마음이 더 우울해질 때가 있다.
평상시 같았으면 신나게 설거지 한판 하고 말끔해진 부엌을 바라볼 텐데 싱크대를 비롯해 여기저기 그릇 디딜 틈 없이 설거짓거리들로 넘쳐나도 좀처럼 몸을 움직이기가 싫을 때가 있다.

그런 날 허물없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오랜만에 나 어릴 때 인기 트로트 가수였던 김지애의 "몰래한 사랑"을 들었다. 그 노래에 '무화과'가 나온다.

" 그대여 이렇게 바람이 서글피 부는 날에는
그대여 이렇게 무화과는 익어가는 날에도
너랑 나랑 둘이서 무화과 그늘에 숨어 앉아
지난날을 생각하며 이야기하고 싶구나.
~
그대여 햇살이 영그는 가을날 뚝에 앉아서
그대여 이렇게 여미어진 마음 열고 싶을 때는
너랑 나랑 둘이서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네 눈물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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