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의 노인은 아직도 자신의 붓을 놓지 못한다.
왼쪽 뺨에 자신과 어울리는 주름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 애써 자꾸 얼굴을 만져보고 인상을 찌푸려본다. 예전에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느라, 주름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는데. 에잇, 다시 붓을 던져 버린다. 화를 내 보고, 신경질을 내 보고, 크게 웃어도 보고, 베갯잇에 얼굴을 일부러 깊숙이 파묻기도 한다. 마음이 조급하다. 이제 남은 생이 언제까지인지도 모른다. 주름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미켈란젤로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서 4 년 동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거꾸로 그림을 그렸다. 허리가 굽어지고 온 육신의 뼈는 뒤틀렸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힘을 다해 그렸다. 사람들 눈에 잘 안 보이는 곳에도 정성을 다 했다. 제자들이 의아해 스승에게 물어봤다. 그는 '신이 보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과연 신이 존재한다면 그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선함과 악함을.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 이 있다.
사람들은 환호한다. 이름난 재력가와 정치가 등 인기 있는 사람들을 칭송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큰 바위 얼굴' 이 아니었다. 인생의 느지막한 곳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삶을 거친 바람도 순한 바람도 잘 맞아온 바로 옆의 사람이, 아니 바로 '큰 바위 얼굴'을 그렇게 기다려 온 그 자신이 큰 바위 얼굴이 되었다는 것을. 그건 바로 자연을 닮은 모습이었다.
이 글은 피천득 선생님이 번역하셨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도 그분은 아름다운 감성의 언어들을 남겨놓고 떠나셨다. 순수한 얼굴과 작고 여린 감성을 얼굴 가득 담아 놓으셨다.
자신의 삶을 잘 살아온 사람은 모두 자연을 담는다.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억센 사람도, 고생만 한 사람도, 그들의 직업이 아주 내세울 것이 없었다고 하여도. 모든 아기의 모습이 아름답듯이, 많은 노인의 얼굴 또한 아름답다.
오늘 나는 구순을 넘은 우리 아버지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았다. 2년 전의 모습과는 무언가 조금 달라진 아름다운 아우라를 지녔다.
염색 안 한 백발은 은빛으로 빛났고, 날카롭던 눈빛은 온화해졌으며, 입매는 오히려 단단해 보였다. 이마와 눈가 그리고 입가에는 세월 따라 더해진 주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드문드문 검버섯들이 난 얼굴은 오히려 엷은 안개처럼 희뿌연 우윳빛 백자의 빛을 닮아 아름답고 부드럽다.
그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가면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꿈을 꿨다. 하지만 그 어떠한 것들도 예전보다 크게 좋아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다급해진 탐욕의 눈길은 가까이에서 노인의 평안을 뒤흔들어 놓았다. 매일매일 수양하면서 깨우쳐가는 인생의 지혜만이 쌓이고 쌓여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었다.
자신의 삶의 거친 조각들을 모두 순하게 가다듬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80의 세월도 길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보다도 깐깐하고 완벽한 예술가의 혼이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 이제 굵직굵직한 선은 놓아두고, 작은 붓으로 세심하게 붓질을 한다. 자신의 얼굴 주름 하나 고쳐나가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주어도 세월이 흐르면 선하게 산 사람은 어느덧 예술의 작품으로 순화된다. '신'과 '나'는 그것을 안다. 내 괴로움의 원인이 배우자 때문이라도 자식 때문이라도 언젠가는 나의 문제로 귀결이 된다. 평생을 거쳐서 완성해 나갈 아주 예민하고 섬세한 작품의 화가는 바로 나이다.
힘든 인생이었다.
그래서 그의 얼굴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그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봤으면 한다. 나는 그것을 간절히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