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에 부는 바람은 같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바람이 분다.

by Jane Anne

(2017년 여름 이야기)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나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음력 5,6월이 지나고 뉴스에서는 최고 무더위라고 하는데, 엄마, 아버지는 아신다. 새벽녘에 부는 바람이 시원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그리고 귀뚜라미가 운다.
어느덧 입추도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는 처서도 가까워진다.

바람이 분다.
마당에서 바라보는 동네 뒷산의 밤나무와 소나무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우리 집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들이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인다. 그 속에 숨어있는 참새들의 몸놀림도 왠지 분주해지는 것 같다.
들판의 익어가는 벼들 사이에도 시원한 바람들이 불어와 여기저기 바람길을 만들어 놓는다.
나는 이제 다시 가방을 싸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직감한다.
뜨거웠고 습했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한국에서의 여름은 내게 쉽지가 않다.
간사하게도 건조한 여름을 몇 번 보내본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습하고 무더운 여름을 나기가 퍽 힘이 든다.
외국에서 선풍기도 거의 틀지 않고 생활하던 나는 새벽부터 작렬하는 동쪽 해로 달구워진 부엌에서 수건을 걸어놓고 연신 땀을 닦는다. 내 집에 있었으면 늦잠을 잘 것을, 더워서 밤잠을 설친 나는 들에 나간 엄마를 대신해서 아침을 준비한다. 아이들도 일찍 일어나 모기장을 걷어내고 TV를 볼 준비를 한다. 시골에서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아침메뉴는 늘 비슷하다.
연세 많으신 엄마는 평생의 습관대로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부엌으로 나가신다. 전기밥솥에 밥을 안쳐놓고 보라색의 예쁜 가지를 쪄놓으시고는 밭으로 나가신다. 논 근처에 설치해 놓은 닭장으로 가셔서 모이도 주시고 달걀도 꺼내오신다. 주섬주섬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엄마가 대충 해놓으신 아침을 이어받아 준비한다. 동해에서 난 신선한 생선을 프라이팬에 굽고, 가지를 마저 무치고, 누런 된장을 풀어 찌개를 끓인다. 거기에 여러 야채와 아직도 사각거리는 김장김치와 물김치 등 몇 가지 밑반찬을 꺼내놓으면 한상 가득 건강한 아침상이 마련된다. 시골 5일장이라도 걸리는 날이면 새벽 일찍 바다에서 잡아온 신선한 회가 올려진다. 나는 우리 엄마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그리고 아침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고 점심상을 차리고 또 설거지를 한다.
종일 TV에 방치된 애들을 데리고 저녁식사 전까지 근처 작은 동네의 바다로 전전한다. 오늘은 이 동네 바다로, 내일은 다른 동네 바다로. 유명한 해수욕장에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이 곳의 작고 예쁜 바다에는 사람들이 없다. 우리밖에 없거나 몇몇 동네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거나 파도가 세서 놀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바위틈 속에서 물고기도 잡고, 홍합도 캐고, 더위에 지친 몸도 담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또 저녁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모기장을 친다.


같이 외국에 사는 친구들은 한국에 다녀오면 참 예뻐진다. 피부도 좋아지고 머리도 예쁘게 하고 온다. 옷도 최신 유행에 맞게 잘 선택해서 입고 다닌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렇지가 하다.
습하고, 모기도 많고, 핑은 커녕 한 달이 넘도록 시골의 5일장만 보고 있다. 맛있는 것도 먹지만, 나는 편안하게 우아하게 도시의 잘 차려진 한정식 밥상도 먹어보고 싶었다. 이것저것 맛있는 배달음식도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여기저기 아버지 기사 노릇도 하고, 가끔은 밭에 가서 고추를 따며 밭일도 하고, 집에서는 여러 식구들 밥하고 또 애들하고도 놀아주고.
나의 얼굴은 더운 날씨와 많은 일에 서서히 랗게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빈 채로 들고 왔던 커다란 짐가방들을 꺼내 이년 동안 먹을, 없으면 향수병에 걸릴 것 같은 엄마의 된장, 고추장, 간장, 여러 가지 마른 나물들, 미역 그리고 엄마가 봄부터 시장 봐서 손질하고 말려놓은 간간한 생선들을 우걱우걱 싸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이상하다.
점점 말이 없어진다.



올 때만 해도 엄마, 아버지 만나러 온다고 좋아했었는데.
머나먼 이국에서 와, 이 집 저 집을 헤매다 마침내
차창 너머로 내게 익숙한 고향의 풍경을 다시 보며 마치 아이처럼 설렜었는데.
조금씩 보이는 파도 한 조각에도 내 마음은 부풀어 올랐었는데.
그 마지막에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우리 엄마, 아버지가 더 늘어난 주름과 마른 몸매로 하지만 자연과 더 가까워진 따뜻한 미소로 날 안아주실 걸 생각하며 미리 먼저 눈시울을 적셨었는데...
막상 3~4주 있으면서 일도 많고 몸도 힘들다고 불만만 가득해서 잘해 드리지도 못했는데, 그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떠나는 날 아침, 나는 나만의 이별식을 올렸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엄마, 아버지 집 근처의 들판들을 걸어 다니며 인사를 했다. 엄마, 아버지의 밭에 가서 예쁘게 달린 수박들을 쓰다듬고, 옥수수도 살짝 껍질을 열어보고, 아직 여물지 않은 콩들도 바라봤다. 다시 도로를 건너 맞은편의 우리 논을 찾아가 익어가는 벼들도 보고 닭장의 닭들도 둘러보았다. 이슬을 머금고 있는 파란 달개비꽃과 노란 달맞이꽃 그리고 개망초를 꺾어서 산과 들과 바다가 보이게 사진도 찍어보았다. 마을 어귀의 당나무에도 가보고 다시 집으로 들어서서 뒷마당의 장독대며 호박넝쿨과 화단의 꽃들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옥상에도 올라가서 이미 떠오른 그 날의 해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부엌으로 와서 그날의 아침을 준비했다...

다시 자동차를 타고 시댁으로 가는 길, 백미러로 끝까지 쳐다보다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 아이들이 자랄 때는 하루하루 웃음 짓지만,
내 부모의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갈 때는 몰래 눈물을 짓는다.
이 시간이 흘러 흘러, 마침내 이별해야 할 때는
그동안 흘린 눈물이 위로가 되어줄까?
큰 슬픔을 이겨낼 힘이 되어줄까?

비엔나 공항에 내렸다.
나는 이 곳의 공기를 다시 들이마신다.
나는 또, 이곳에서 나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부모의 인생도 나 또한 어찌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그저 잠깐 머문 나로 인해 나의 아이들로 인해 조금이라도 행복하셨길 바랄 뿐이다.

비엔나 공항을 벗어나서 나의 집으로 가려면 또다시 몇 시간을 자동차로 가야 한다.
국경 근처를 지나가자 바람개비들이 보였다.
마구마구 돌아가는 게 보였다.
그 날 아침, 내가 인사했던 고향의 자연들이, 바람들이 이 곳에까지 따라와서 부는구나, 싶다.
고맙다.
그 바람들이 나의 부모님을 내가 다시 갈 때까지 잘 지켜줄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들녘에 부는 바람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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