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작은 아이는 학교로 데려다주었다.
학교로 들어가는 내 아이는 자연스럽고 멋지다. 그들의 세상은 천진난만하다. 나는 작은 아이를 학교로 보내기 위해 매주 코로나 검사를 받는다.
아침 8시경, 주차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걸음을 재촉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개와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는 여유로운 발걸음이다.
내가 이제는 봄이구나! 하고 새 봄을 느낄 때, 자연의 봄은 어느새 최고의 순간을 향해간다. 겨울과 봄이 공존하기 시작할 때부터, 아직 햇살이 봄의 따스함을 품기 전부터 그들에게는 봄이 시작된다.
공원을 걷다 보면 떠오르는 생각들을 내가 나인 채로 판단하고, 정리할 수가 있다.
이쯤에는 내가 좋아하는 꽃들이, 저쯤에는 아름답고 고귀하게 꽃처럼 만발한 큰 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쯤에는 아주 크고 탐스런 단 3 송이의 목련꽃을 당당히 피워낸 어린 목련나무가 야무지게 뿌리를 박고 있다. 그 나무를 보며 나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새들의 봄 또한 일찍 시작된다.
공원에는 이미 아기새들이 날갯짓을 가벼이 하고 있고, 쫑알쫑알 소리도 잘 낸다. 새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다양한 종들이 어울려 있다. 아름다운 화음이다.
아직 아침이슬이 반짝이는 그때에, 새들의 경쾌한 소리와 날갯짓이 가득 찬 그 공간으로 들어간다.
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그러나 공원에서는 이방인이라도 좋다. 외따로 떨어진 벤치에 자리를 터고 앉아 그들을 본다.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 나는 곧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주인공이지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처럼 편안하다. 그들이 나를 사방에서 포옹해준다. 내 마음도 점차 가볍고 맑아진다.
어느 날부터, 이 공원을 나의 정원이라 부른다.
오가기가 쉽고, 아침의 시간에는 유유자적하게 거닐 수 있다. 나는 따로 정원사들을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그들이 와서 내 정원을 아름답게 가꿔준다. 그럼, 나는 또 주인행세를 하며 오롯이 계절 따라 바뀌는 풍경을 즐긴다.
덩굴들은 거친 가지 하나를 남겨놓고, 겨우내 돌담에 기대서 잠을 잔다. 어느 날, 긴 잠에서 깨어나 새 손톱을 연둣빛으로 물들인다. 여름이 오면 돌담에 꽃밭을 선물한다. 그 해 겨울, 돌담은 여지없이 또다시 어깨를 내어준다.
봄이 오는 시간 어디쯤에서, 눈이 내렸다.
어떤 일로 마음이 힘든 나는, 하얗게 깔린 푹신한 눈 이불 위에 그냥 누웠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하얀 눈이 내려있었다. 눈 위는 오히려 포근하다. 바람도 잠든 그곳에는 겨울에도 한치의 흔들림이 없었던 나뭇가지들이, 봄을 향해 쭉쭉 기지개를 켜고 있는 하늘이 더욱 잘 보였다.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그래도 눈은 금방 녹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찾아간 내가 좋아하는 산속의 언덕에는, 모든 대지가 물을 머금고 촉촉이 질퍽거리고 있었다. 산책하다 아이들도 넘어지고, 나도 미끄러져 옷과 신발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눈이 언 땅을 감싸 안고 말랑말랑하게 주무르고 있었다. 뭐든 원하는 대로 해 보라고 한다.
바야흐로 봄이다.
온 자연이 자신의 모양대로 빚어내는 향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겨우 나는, 밝아진 햇살에 등 떠밀려 눈에 띄는 먼지만 닦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