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다른 학습자들이 만드는 미래
오늘은 내가 코칭하던 학생이 대학 면접을 보는 날이다.
며칠째 아이와 함께 자기소개를 다듬고, 예상 질문을 연습했다. (가상) 면접관의 눈을 바라보며 아이는 "저는 중학교까지 대안학교를 다녔습니다. 일반 고등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국영수를 배우고 시험을 봤습니다. 성적은 처참했지만, 버텼습니다. 친구가 없어 혼자 점심을 먹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 속도로 성적을 올리고, 친구가 생겼습니다"라고 말하는 눈빛에 힘이 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이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평범한 아이들도 견디기 힘든 시간을, 이 아이는 세상이 붙인 ‘느림’이라는 편견 속에서 버텨냈다.
느린 학습자란 경계선 지능 학습자(IQ 71~84, 전체 인구의 약 13%)와 학습 장애 학습자를 말한다. 이들은 여러 단계의 지시 사항을 한 번에 기억하고 처리하기 어렵고, 구체적 예시는 이해하지만 원리나 개념으로 확장하기 힘들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나, 한 상황에서 배운 것을 다른 상황에 적용하기 어렵다. 이런 어려움이 한두 가지 겹쳐져 나타난다.
하지만 위의 학생에서 본 것처럼 이를 '능력 없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일 년 동안 낯선 환경에서 친구 한 명도 없이 홀로 밥을 먹으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수업을 8시간씩 듣는다면 당신은 버틸 수 있는가? 아이는 강점이 다른 아이들과 다를 뿐이다. 아이의 강점을 이해하고 그 속도에 맞춰 교육이 이루어질 때, 아이는 자신만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느린 학습자'라고 부르는 개념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아마도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닮아 있을 것이다. 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가 정해진 속도로 돌아가듯, 학교는 모든 학생을 똑같은 속도로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정해진 교과 과정을 정해진 시간에 배우고, 주어진 평가 기준에 맞춰 성적을 내는 것이 당연했다. 이 정해진 속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느림'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미래 사회는 더 이상 똑같은 부품을 찍어내는 공장형 사회가 아니다. 개인의 고유한 개성과 능력이 존중받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느림'은 결핍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빠름을 능력으로, 효율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느린 학습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한 번 습관이 형성되면 꾸준히 밀고 가는 힘이 있고, 명확한 절차가 있는 일은 정확하게 수행한다. 경험을 통해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으며, 손이 빠른 경우도 있다.
나와 함께하는 학생은 배울 때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기억력이 좋아 배운 내용을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전에 함께하던 친구는 운동신경이 매우 발달해 있었고, 동작이 민첩해서 지금은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각자 자기 삶의 속도에 맞춰 사는 것은 당연하다. 배움의 속도는 존재의 리듬이며, 이것을 존중하는 것은 학생의 존엄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느린 학습자는 '속도가 다른 학습자'라고 볼 수 있다.
'속도가 다른 학습자'라는 개념은 단순한 언어의 교체가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 한 학생의 가치를 성적으로만 재단하지 않고, 그가 가진 잠재력과 삶의 역량을 함께 살피는 것이다.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과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이러한 관점을 '역량(Capabilities)'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했다. 누스바움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열 가지 핵심 역량—생명, 신체적 건강, 감정, 상상과 사고, 실천 이성, 관계 맺기, 환경과의 조화, 놀이, 자기 통제, 정치적 참여—을 제시하며, 사회는 개인이 이 역량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철학을 교육에 적용한다면, 속도의 문제는 사라진다. 학습은 정해진 시간 안에 목표를 달성하는 경쟁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리듬 안에서 자유와 존엄을 실현하는 성장의 과정이 된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빠름'이 아니라 '자립'이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배움의 의미를 완성하는 자립 말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미 해외의 혁신적인 교육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다. 이들은 '느림'을 교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개인의 특성으로 본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랜드마크 학교(Landmark School)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난독증(Dyslexia)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설립된 이 학교는 단순히 읽기 능력을 보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학생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학습 전략을 찾고, 자신의 학습 방식을 옹호(self-advocacy)하는 법을 배운다. '나는 이렇게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이 학교가 길러내는 핵심 역량이다.
또 다른 사례인 러닝 링크(Learning Links, 호주)는 '속도가 다른 학습자'를 포용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이곳은 학습이 느린 학생을 결핍으로 보지 않는다. 느린 학습을 교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학습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리듬으로 바라보며, 아이들이 각자의 속도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사, 교육심리사, 언어치료사, 학부모가 함께 팀을 이루어 아이의 속도에 맞춘 맞춤형 학습 계획을 세운다. 배움의 속도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기준을 강요하는 대신, 각자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존중하며 '느린 학습'이 아니라 '독특한 학습'으로 바라본다.
이처럼 혁신적인 교육 시스템들은 표준적인 기준에 맞춰 아이를 바라보기보다는 아이에 맞춰 학습 구조를 변경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그렇다면 '속도가 다른 학습자'들에게 맞는 학습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인간과 AI의 협업을 통한 개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고 본다. AI 시대의 가장 큰 가능성은 '개별화'다. 산업화 시대에는 한 명의 교사가 30명을 똑같은 속도로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이제 AI 튜터는 각 학생의 속도와 방식에 맞춰 학습을 조정할 수 있다.
AI 튜터는 학생이 100번 물어도 짜증 내지 않고, 학생이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다. 아이 수준에 따라 복잡한 개념을 작은 단위로 쪼개고, 어떤 방식으로 학습할 때 가장 효과적인지 데이터로 파악할 수 있다. 아이들마다의 속도와 성장에 맞는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수업을 운영하는 데, AI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AI 튜터는 학생마다 다른 학습 속도와 성향을 분석해 최적의 학습 경로를 제시하고, 교사는 지식 전달자에서 벗어나 학생의 학습 단계를 섬세하게 조정하며 사회적·정서적 발달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맡는다. 기술은 개인화된 배움을 가능하게 하고, 교사는 그 배움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이제 교육의 목표는 모두가 똑같은 결승점에 들어오도록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로 자립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배움의 목표가 '똑같은 성취'에서 '각자의 자립'으로 바뀔 때, 느린 학습자는 더 이상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 단지 다른 방식으로, 다른 속도로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들의 다름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 교육의 방향이다.
'느린 학습자'는 없다. '속도가 다른 학습자'만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누스바움, 마사(2015). 『역량의 창조: 인간다운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한상연 옮김, 돌베개.
센, 아마르티아(2013). 『자유로서의 발전』. 김원기 옮김, 갈라파고스.
Landmark School
https://www.landmarkschool.org/our-school/about-landmark-school
Learning Links
https://www.learninglinks.org.au
*제가 생각하는 바를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원고를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