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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애 Nov 01. 2020

지금 여기
당신과 나

[작가의 작가] 02. 몸 : 내 몸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작가마다 저마다의 거장이 있다. 함께 팔짱끼고 한평생 주유하는 짝궁 말이다. 대중 철학자 강신주는 스피노자 전문가고, 팟캐스트 진행자 채사장은 니체에 조예가 깊다.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은 강정인 교수의 번역본이 단연 최고고, 몽테뉴의 수상록에 관해서는 작가 김운하가 깊이 있는 화두를 던져준다. 그 중에서도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연암 박지원에 이어서 고암 허준, 윤선도, 임꺽정 등 가장 한국적인 사상가, 예술가와 경계없이 당대와 소통한다. 

 싱가포르 이주 후에는 운동을 통해 ‘정직한 결과’를 맛보게 되면서 나는 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프지 말아야한다는 강박과 함께 땀을 흘릴 때 만큼은 만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강한 나를 만나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예뻐지기를 욕망하는 여성들이 왜 ‘자기 혐오’에 쉽게 빠지는 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다. 필립로스(‘작가의 작가’ 1-죽음 편 참고)도 ‘에브리맨’에서 주인공이 자신만의 철학적 틈새를 직관적으로 몸으로부터 발견했다고 밝혔다.

 고미숙의 동의보감 삼종세트 중 하나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는 의역학평론서다. 동양철학 자체가 서양철학보다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돼 온데다 동양에서 특히 성리학의 종주국인 한국에서, 몸은 도와 예 앞에서는 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양방 기준에서 한방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입증되지 않는 정(精:생명의 질료), 기(氣:정을 움직이는 에너지), 신(神:고도의 정신 작용) 등 병리는 신묘하게 비춰진다. 허준의 동의보감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지만, 동의보감을 일상의 지혜로 활용하는 경우는 드문 것도 동양의학은 음양오행을 근간으로하는 도를 터득한 후에야 펼칠 수 있는 고원한 것으로 보는 편견 때문이다.

 허준이 <동의보감>을 집필할 당시, 당쟁의 피바람 속에서 몸, 감정, 서사가 비집고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지금은, 태양의 리듬을 잃어버린 도시의 삶 속에서 몸은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여지는 나’에 집착하다보니 온전한 ‘나’를 만날 기회조차 사라진다. 고미숙은 동의보감 삼종세트 중 세 번째 책인 ‘몸과 인문학’을 통해 ‘성형천국, 입시지옥’ 세태를 정확하게 진단한다. 사실, 너도 나도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프다. 

동의보감이 명저인 까닭은 몸을 보는 방식에 대한 독창성 때문이다. 생명과 의학이라는 보편지를 새롭게 배열하고, 몸을 치유하는 주체를 의사가 아니라 환자로 보는 통찰력에서 선대 의서들과 분명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선조는 허준이 58세 때 동의보감 편찬을 명한다. 고암의 의사로서 평범한 성공 스토리가 비범한 여정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선조의 주문은 딱 세 가지였다. 국내 형편에 맞는 체계를 세울 것, 약보다는 백성의 섭생을 먼저 살필 것, 약재 사용을 쉽게 할 것. 허준은 선조의 뜻에 따라 장장 100페이지가 넘는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편 순서로 5편 106문 목차를 분류하고 25권의 방대한 의서를 남긴다. ‘단방(單方)’을 각 장마다 삽입해 콩나물, 도라지, 파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 하나로 약효는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환자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무엇보다 ‘동의보감’의 백미는 책의 시작과 허준의 노년에 있다. 백발이 성성한 어의가 임금 승하 후, 유배지에서 선대 임금의 유지를 받들어 끝까지 책을 썼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의 나이 71세였다.

 깨달음의 문턱을 낮추고 백성들의 몸에 내재된 우주를 발견하도록, 한 사람의 몸을 한 국가의 통치와 같은 것으로 유추하는 맥락 속에서 나는 몸의 자유를 발견했다. 동의보감을 읽어내는 고미숙의 동의보감은 자기배려로서의 앎으로써 곧 수양이요, 잘 살기 위한 양생의 기술이요, 도의 경지를 추구하는 비전으로 읽힌다. 동의보감을 읽으면서 허준과 고미숙을 동시에 생각한다. 그녀는 “거인의 무등을 타고 광대무변한 천지를 굽어본 셈이랄까”라며 동의보감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일축한다. 독자는 거인의 무등을 탄 거장 고미숙 어깨 위에 앉아서 자신이 몸의 연구자요, 치유자요, 곧 우주라는 깨달음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고미숙의 <동의보감>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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