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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응의 축제 Oct 27. 2024

애도 교향곡(Mourning Symphony) 제1악장

아다지오(adagio), 천천히 매우 느리게

이 책의 내용은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을 재구성하고 편집 및 윤문하여 발간하는 것임을 먼저 밝힙니다.

논문 제목은 「청소년기 모(母) 사별을 경험한 성인 여성의 애도 및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자문화기술지」입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상실(loss)하는 경험은 한 개인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 상실은 비단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애인이었던 사람과 헤어지게 되는 것, 그리고 보호해줄 국가를 잃게 되는 것 등도 커다란 범주 안에서 '상실'로 있다. 이러한 상실의 상황은 한 개인에게 고통스러운 감정을 유발시키며, 마치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울리는 것과 같은 비상체계에 돌입하게 만든다. 


바로 18살의 내가 그랬다. 고등학교 2학년 6월,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한 나는 계속해서 비상등이 꺼지지 않고 사이렌이 울리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갔다. 나를 낳아준 이를 상실했다는 슬픔을 마주할 새도 없이 그저 주어진 생활 속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를 가고, 다시 잠을 자는 생활만을 반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 혹은 정체성의 확립 시기라고도 부르며, 또래친구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쌓거나, 재미있는 일상 혹은 일탈도 해보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달달한 연애도 해보는 시간을 보낸다고들 하지만, 나의 청소년기는 그야말로 흑백사진과 같은 느낌이었다. 특별할 것 없이 숨죽이며, 말그대로 '그냥 살았다.' 감정의 기복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무채색으로 보냈다. 청소년기를 떠올리면, 딱히 기억에 남는 즐거운 일이 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이러한 나의 시간이 바로 '애도 지연'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꼬박 10년이 지난 때였다. 여전히 난 어머니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고, 죄책감의 거대한 그늘 아래에서 스스로를 구박하며 살고 있었다. 일기에 적은 "어머니의 생기를 갉아 먹으며 기생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늘 내 발목을 잡았다. 이런 나의 심리적 주소를 마주하고, 언어로 발화하며,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정과 부인, 회피가 삶에 시시각각 찾아오고 반복되었다. 직면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계속해서 덮어놓고, 다시 마주하기를 반복했다. 

일기, 2013.05.06.


그렇게 석사 5년의 시간 동안, 나를 천천히 매우 느리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머니를 사별하고 10년의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18년의 시간 안에 있는 어린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이다. 이 책은 돌아본 그 시간들을 천천히 풀어내고 살펴보는 과정이 될 것이다. 때로는 보는 시선에 따라 너무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전투적으로 견디고 버티고, 치열하게 살아온 한 사람의 '생존일기'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느린 템포로 함께해주시기를 청한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살아가며, 혹여 누군가를 상실하고 깊은 침잠의 시기에 빠졌을 때, 나의 이 고백들을 떠올리며 조금이나마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 발을 더 디딜 수 있는 힘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혹은 지금 그 침잠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당신이라면, 천천히 이 글의 속도와 호흡을 같이 하며 다시금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자력을 회복할 수 있게되기를 응원한다. 






+) 학위논문을 편집하고 재구성한 글이기에 다소 딱딱하고 부드럽지 않은 문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계속 연재를 진행해 나가며, 중간중간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와 윤색하고 수정할 예정입니다. 

     또한 참고자료의 출처와 각주 기록의 경우, 아직 브런치에 각주 기능이 없기 때문에, 

     상단에 표기한 '일기, 2013.05.06.'과 같이 인용구의 설정을 빌려 기록할 예정입니다.

     논문에는 담지 못했던 소소하고 사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자료들도 더 추가해서 함께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연재'가 '완결'이 될 때까지 이 [애도 교향곡]과 함께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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