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면 무슨 음식이 떠오르나.
아니. 그전에 영국에 무슨 ‘음식’이라고 할 만한게 있냐는 식의 빈정거림이 떠오른다. 영국 음식에 억하심정이 있다거나 비하해서가 아니라 워낙 영국음식을 대상으로 한 농담이나 에피소드가 많아서다. 심지어 영국의 셀럽들 조차 자국음식으로 자학개그를 일삼는다.
몇년전 국제뉴스로 보도됐던 내용 하나는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뒷담화다. 러시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시라크 전 대통령은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처럼 요리가 형편없는 나라는 신뢰할 수 없다”. 여기서 끝난게 아니다. “핀란드 다음으로 음식이 가장 맛없는 나라다. 영국이 유럽 농업을 위해 한 일이라곤 ‘광우병’ 뿐이다. 이 사건은 2005년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농업보조금, 이라크전쟁 등의 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이던 냉각기였던터라 여러모로 양국간 불편한 감정을 더욱 자극하는 사건이 됐다.
윈스턴 처칠이 했던 자학개그도 유명하다. “대영제국은 전세계에 여러가지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있다. 단지 조리 전 상태로 말이다.”
이런 몇몇 사례만 봐도 영국음식이 맛없다는 것은 세계인들에게 디폴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도대체 왜 맛이 없을까. 그것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했던 세계 최강국가, 돈도 권력도 가질만큼 가져본 이 나라가 왜 음식에서는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지금껏 만나봤던 영국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뾰족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원래 우린 이렇게 먹었는데” 라거나, “기후가 별로 안좋아서 다양한 작물이 자라지 않기 때문”이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영국이라고 하면 다들 떠올리는 대표음식이 피시앤 칩스다. 감자랑 생선 튀긴게 그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라기엔 민망할 정도 아닌가.
지금껏 찾은 답 중에 가장 수긍이 되는 것은 예전에 봤던 책 <맛, 그 지적유혹>에서 얻은 것이다. 저자가 영국 음식이 왜 맛없는지를 인용한 대목이 있는데 꽤 설득력이 있어 요약해 본다.
작가 콜린 스펜서는 영국 음식의 역사적 변천에 대해 쓴 그의 책에서 영국 음식이 몰락한 이유를 몇가지 들었다
1. 농업혁명으로 농민의 삶이 피폐해지면서 국가 음식의 밑거름이 되는 농가 음식이 쇠락한 것.
2. 프랑스 문화를 우대하고 영국문화를 경시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풍조.
당시 요리사들이 이름을 얻기 위해 영국 전통음식보다 프랑스 음식에 집중. 또 금욕적 도덕성이 강한 분위기 때문에 즐거움과 쾌락을 표현하는 것을 저속한 것으로 여기고 금기시.
3. 중산층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정 요리를 담당하는 일손 부족으로 전반적인 음식 수준 하락.
즉 가정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가정부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손이 부족해지자 요리실력 없는 사람들이 부엌살림 도맡게 되면서 음식이 하향 평준화 됐다는 것.
결국 고급요리 발전에 기여하던 궁중문화가 사라지고 자본가 계층이 음식문화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지만 이들에겐 문화적 자본이 풍부하지 않아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고나서야 영국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좀 해소된 것 같다.
아무튼 그렇다면 영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영국을 대표하는 요리라고 하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카레’라고 하는 커리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2001년 영국 외무부 장관 로빈 쿡은 ‘치킨 티카 마살라’가 진정한 영국의 국민음식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단지 인기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외부의 영향을 흡수하여 영국에 맞게 변화시켰는지를 잘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커리의 지구사 59~60쪽)
이 요리는 우리가 익히 상상할 수 있는 치킨 카레 라이스다. 카레를 사용한 요리이긴 하나 인도 전통 방식이 아닌 영국에서 카레를 이용해 만들어진 요리다. 영국 전역 어디에서나 쉽게 먹을 수 있고, 사랑받고 있는 요리라 국민 요리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영국 출신 작가 빌 프라이스는 저서 <푸드 오디세이>에서 “이제는 카레가 거의 피시앤드칩스 정도의 국민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썼다.
커리가 영국의 대표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익히 짐작하다시피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결과다. 갖은 향신료와 풍부한 농산물로 맛을 내는 다양한 인도의 요리는 무채색 영국 요리문화에 많은 충격과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식민지 기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많은 인도인들이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인도의 음식문화, 특히 커리는 영국에 전해지면서 영국 스타일로 뿌리내렸다. 영국 상류층을 비롯해 도시 중산층, 서민층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맛도 맛이지만 먹다 남은 음식 재료들을 재활용하기 좋다는 경제성도 있었다. 동시에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던 시대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향수를 반영한다는 분석도 있는데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재미있게도 영국 음식은 맛없는 음식의 대명사지만 런던은 전세계 미식의 중심지로 평가받는다. 음식부심에 있어서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프랑스와 대조적으로 자학개그를 즐기는 이들인지라 오히려 타국의 음식 문화에 대해 여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음식 문화가 모여들고 세계 미식 트렌드를 주도하는 위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 언론인이자 음식 작가인 콜린 테일러 센이 쓴 <커리의 지구사>에 소개된, 런던에 있는 유명 인도 레스토랑을 정리해 본다. 영국에 가게 되면 이중 한 곳은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
*비라스와미. 런던 리젠트가 99번지. 1927년에 생긴, 런던에서 가장 훌륭한 인도 식당 중 하나. 에드워드8세, 스웨덴의 구스타프 왕, 찰리 채플린 등이 이 식당을 찾았다고 한다. 현재 이곳의 소유주는 인도 출신의 식당 경영인으로 유명한 판자비 자매. 이들은 런던의 고급 인도 식당 여러곳을 운영중이라고 한다.
*판자비 자매 소유인 런던의 고급 인도 식당들로는 봄베이브라세리, 처트니 메리
*미슐랭 별을 받은 런던의 인도 식당들 = 아마야Amaya, 베나레스Benares, 퀼론Quilon, 라소이 비닛 바티아Rasoi vineet Bhatia, 타마린드Tamarind
*또 유명한 고급 식당들=자이키아Zaikia, 초르 바자르Chor bazaar, 시나몬클럽Cinamon club
이 내용을 정리하면서 생각나는 두 과제는 다음번에 정리해보겠다.
전세계를 지배하는 글로벌 음식 커리와 그 영향력 그리고 영국을 압도하는 맛없는 음식 핀란드 요리에 대해서다.
그러고 보니 핀란드는 무민이 마신 따뜻한 쥬스, 그리고 링곤잼 정도 밖에 생각나는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