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즐겨보는 보는 프로 중 하나가 [김창옥의 포프리 쇼]입니다. 이 프로에서 김창옥 교수가 설명했던 ‘살아가며 겪는 세 가지 경우의 스트레스’에 대한 내용을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세 가지 있는데, 첫째는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때입니다.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등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많은데 참으로 많은데, 어떠한 이유로든 좌절되거나 지연될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둘째는 원하지 않는 것을 반복해서 해야 할 때입니다. 원하는 일이 절대 아닌데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니고, 반복된 가사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경우들이 해당될 것입니다. 이 경우는 첫 번째의 경우보다 스트레스 강도가 좀 더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원하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입니다. 나이가 30을 넘고, 40을 넘도록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모른다는 것은 내가 아직도 ‘질풍노도의 시기’인가 생각될 정도로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신기하게도 저는 육아휴직을 통해 세 가지 경우의 스트레스가 해소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소개된 세 가지 경우에 최소 1가지 이상씩은 해소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원하는 것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자고 있는 아이들 바라보며 느긋하게 침대에서 뒹굴어 보았습니다. 아침밥도 손수 만들어서 고기반찬에 국까지 먹이고 보냈습니다. 등원 차량에 배웅 나가 매일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돌아오면 함께 자전거 타고 산책 나가 동네 한 바퀴씩 돌고 왔습니다. 학교 모임에도 모두 1년 내내 모두 참석하고 학교운영회, 도서도우미, 급식모니터링까지 실컷 경험해 보았습니다. 동네 엄마들과 브런치도 해 보고 못 만나던 친구들도 낮시간에 틈틈이 보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읽고 싶은 책도 새벽까지 읽었지요. 비록 너무 소소해서 ‘겨우?’라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워킹맘에게는 다 꿈에 그리던 일들이었습니다.
둘째, 원하지 않는 것을 반복해서 하지 않았습니다. 새벽 알람 소리에 침대 속에서 뒤척이며 ‘좀 더 잘까 말까’란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알람 설정도 없앴답니다. 주중에 주말이 며칠 남았나 날짜를 뽑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색한 사람들과 분위기 맞추느라 애써 떠들어대거나 힘들게 대화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요.
셋째, 제가 원하는 것들을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운동을 체험해 보며 아이스하키와 스피닝처럼 너무 과격한 운동은 나와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운동은 요가와 골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가끔은 회사 업무 생각이 나는데, ‘복귀하면 그건 더 잘해봐야지’, ‘그 업무는 내가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해야지’란 생각들이 스멀스멀 들기도 했습니다. 또 좋은 책을 꾸준히 읽고 나만의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육아휴직을 통해 알게 된 ‘내가 원하는 것’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육아휴직을 한다고 해서 모든 스트레스로부터 해소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스트레스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 듯이, 일정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나면 또 새로운 스트레스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수입이 반토막 나면서 밀려오는 경제적인 스트레스, 하루 종일 아이들을 챙기고 가사까지 도맡아야 한다는 육아&살림 스트레스는 육아휴직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또는 처한 환경에 따라 때로는 육아휴직을 통해 해소되는 스트레스보다 새로 얻게 되는 스트레스가 더 큰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다행히도 해소되는 스트레스가 더 큰 편이었습니다.
한편 육아휴직과 연관되지는 않았지만, 뜻밖에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도 있습니다. 첫 육아휴직 때는 아빠의 암 선고와 갑작스러운 이별이 그랬고, 두 번째 휴직 때는 아이들의 큰 병치레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런 ‘육아휴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스트레스’는 제가 육아휴직을 했다고 해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회사를 다니고 있어도 내게 찾아왔을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육아휴직 기간에 찾아온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빠와의 이별에 대해서는 차마 ‘다행’이란 단어를 붙일 수 없겠지요. 하지만 제가 휴직을 해서 매번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다닐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더 곁에서 오래 뵐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와 함께 병원 가던 길과 그때 아빠와 주고받은 대화들이 선하게 기억 납니다. 아이들이 입원을 하거나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못 가고 집에 누워있어도 업무 걱정하며 휴가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지 않고 푹 간호해 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요 녀석들 앞으로 아플 거 지금 다 아파라’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약장사처럼 ‘육아휴직을 통해 스트레스가 없어집니다.’, ‘확 줄어듭니다’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실제로 제가 그런 경험을 못했으니. 하지만 10여 년간 회사를 다니며 지녀온 스트레스의 패러다임을 바꿔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고 신선하며 행복한 일입니다.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원하는 것을 해보고, 원하지 않는 것을 안 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 패러다임의 변화는 제가 지속적으로 같은 일을 하든지 새로운 일을 찾든지 개인의 삶에 크고 작은 모멘텀을 줄 것입니다. 제 육아휴직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어떠한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새로운 스트레스가 찾아올 테지만 그것 역시 좋은 경험이라 생각됩니다. 평생 몇 년 경험해 볼 수 없는 스트레스이니 말입니다. 설령 복귀 후 다시 똑같은 스트레스로 원상 복귀된다 하더라도 한번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그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사진은 산책을 다녀오며 동네 꽃집에 들렀을 때 찍은 것입니다. 평일 대낮에 아이들과 함께 꽃집이라니, 제게 이런 일상도 큰 선물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