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저에게 "육아휴직을 사용한 것을 후회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전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것은 후회가 없어요. 다만, 육아휴직을 사용한 방법에 대해서는 후회가 남아요."라고 말입니다.
많은 워킹맘, 워킹 데디가 꿈꾸는 육아휴직이 그럴 테지만 저 역시 아이와의 애착 관계 형성, 아이의 초등학교 적응 도움, 자기 계발, 건강관리 등의 시간들을 보내며 후회 없는, 아니 어쩌면 꽤 만족스러운 육아휴직을 보냈습니다. 1년이 너무 짧고 아쉬울 정도로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워킹맘였던 제가 온전히 가사와 육아만 하려니 좌충우돌 힘든 시기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는 것이지요.) 다음 장에서도 계속 이야기하겠지만, 육아휴직으로 얻게 되는 소중한 플러스 효과는 참으로 무궁무진합니다.
오히려 이번 장에서는 업무 복귀 후 피해, 낮은 평가, 진급 누락 등 육아휴직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마이너스 영향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나눠볼 텐데, 그 이유는 이 부분이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염려이자 걸림돌이기 때문입니다. 걸림돌을 시원하게 치워드리지는 못해도 그 걸림돌이 어떻게 생긴 것이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살짝은 피해 가는 방법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복직 후 회사는 '그간 달콤한 시간을 가졌으니 이제는 혹독한 맛을 보아라'라고 외치듯 제게 힘든 시간들을 주었습니다. 복직 후 팀장님이 제게 준 메인 업무는 저희 팀 고유의 업무가 아닌 그 해에만 임시로 시행하게 된 프로젝트였습니다. [국가품질대상]이란 프로젝트로 전사 프로세스 및 실적들을 모두 집계, 정리, 보고하여 해당 기관에 심사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중요한 심사이지만 경영전략팀 팀원의 입장으로서는 그다지 업무 연장선이 없는 일이었기에 대부분 꺼려했던 업무였고, 마침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온 복직자에게 그 업무가 주어졌습니다. 일의 좋고 나쁨을 가릴 틈도 없이 저는 공백 기간을 만회하려고 야근을 반복하며 열심히 일했고 결국 그 해에 국가품질대상을 따냈습니다.
업적평가 계획에 따르면 해당 심사에서 대상을 받으면 제 고가는 최고 등급(S)을 받도록 되어 있었으나, 연말 평가 시즌에 팀장님은 회의록을 하루 늦게 보냈다는 귀책사유를 대며 제 고가를 낮게 조정하였습니다. 중요 보고서는 모두 기한에 맞춰서 따박따박 제출하였는데, 회의록이 늦어졌다면 분명 사유를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을 터인데, 기억도 나지 않는 회의록 하루 늦은 사유로 연말 평가가 반토막 나버리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딱 든 생각은 '내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 와는 상관없이 복직 후 내가 받는 고가가 정해져 있었구나.'라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쳐도 복직자의 고가는 B를 넘지 못했습니다. (저희 회사에는 B위로 A와 S가 있고 보통 S를 받아야 승진이 가능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육아휴직을 2012년에 절반, 2013년에 절반씩 두 해에 걸쳐 1년을 쓰다 보니 2년 치 고가가 나빠졌고, 2년 치 고가는 그 후로 4년간 제 평가에 쫒았다니며 승진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다음 해에 평가를 아무리 좋게 받아도 4년 평균 고가를 점수화하기 때문에 여전히 피해를 보게 되더군요. 육아휴직 전에는 우수사원에다가 가장 나이 어린 과장이었는데, 그렇게 4년이 흐르고 보니 아래 있던 대리들이 모두 같은 직급으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복직 후 5년째 되던 해, 과거의 제 기록이 사라진 그 시점에서 하필 차/부장이 너무 많아 승진 인원을 줄인다며 회사에서는 승진의 문턱을 더욱 높였습니다. 이후 둘째 임신과 출산휴가가 겹쳐버리며 '차장 승진'이라는 기회는 영영 날아가 버렸습니다.
10년째 과장 직함을 달고 회사를 다니는 지금, 저는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첫째, 겸손입니다. 제가 꽤나 잘난 줄 알고 회사를 다니던 시절, 전 만년 과장인 누군가를 바라보며 좀 한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노력해서 승진을 안 하지? 영어점수가 부족하면 영어공부를 하면 되고, 업적 고가가 나쁘면 일을 열심히 잘하면 되잖아? 이렇게 말이지요. 그런데 제가 그 위치가 되고 보니,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상황이 올 수 있구나'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함부로 한 직급에 오래 머물러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지요. 오히려 '저분도 어떤 사정이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약간의 겸손함을 배웠습니다.
둘째, 셋째 깨달음은 육아휴직 사용 방법 혹은 대처에 대한 부분입니다.
앞에서 육아휴직 자체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육아휴직을 사용한 방법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고 말씀드렸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둘째는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시기입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각자 본인 회사의 고가 시즌을 고려하여 육아휴직 기간을 잡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 회사의 경우 1월에서 12월의 기간이 고가 시즌 한텀이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쓴다면, 1월부터 12월에 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행여 고가를 나쁘게 받더라도 1년 치만 손해를 보게 되지 저처럼 2년 치 고가를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6개월 이상 휴직기간이 되면 평가점수를 아예 받지 않아 공백으로 처리가 되는데, 6개월 미만인 년도에는 평가를 하도록 되어 있어 시기를 잘못 맞추면 1년에서 2년 치 고가가 모두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 안 하고자 두 번째 육아휴직은 딱 1월부터 12월에 맞춰서 사용했답니다.
셋째는 육아휴직자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과 처우에 대한 저의 대응입니다. 저는 육아휴직자가 죄인이라도 된냥 복직 후 팀에서 모두가 꺼리는 일을 넙죽 받았고, 팀장님이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제 인사고과를 매겼을 때에도 공식적인 항의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채 그냥 낮은 고가를 받았습니다. 육아휴직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암묵적인 약속인 양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렇게 주고받았는데, 바로 그 점이 문제였습니다. 주는 사람이 '육아휴직자는 힘든 일, 낮은 고가를 받아야 돼!'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받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앞으로 저를 계속 쫓아다닐 제 업무 히스토리이고 제 평가 결과이니까요. 제가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새로 받는 업무에 대해서 기존 업무와 너무 상이한 경우 팀장님에게 기존 업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달라고 요구하거나 새로운 업무를 하는 대신 잘 마무리한 경우 좋은 평가를 달라고 미리 협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도 터무니없는 고가를 받은 경우, 제 계획서에 적힌 내용을 비교하며 응당 제가 받아야 하는 고과를 요구했을 것입니다.
'2020 저출산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가족 형성기 밀레니얼들이 경험하는 갈등 양상'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남녀 직원들도 "출산은 '축복'이니 회사가 제공하는 '워라밸' 제도를 마음껏 활용해 일·가족 양립의 기쁨을 누리라"는 신호와 "승진을 포기한 게 아니라면 눈치 없이 제도를 마음껏 써서는 안 된다"는 모순된 신호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1]
'이제는 남자들도 육아휴직을 가는 시대'라고 하면서 육아휴직에 대해 아량을 베풀듯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뒤로는 '대신 고가와 승진은 알아서 까는 거야'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많은 국내 기업들의 문화가 아직은 육아휴직에 대해서 이렇게 이중적인 면을 담고 있기에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분들께 육아휴직에 대한 시기를 조절하는 다소 소극적인 방식으로 마이너스 부분을 만회할 방법을 제안드립니다. 그리고 나아가 좀 더 용기를 가진 분들은 잘못된 시선과 처우에 대해 맞서 요구하라는 말씀드립니다.
과연 플러스가 있었으니 마이너스도 당연히 있는 것이 맞을까요?
플러스 플러스 일 수는 없는 걸까요?
복직을 하고도 일을 잘했다면 좋은 고과를 받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첫째 아이를 낳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 저는 다시 일에 매진하며 뒤쳐진 승진의 길을 향해갑니다. 승진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최소한 팀장의 자리로는 올라가야 제 팀에서 누군가 육아휴직 복직 후 일을 잘했을 때 공정하게 S를 딱 줄 수 있을 테니까요.
[1] 출처 2020.10.06 , 매일경제, "육아지원 팔 걷은 기업들… 자녀 어릴 땐 재택근무, 수능前 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