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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치 Mar 30. 2024

당신은 누구를 희생시킬텐가?

얼어붙은 이곳에 발전기만이 우뚝 솟아서 <프로스트 펑크>

옛날 같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 한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됐다. 이런 시대를 개인주의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이기주의라고 해야 할지는 판단이 서질 않는다. 


<프로스트 펑크> 게임은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 초에 인류에게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인류는 살아남아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 무리에서 벗어난 개인으로 살아가기에 인간은 너무나 약하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빙하기를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밧줄인 발전기를 중심으로 도시를 이룬다. 플레이어는 도시를 운영하는 누군가가 되어서 게임을 진행한다. 


도시를 운영하는 누군가가 된다는 건 <심시티> 게임 이후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대단한 권력자가 되었을 때 만들고픈 이상향을 꿈꾸는데, 이 도시 건설(혹은 운영) 장르는 이런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프로스트 펑크가 다양한 도시 건설 게임 속에서 주목받는 점은 뛰어난 재미라든가 사실적인 도시 운영 묘사에 있지 않다. 이 게임은 법령과 결정에 대한 영향력이 꽤나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도시 외곽의 일터가 춥고 위험하더라도 시민들은 그 일을 따라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높은 확률로 동상 환자가 될 수 있다. 법령 제정을 통해 아동에게도 노동을 강요할 수 있다. 도시민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서 매춘과 격투 때로는 코카인과 같은 마약도 서슴없이 펼칠 수 있다. 

다만 이런 선택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게임 속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이 모든 행동에 대한 대가는 여러 가지로 돌아온다. 맨손 결투가 벌어진다면 누군가는 다치게 된다. 다친 이들이 많아지면 의무실이 필요하다. 의무실에 가있는 사람이 많다면 일할 사람은 적어진다. 줄어든 인원으로 일을 하는 통에 효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때로는 누군가 사망하기도 한다. 시민들은 아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이는 도시 운영에 대한 반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권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지나치게 큰 반발을 사게 되면 플레이어 역시도 도시에서 쫓겨난다. 도시에서 쫓겨난다는 말은 이 시기에는 사실 죽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빙하기 속 개인은 약할 수밖에 없다. 


이제 곧 총선이 다가온다. 이 게임도 이제 두 번째 버전이 나온다고 한다. 이 게임의 특징이었던 빙하기 속 도시 건설이라는 배경은 그대로다. 더 극적으로 바뀐 모습도 있다. 이제는 법령을 위원회에서 제정해야 한다. 트레일러만 보자면 위원회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법령을 제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희생만을 강요할 수 없는 시스템이 되었다. 


프로스트펑크 2 게임플레이 트레일

나는 도시인가? 도시를 위해서 나는 시민들에게 어떤 희생을 강요했는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 게임을 하다 보면 시민에게 강요하는 희생에 무덤덤해지곤 한다. 하지만 게임이 끝나고 생각해보면 섬뜩하다. 이건 과연 게임 속에서만 해당할까? 내가 소수로 몰린다면, 희생을 강요당한다면 어떻게 반발할 수 있을까? 


이제 곧 총선이다. 미국은 대선이 있다고 한다. 어찌본다면 그들은 대리인의 자격으로 국민들에게 어떤 희생을 요구할 지 모른다. 어떤 희생을 들이밀건가. 그 희생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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