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라고 믿었던 그때의 나

- 그리고 나는 서윤이다

by SH

식탁 위에

아직 식지 않은 커피가 있었다.


머그잔 벽에는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는 그 잔을

손바닥으로 가만히 감쌌다.


온기가 손끝을 지나

조금 더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그 온기가

마치 나를

조용히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식탁 위로 기울어진 빛이

노트 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나는

펜을 들었다.


숨을 아주 깊게 들이마셨다.

숨이 몸 안에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갔다.


나는 종이에

가장 먼저

내 이름을 적었다.


서윤.


그 두 글자가

잉크로 스며드는 모습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오래 바라보았다.


너무 오래,

나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살아왔다.


아무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나조차

잊고 있었다.


끝이라고 믿었던

그때의 나는


어쩌면

이 이름조차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이렇게

내 이름을 적어보니


조금은

살아 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내 이름을

속으로 한 번 더 불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조금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서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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