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과 온기 너머로 들려온 것들

-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충분했던 순간

by SH

식탁 위에는 막 내린 커피 잔이 있었다.

그 주위로는 아직 미세한 김이 떠올랐다.

손바닥에 닿는 컵의 온기가

조용히 내 살을 데웠다.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향은

방 안 공기에 살며시 스며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향도,

그 온기도

그저 배경일 뿐이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방 안을 완전히 채우고 있었다.


피아노 건반이 하나하나 떨어질 때마다

내 귀에 닿은 소리는

머릿속을 가만히 맴돌다

어디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나는 컵을 들고 있었지만

더 이상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저 손끝에 남은 따뜻함을 느낀 채

음악 속에 몸을 조금 더 기울였다.


멜로디는 부드럽게 이어졌다.

길게 끌리는 음 하나가

식탁 위를 지나

내 손목을 스치고,

숨결에 닿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소리가

더 가까이,

마치 몸 안쪽 어딘가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커피 향은 여전히 공기 중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지금은 음악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향과 온기, 그리고 느린 피아노 소리가

모두 한데 섞여

조용히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필요 없었다.

나는 그저 음악을

온전히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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