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문장 하나

기억은 말보다 먼저 머무는 것

by SH

카페는 조용했다.

바깥은 환했지만,

안쪽 조명은 낮게 깔려 있었다.

커피머신이 한 번 끓고,

바람 소리가 잠깐 창문을 울렸다.


서윤은 늘 그렇듯

창가 옆 좁은 테이블에 앉았다.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책장처럼 낡은 노트 커버에는

한 번쯤 접힌 자국이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멈춘 건,

13페이지쯤.


거기엔 몇 주 전의 문장이 있었다.


“햇빛이 테이블 위까지 내려왔다.

그 안에 앉아 있는 내 손이

조금 덜 외로워 보였다.”


서윤은 그 문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왜 그런 말을 썼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그날,

그 자리에 빛이 닿았다는 사실만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문장, 기억나.”

“손이 덜 외로워 보였다고 쓴 거.”


서윤은 고개를 들었다.

지훈이었다.


그는 마주 앉아 있었고,

잔을 손으로 감싼 채

그 문장을 정확히 따라 말하고 있었다.


서윤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트에 적힌 글씨보다

지훈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들렸다.


지훈은

무언가 더 말할 듯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저 잔 위에 내려앉은 김을 바라보았다.


서윤은 조심스럽게 노트를 덮었다.

표정은 없었지만,

그 손끝에 약간의 떨림이 전해졌다.


그날 적었던 문장은

다시 입으로 불려졌고,

그걸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 어딘가를 조용히 흔들었다.


말보다 먼저 닿는 것들이 있다.

기억은, 가끔 그런 방식으로 돌아온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4화펼쳐진 기록, 스친 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