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강아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우리 강아지가 메시라는 이름을 갖게 된 데는 2022년 월드컵의 영향이 컸다.
메시의 주보호자 '아저씨'는 원래 메시의 팬이기도 했고 그해 월드컵에서 메시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MVP를 거머쥐었다. 메시의 인생역정은 축구에 문외한이었던 나조차 경의를 표하게 만들었다.
2023년 1월 1일 고려산에서 메시를 발견해 구조한 아저씨의 친구는 강아지를 잘 몰랐고 성별을 구분하기 위해 얼핏 살펴보니 남자 같다고 했다. 메시에 대한 팬심으로 끓던 메시를 구조한 아저씨, 그리고 메시의 주보호자 아저씨는 남자면 이름은 무조건 메시라며 강아지 이름을 메시로 지었다.
1월 2일 아저씨와 나는 메시를 데려오기 위해 강화도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간단한 점심을 먹고 강화도 고려산 백련사 아래에서 메시를 첫 대면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 구조된 1개월 아기강아지로서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것이다.
불안하다면 불안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기강아지 메시는 무덤덤했다. 아니 무덤덤해 보였다.
1년이 훨씬 지나 당시 상황을 그리려고 사진들을 다시 보니 애써 아닌 척했던 메시가 보였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표정.
내게 눈 덮인 산속에 있던 어미 잃은 아기강아지 메시의 이미지만큼이나 1월 2일 우리를 만났을 때의 이미지는 강렬했는데 그때의 메시는 아기 강아지 표정이 아니었다. 메시에겐 미안한 표현이지만 수십 년을 살아온 어르신의 얼굴이었다. 지칠 대로 지치고 무덤덤한 표정. 메시에게 우리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백련사 아래 오련이라는 이름의 전통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다섯 개의 연꽃이라는 이름의 오련은 고려산의 옛 이름이었다. 416년에 중국 동진 천축조사가 이 산에 올라 다섯 색상의 연꽃이 피어 있는 오련지를 발견, 다섯 색의 연꽃을 던져서 절터를 정했단다. 백련사는 하얀 연꽃, 적련사는 붉은 연꽃, 흑련사는 검은 연꽃, 청련사는 파란 연꽃, 황련사는 노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지어진 절. 우리는 그중 1600여 년 전, 하얀 연꽃이 떨어진 곳에서 만난 것이다.
메시를 태우고 파주로 향했다. 어린 강아지가 오랜 시간 차를 타고 갈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메시는 조수석 내 품에 안겨 정신없이 잤다. 꼬물꼬물 아기 강아지.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아지를 만지고 안았다. 신기했다. 아기여서, 그것도 엄마 잃은 아기여서 그저 애잔한 마음만 가득했다.
파주에 와서는 동물병원부터 들러 간단한 검사들을 마쳤다. 몸무게 1.8kg. 배에 진드기에 물린 상처가 있어 며칠 약을 발라줘야 하는 것 외에 다른 이상은 없었다. 메시는 병원에서도 겁이라곤 없었다. 그저 제 몸을 내맡기고 의사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병원에서는 6차 예방접종을 할 때까지 면역력을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자제하라고 했다. 그리고 월 1회 심장사상충 약을 먹여야 한다고 했다. 배변훈련은 일정 공간 펜스를 치고 그 안에 배변 패드를 모두 깐 뒤 패드 위에 배변을 보면 한 장씩 치우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고 했다.
메시에게 더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집에 왔다. 목욕부터 했다. 생전 첫 목욕에도 메시는 세상 얌전했다.
그렇게 밥도 잘 먹고 잠도 좀 잤다. 메시는 한결 단정해지고 생기 있어 보였다.
아기강아지를 보러 딸이 왔다. 동물병원에서 잠시 근무한 경험이 있기도 한 딸은 메시를 안아주고 메시와 놀아줬다. 그때까지 무덤덤하고 무표정해 보이던 메시는 언니와 잘 놀았다. 다른 강아지처럼 꽤 애교도 부리며 노는 것이었다.
무덤덤했던 것은 메시만은 아니었다. 메시는 우리에게 맞춘 건지도 몰랐다.
메시는 뒤늦게 온 언니에게 꼭 매달렸다. 이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동안 힘들었다고 토로하는 것처럼.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강아지가 아직 낯설었다. 가엽고 애잔하긴 했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해서 바로 강아지와 스킨십을 하는 단계까지 나아가 지진 않았다.
메시와 한참 놀던 딸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메시 여잔데?"
강아지에 대해 1도 모르는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고 아저씨는 "어? 이게 남자 그거 아닌가?"라고 반문했지만
딸은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메시는 여자였다!
우리는 메시의 이름을 바꾸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거짓말 같겠지만 영리한 메시는 벌써 자기 이름을 부를 때 반응을 하고 있었다. 이제 막 이름에 익숙해지려는 데 바꾸기가 망설여졌다.
아저씨의 '메시'라는 이름에 대한 집착도 컸다. "이름은 중성적인 게 좋아."
"메시가 부르기는 좋다!" 그렇게 여자임이 밝혀졌음에도 우리는 메시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나중에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강아지를 한 3,000마리 만났지만 메시라는 이름은 처음이다."라고.
지금도 언니를 제일 좋아하는 메시. 파주에 온 첫날, 자신에게 살가웠던 언니를 기억하고 있는 듯 하다.